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인터뷰]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1 “안철수 좋은 대안 아니었다”
-굵직한 현대사 사건에 연루된 과거...분단이 한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깨달아...내 안의 ‘금기’ 깨고 북한 바라봐야
-자유한국당의 몰락? 결국 국민의당 창당과 그로인한 분열에서 비롯...그것이 한국당을 방만하게 만들 줄은 예상 못해
[일요신문]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 사회학의 거두이다. 그는 1980년대, 생활수준은 중산층이지만 가치관은 민중을 지향하는 ‘중민’ 개념을 주창했다. 특히 그는 86세대가 ‘중민’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고, 실제 그들은 주류가 됐다. 그가 주창한 중민이론은 우리 사회와 정치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최근에서야 그를 접한 이들에겐 지난 18대 대선 직후 역임한 민주당의 대선평가특별위원장으로서, 또한 안철수 전 의원과 함께 ‘국민의당’을 창당한 인물로 인식될 것이다. 그런 그가 최근 신간 ‘한상진과 중민이론’을 세상에 내놨다. 제자들과의 인터뷰 형식이 주를 이루는 이 책 안에는 그의 이론은 물론 인간으로서 겪었던 삶의 궤적과 고뇌가 담겨있다. 특히 책을 통해 그는 국민의당 창당 과정에 대한 솔직담백한 심정을 처음 털어놓기도 했다. ‘일요신문’은 지난 6월 19일 한상진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는 책에 담긴 주제만큼이나 아주 폭 넓게 이뤄졌다.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신간 ‘한상진과 중민이론’을 출간했다. 이종현 기자
―신간이 나왔다. 무엇보다 제자들과의 인터뷰 문답 형식이 눈길을 끈다.
“내가 80년대 중민이론을 주창했다. 2015년 이에 대한 30주년을 기념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그 때 제자들이 이론잡지에 등재를 겸해서 기념 논문을 냈다. 그때 제자들이 언젠가 이를 모아 단행본을 내자고 하더라. 특히 책을 낼 때 ‘인터뷰’를 겸하자고 공감대가 형성됐다.
―인터뷰 작업은 재밌었나. 제자들이 짓궂은 질문도 스스럼없이 던지더라.
“(웃음)가장 가까운 제자들이다. 원래 나는 제자들과 상하관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고 경청한다. 대담 아주 재밌었다. (제자들은 그를 일컬어 ‘최초의 탈 인습적 교수’로 칭한다)제자들이 아주 여과없이 질문을 던지더라. 나 역시 비교적 솔직하게 거르지 않고 답했다. 아주 좋은 기회였다. 내가 누구이고 어디서 출발했고 어디에 와있는지, 앞으로 어디로 갈지 인터뷰를 통해 정리가 되더라. 내용이 일종의 비하인드 스토리다. 혹시 이것으로 인해 다른 선생들이나 동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조금 염려도 됐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사실을 그대로 밝히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개인을 비방하는 내용은 없다.”
―한일수교반대 시위, 학원침투간첩단 사건, 고영복 교수 간첩사건 등 우리 현대사 속 굵직한 사건에 연루되거나 함께했다. 단순한 학자로서의 길은 아니다.
“애초 사회학과에 간 것도 그런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상대를 권했지만, 내 인생을 돈벌이로 내다보고 싶지 않았다. 뭔가 ‘꿈’을 가진 삶을 살고 싶었다. 종교가 큰 영향을 줬다. 난 독실한 천주교 신자다. 종교가 권력이나 부를 상회하는 초월적 가치를 지향하지 않나. 내 삶이 정치와 사회참여에 끊임없이 연관됐지만, 정치와는 거리를 두려는 노력도 있었다. 유혹도 많았지만, ‘권력은 한계가 있다’ ‘상회하는 가치와 목표를 추구하자’는 것을 맘에 담았다. 결과적으론 어느 정도 성공했다.”
―앞서의 현대사 사건 속에서 친구였던 서승 교수, 송두율 교수, 스승이었던 고 고영복 교수 등 가까운 분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책에도 그 내용도 담겨있다.
“특히 서승(1975년 학원침투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19년 옥중생활을 했다. 한 교수 역시 당시 사건에 연루돼 고문 등 피해를 입었지만, 무죄로 풀려났다)은 정말 가까운 친구다. 그가 간첩이라고 했을 때 진짜 놀랐다. 앞서의 사건을 보면 분단이 경우에 따라선 한 사람의 삶에 아주 깊게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저 평범한 시골에서 성장한 나는 몰랐다. 대학에 가니 정말 뜻하지 않은 체험이더라.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분단이란 현실이 극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체험한 덕에 면역력을 키운 측면도 있었다. 예방주사를 맞은 셈이다. (분단문제는) 상당한 지혜과 용기가 필요하다. 적대적 타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화하느냐의 문제다. 극복하기 참 어려운 주제다. 나에겐 그렇게 다가오더라.”
―분단문제는 현재진행형이고, 지금은 새로운 국면에 와 있다.
“남북 정상이 벌써 두 번 만났다. 견고하게 이어져 왔던 분단 질서와 체제가 힘을 잃고 새로운 체제가 등장하지 않겠느냐 하는 기대를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굉장히 중요한 분기점이다. 다만 여러 변수가 있어서 예상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한상진 교수는 ‘분단문제’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한계점을 스스럼없이 내보였다. 그는 그것을 과거 경험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마음의 금기, 터부 등으로 표현했다.
“앞서의 경험이 예방주사인 측면도 있지만 스스로 한계를 준 측면도 있다. 무의식적으로 ‘이 선은 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강제와 명령이다. 난 내 안의 이것이 무너졌으면 좋겠다. 자신도 모르게 마지노선을 스스로 설정하고 있다. 내가 좀 더 자유롭게 한반도의 미래와 북한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한상진 교수는 국민의당의 창당과 야권분열이 곧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을 방만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것은 본인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이종현 기자
“그렇다. 우리 사회를 가로지르는 금기의 영역이 무너져야 보다 풍요로운 시각으로 한반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난 한계 속에서 살아왔지만, 젊은 세대들은 그것을 넘어 성장할 수 있다. 선악의 고정관념은 정말 틀린 거다. 북한이 실패한 체제임은 틀림없지만, 모든 것이 악이라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어떤 의미에선 남한이 너무 질주하면서 안에 독버섯도 성장했다. 이에 대한 치유제가 북한에 있을 수도 있다. 그곳은 그래도 우리가 잃어버린 귀중한 문화가 남아있다. 전통이 남아있다. 이 부분은 호의적으로 볼 측면이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인세반(스티븐 린튼) 유진벨 재단 회장의 말을 예로 들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내가 정신문화연구원장(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취임하자마자 스티븐 린튼을 초청했다. 그의 강의 명제가 아주 쉬웠다. 북한은 세상 제일의 촌놈이고 남한은 가장 까진 세계시민이라고. 그만큼 두 세계는 다르지만, 잘하면 축복받는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더라. 한 쪽은 고도로 세계화 됐지만, 한 쪽은 굉장히 전통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잘만 결합하면 세계의 관심을 끌 것이라는 의미였다. 난 지금도 그 강의를 기억한다. 민족의 가치로 몰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두 체제를 묶는 보다 상위의 가치나 규범이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 역사에 있다. 그것을 찾고자 노력해야 한다.“
― 한국 정치 지형에 대해서도 ‘민생은 없고 극단적 이념 갈등만 이어왔다’고 평했다.(인터뷰는 자연스레 정치 현안으로 이어졌다)
“한국 정당 정치는 외형만 놓고 보면 아주 멋있다. 팽팽하게 긴장된 양당제도다. 이제는 정권도 왔다 갔다 한다. 흔히 자유민주주의로 보고 있다. 전형적인 서구적 체제다. 일본도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보다 뒤쳐졌다. 이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문제는 실체다. 어떻게 운영 되느냐다. 여기서 큰 문제가 있다. 나는 과거(2013년 민주당 대선평가특별위원장 시절) 민주당을 다각적으로 비판했다. 정치인이 권력 획득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조금도 잘못이 없다. 하지만 동시에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정치인들 직업적 문제만은 절대 아니다. 국민 삶의 질을 높이고 더불어 참여하는 국가를 만드는 것 역시 과제다. 그걸 우리는 민생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부차적인 것이 되고 권력을 향한 무한 경쟁이 전면으로 부상되고 있다. 그것은 아니다. 원래 한국정치의 모습이라기 보단, 노무현 정부 이후 심해졌고 2010년대 와서 그것이 더 고착화 됐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냉정한 현실 의식과 과오에 대한 책임이 있어야 하는데 누구든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난 그것을 똑똑히 봤다.”
―최근 보수를 대표하는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지방선거를 통해 무너졌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보는가.(한 교수는 이 질문에 본인의 민주당 대선평가위원장 시절인 지난 18대 대선 직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복선이 있다. 난 사회학자다. 평소에도 국민의식조사를 주기적으로 한다. 지난 2013년 민주당 대선평가위 시절에도 그러한 자료에 입각해 보니, 민주당 내 계파 패권주의가 심했고 반발이 무섭게 일었다. 그것이 확산됐고, 극복해야만 했다. 난 그것을 논의로 개진했지만 민주당 패권세력은 그걸 용인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당이 깨졌다. 당시 내 판단으론 제3정당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조건과 기회가 왔다고 판단했다.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그래서 난 적극적으로 국민의당 창당에 뛰어들었다. 전체 의석의 10%를 상회하는 38석을 얻었으니 나름 성공을 거뒀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국민의당이 창당되고 야권이 분열되면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을 아주 안일하게 만들어 놨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자신이 예상하지 못했던 패착에 대해 너무나 솔직히 털어놨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게 어렵다는 거다. 국민의당이 들어서면서 야권이 분열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일부 정치인이나 식자들은 이것이 악재가 되어 새누리당의 압승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걱정했고, 일부는 광범위하게 민주당과 합당해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새누리당이 아주 방만해져서 악수를 둘 것이라고는 예상 못했다.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었다. 결국 새누리당은 몰락한거다. 보통 능력의 사회과학자가 한국정치를 예측하기엔 불확실성이 크더라. 오히려 의도한 것보다 의도치 않은 것이 중요하더라. 그것을 내다보는 것이 내겐 너무 어려웠다.”
―그렇다면 자유한국당의 미래는 어떻게 전망하나. 최근 그들은 ‘탈이념’을 말하기도 했다.
“탈이념은 그저 단어다. 그보단 세계관, 눈이 바뀌어야 한다. 한국당의 문제는 무섭도록 빨리 변하는 현실을 따라잡을 수 있는 파워와 두뇌가 없다는 거다. 전부 과거에 안주하는 방식이다. 왜, 과거엔 북한카드로 제압하고 경제로 주무르면 비교적 손 쉬었으니까. 이 엄청난 지각변동에서 예전 공식이 여전히 유효하리라 믿은거다. 그것을 넘는 시각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전혀 준비가 안됐다. 그 당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불확실하다.”
―자유한국당의 패배는 곧 보수의 위기로 연결된다.
“보수의 가치를 복원하는 것이 한국당의 과제라면, 결국 보수는 어디에 있느냐부터 시작해야 한다. 진보는 그래도 86세대란 중심이 ‘진보’를 그런대로 논의하고 받쳐줬지만, 보수는 그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었다. 보수의 가치를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에 대한 고뇌도 없다. 당장 인적청산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도 안 된다. 보다 근본적인 정당의 체질 변화가 필요하고 내용이 만들어져야 한다. 제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안철수 당시 의원과 한상진 당시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이 서울 마포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입장하고 있다. 2016.1.8 연합뉴스
―앞서 한국정치의 결함으로 책임윤리의 빈곤을 언급했다. 이는 과거 함께했던 안철수 전 의원도 마찬가지 아닌가.(한 교수는 이 질문에 상당히 조심스러워했다.)
“내가 국민의당 창당에 앞장섰던 사람이고, 그 주역은 안철수였다. 그 부분에 대해선 크게 후회 없다. 하지만 상당히 좋은 기회가 많았는데 다 유실했다. 오늘의 지방선거 대참패를 보는 나의 소회는 정말 착잡하다. 물론 나는 직접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을 세웠기에 내 한계는 명백했다. 그럼에도 오늘 이 시점에서 안타깝고, 야박하고 슬프다. 난 정치꾼은 아니지만, 국민의당 창당을 함께한 지식인이었다. 왜 당의 구성과 미래에 대해 생각이 없었겠는가.”
특히 그는 ‘소통’이 부족했음을 시사했다.
“국민의당이 제3당으로 안착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을 밟았어야 했다. 그 공감대의 과정이 필요했다. 나도 직접 정치를 하는 것은 포기한 사람이지만, 솔직히 내게 기회가 된다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통해 빛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았다. 그렇지만 그런 기회가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정치는 그저 현역 의원 중심으로 굴러가더라. 스스로 내 한계를 설정한 마당에 그것을 불평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쉽다.“
한 교수의 아쉬움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안철수 전 의원 개인에 대해서도 이어졌다.
“어떤 의미에선 국민의당은 폭 망한 거다. 정당을 없애는 과정에서도 내게 의견을 한 번 구하는 일도 없었다. ‘이런 게 정치 문화인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저급 이구나’ 싶더라. 과거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대화도 충분히 하시고 의견도 구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갈수록 변해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또 내가 민주당 대선평가위 시절 책임윤리 부재를 두고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많이 지적했다. 그런데 안철수는 그런 의미에서 좋은 모범인가? 솔직히 ‘좋은 대안은 아니구나’ 싶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직격인터뷰]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2’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