보상비는 조폭이 챙기고 철거민은 거리로…검경·시공사·구청 공무원 등 조폭과 유착 의혹
1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588번지의 청량리 재개발 제 4구역 전경. 임준선 기자
지난 12일 찾은 청량리 4구역은 온통 공사용 가리개로 막혀있다. 집창촌이 운집했던 이곳은 1호부터 157호까지 업소가 늘어서 있었다. 호당 평균 30여 평의 단층 혹은 복층으로 이뤄진 건물에서 성매매가 이뤄졌다. 한 건물당 6~10개 성매매소가 존재했고 성매매소 수만큼 성매매여성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용산 집창촌이 허물어지며 용산에서 넘어온 업주 몇을 제외하고는 수십 년간 청량리에서 성매매업을 영위해온 주민들은 서로 호형호제하며 속사정까지 훤히 아는 사이였다.
# 몇 달 집 비웠다 돌아왔더니 우리 집이 허물어졌다
집창촌 사람들이 떠나고 난 뒤에도 동네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집창촌 안의 거의 마지막 남은 주거세입자 A 씨다. 그는 30도에 육박하는 더위에도 ‘투쟁’이라는 문구가 적힌 조끼를 입고 있는데, 다행히도 집은 허물어지지 않아 먼지더미를 뒤로하고 집을 지키고 있다. A 씨는 “평생을 여기서 살아왔는데 주거 이전비로 100만 원 주는데 이 돈으로 어디서 살 수 있냐”고 토로했다.
또 다른 주거세입자 B 씨는 “집을 비운 지 4개월 됐다. 돌아와 보니 집이 사라졌다.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B 씨가 재개발 이주지원금으로 받은 돈은 0원이다. 세입자였던 B 씨뿐만 아니라 B 씨에게 세를 준 주인 역시 B 씨와 함께 이틀 걸러 이뤄지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 단독 입찰로 시공권 따낸 롯데건설
588집창촌 대책위는 1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성바오로병원 인근에서 청량리 재개발 사업 추가 보상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 임준선 기자
동네 토박이와 주위 상점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청량리 재개발에 눈독을 들인 것은 ‘롯데건설’이다. 재개발에 대한 기본정비계획이 수립되면 추진위원회와 조합이 설립되고 그 후 시공사를 선정하게 된다. 그런데 청량리의 경우 롯데건설이 재개발 사업에 단독입찰해 시공을 따냈다. 청량리 주민들은 사전에 동네 조폭과 시공사가 물밑에서 교감을 했다는 의혹마저 제기하고 있다.
집창촌은 점포 하나에도 그에 관련된 권리관계가 복잡해 이를 해결하는 데만 하세월이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 복잡한 이해관계를 정리하고 철거, 이주까지 해결하려면 소위 ‘조폭’을 끼지 않으면 사업 전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건설업계 입장이다. 이런 터라 청량리 토박이들 사이에선 롯데건설이 청량리 재개발 사업을 두고 조폭을 통해 집창촌 포주와 주민을 잡음 없이 처리하기를 바랐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대형건설사 한 관계자는 “집창촌 같은 재개발 구역은 대형 건설사라도 들어가기가 어렵다. 언제 삽을 뜰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이해관계가 복잡해서 비용과 시간 견적내기도 어려운 곳이 집창촌 지구”라고 설명했다. “일부 건설사 중 집창촌 등 재개발을 도리하는 곳이 있는데 이들은 동네 조폭이나 그쪽 사정을 꽉 쥐고 있는 경우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청량리 재개발에는 ‘신청량리파’라는 조직이 깊숙이 개입돼 있었다. 업주들과 주민들에게 신청량리파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앞서의 주민 B 씨는 “혹시라도 찍히면 똘마니들을 보내 집기를 때려부수는 것은 다반사였다. 두목은 대여섯 명씩 부하를 거느리고 다녔는데 동네에 떴다 하면 주민들이 다 나와서 90도로 인사를 했다”고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신청량리파 두목 김 아무개 씨는 재개발을 추진하던 ‘청량리 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추진위원회’ 감사를 맡고 있었다. 재개발 사업의 공동시행사였던 S 건설사는 신청량리파 부두목과 그 조직원들이 설립한 것으로 드러났다. 집창촌 재개발 사업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성매매업소를 이전 및 철거하는 것이다. 업주들에 따르면 신청량리파는 집창촌 곳곳에 CCTV를 설치하고 이를 모니터링하다가 손님이 들어가면 곧장 경찰에 신고해 장사를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성매매업소를 두손 두발 다 들게 했다.
청량리 제4구역 내 철거가 이뤄진 한 주택 모습. 금재은 기자
청량리를 장악해온 신청량리파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었지만 이와 관련해 법적 처분을 이뤄진 적은 없었다. 하지만 두목 김 씨가 지난 1일 공갈과 배임수재 등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으며 청량리 재개발에도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다. 무서워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주민들과 이주보상비를 제대로 받지 못한 세입자들이 각종 비리를 제보하고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청량리 588 비대위 관계자는 “김 씨가 실형을 받고나니 사람들이 더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공동시행사였던 S 건설사의 비리가 터져나온 만큼 재개발 과정에도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신청량리파는 재개발 추진위원회에 개입해 세입자들에게 불리한 의사결정을 해왔다. 게다가 재개발 사업비 중 세입자 몫으로 책정된 비용의 사용 용처도 불분명하다. 추진위원회 내부 문건에 따르면 재개발 사업비 중 세입자 보상비로 책정된 금액은 239억 원이다. 세입자 영업 보상비와 주거이전비, 민원처리비를 위해 책정된 것이다. 하지만 주거이전비는 물론 영업보상비를 한 푼도 못 받은 사람들이 속출하며 수백억 원 돈이 어디에 사용됐는지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두목 김 씨는 재개발 사업을 이용해 전방위로 돈을 빼먹었다. 서울북부지검에 따르면 두목 김 씨는 S 건설사의 실제 운영자로 PF대출을 받아 조달한 사업비를 허위 직원 급여 등으로 빼돌려 사용해 20억 원을 횡령했다. 또 집창촌 재개발 보상비를 타내기 위해 조직원 명의로 성매매업소를 운영한 것처럼 서류를 꾸미고, 1개 업소를 여러 개 업소인 것처럼 쪼개 업소당 4000만 원 이상의 보상비를 편취했다. 철거과정에서는 무면허 업체에 용역을 맡겨 17억 원을 챙겼다.
관할 경찰과 검찰, 구청 관계자까지 조직폭력배와 유착된 것이 드러나며 진행되던 재개발사업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두목 김 씨는 평소 검경과 유착관계를 자랑하며 “북부지검 수사관 대부분이 다 내가 아는 사람이다”는 이야기를 해서 논란이 됐다. 과거 동대문경찰서 경찰 출신인 중앙지검 황 아무개 수사관은 청량리파 조직원들과 수시로 골프장을 출입한 것이 문제가 돼 지난해 사표를 제출했다. 두목 김 씨의 모친상 부고를 경찰서 형사가 직접 돌린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전 구청공무원은 성매매업소 운영 허위서류를 만들어 보상비 1억 5600만 원을 편취해 구속기소됐다. 관할 경찰부터 구청직원, 검찰수사관까지 부정과 조직폭력배와 연관돼 구설에 오르자 시행단계 자체를 다시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올 초 이주보상이 끝나고 6월 착공에 들어가야 하지만 이주와 철거에 잡음이 불거지며 착공이 늦춰지고 있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우리는 시공만 할 뿐이지 이주 보상 및 철거 문제는 추진위원회가 할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청량리 집창촌이 철거되고 성매매 업소가 떠난 자리. 금재은 기자
# 성매매여성 무일푼으로 쫓겨나고, 영업 보상금은 깜깜이
성매매업은 부대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반면 수익은 상당하다. 하룻밤 사이에 수백만 원을 벌어들이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정작 성매매여성들이 쥔 돈은 크지 않다. 계속해서 돈을 벌어도 성매매여성의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다. 집창촌을 떠받치고 있던 주류 노동자 성매매여성들은 정작 한 푼도 보상금을 받지 못한 채 이곳을 떠나갔다.
성매매 재개발 지역 보상금으로 업소당 4000만 원 상당이 나오고, 세입자에게는 주거 이전비가 지급된다. 업주도, 주거세입자도 아닌 성매매 여성들은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한 주민은 “아가씨들은 돈을 못 받았다. 용주골이나 영등포, 수원 이런 데로 간 걸로 안다”며 “업주와 잘 맞은 아가씨들은 업주랑 같이 떠나기도 했지만 나머지는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성매매가 불법인 만큼 집창촌이 사라져도 성매매 여성들이 받을 수 있는 도움은 사실상 전무하다.
지자체와 인근 주민, 시공사인 롯데건설까지 주변환경개선을 위해 집창촌 재개발에 찬성하지만, 철거와 이주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법에 대해 방관하고 있다. 환경개선을 명분으로 삼기에는 철거된 청량리 4구역에서 빗겨났다는 이유로 버젓이 영업하고 있는 성매매 업소가 있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지자체와 건설사가 자본논리에 의해 자신들의 터전을 빼앗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집창촌 인근 상가에서 식당과 여관을 운영하던 세입자 역시 재개발 보상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가게 크기나 영업실적에 상관없이 턱없이 적은 금액을 영업 보상비로 제시하는 데 불만이 있다는 것. 백반집을 운영하는 한 식당 주인은 “2000만 원을 준다는데 하루아침에 가게를 빼앗기는 셈인데 너무하다”고 토로했다. 여관을 운영하던 한 주인은 “건물 한 층을 통째로 쓰고 있었는 데도 보상비로 2500만 원을 주고 치우려 한다”며 “보상비 산정근거가 불명확해 반발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조철민 588집창촌 비대위 관계자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엄청나게 큰 보상이 아니다”며 “보상비로 책정된 금액을 기준과 원리에 맞게 제대로 지급하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