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복귀 노리거나 신접살림 차리거나
국회의원이 소속 정당 없이 활동하는 데에는 제약과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혼자이기에 운신은 자유롭지만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기엔 역부족인 경우도 적지 않다. 오랜 무소속 생활 끝에 2007년 대선 때 한나라당에 입당했던 정몽준 대표는 훗날 ‘무소속의 설움’을 주변에 토로한 적이 있다. 얼마 전 신건 의원과 함께 ‘친정’ 민주당에 복당한 정동영 의원 역시 지난해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조문 정국을 거치면서 ‘변방’에 머물 수밖에 없던 무소속의 처지를 뼈아파 했을 법하다. 이 같은 한계에도 이들 무소속 의원들이 소속 정당 없이 계속 활동하고 있는 배경에는 갖가지 곡절이 자리해 있다. 각기 다른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무당파’ 의원들의 계속되는 ‘무소속 사유’를 들춰봤다.
얼마 전 민주당으로 돌아온 정동영 의원은 지난 2월 10일 복당 기자회견장에서 그동안의 고충에 대해 털어놓은 바 있다. 정 의원은 “혼자 의정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어려움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말로 다 못하겠다. …무소속도 할 만하더라”며 웃음을 보인 바 있다. 정 의원이 민주당으로 돌아온 것은 지난해 4월 이후 10개월여 만이었다.
당 외곽에서 ‘나홀로’ 분투를 해왔던 정 의원은 그간 순조롭지 않은 복당 논의에 적잖은 맘고생을 해야 했다. 결국 지방선거를 4개월여 앞둔 시점에 우여곡절 끝에 그의 복당이 받아들여졌고 정 의원과 함께 복당신청을 한 신건 의원도 민주당 식구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이들 두 의원과 달리 유성엽 의원(전북 정읍)의 경우엔 복당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08년 4·9 총선 공천 과정에서 정동영·신건 의원과 함께 탈당했던 유 의원은 이들과 함께 지난 1월 중순 복당신청서를 제출한 바 있다.
유성엽 의원은 복당 불발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곧 해결되지 않겠나 기대한다. 심사위원회가 연기된 것일 뿐 복당에 다른 장애가 발생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유독 유 의원만이 복당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대해 유 의원 측도 다소 어리둥절하다는 입장이다.
유성엽 의원 측 관계자는 “유 의원만 복당이 안 된 명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중앙당에 이유를 물어보았지만 서류와 소명서를 심의 중이라는 답변만 들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당규에 따르면 30일 이내에 복당 신청이 처리되지 않으면 신청 자체가 무효가 된다. 내부에서 다시 신청해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일단 당의 결정에 따르기로 의견을 조율했다. 지방선거까지는 복당 논의가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내 일각에서는 여전히 이들 의원들의 복당에 부정적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다. 정세균 대표 역시 복당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으나 정동영 의원과 오랜 동안 각을 세워왔던 상황. 이러한 점이 세 의원의 동시 복당을 ‘불발’시킨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복당은 되지 않았으나 유 의원은 정동영·신건 의원과 자주 만남을 갖고 의견 교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유 의원 측은 “엊그제도 만나 함께 식사하면서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논의를 했다. 우리는 우리대로 무소속 행보를 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한나라당 주변에도 오랜 기간 복당을 기다리고 있는 무소속 의원이 있다. 대표적 친박계 중 한 명으로 분류되고 있는 정수성 의원이다. 정 의원의 복당 문제는 당내 친이 대 친박 대결 구도와 밀접히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 의원은 지난해 4·29 경주 재·보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친이계 정종복 후보를 이기고 당선되면서 ‘친박 바람’을 일으킨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17일 입당 신청서를 낸 이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보류되고 있는 상태. 한나라당 중앙당은 물론 경북도당 역시 “정 의원의 입당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근 한나라당이 정수성 의원의 입당 여부를 6월 지방선거 이전에 검토할 것이라는 일부 보도가 있었으나 세종시 문제가 격화되면서 이러한 분위기는 다시 수면 아래로 잠긴 상황이다. 더구나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지방선거에서 친박계를 견제하려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 의원의 입당을 최대한 늦출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정 의원에게 패한 정종복 전 의원이 경주시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다는 점도 복당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정수성 의원 측 관계자는 “정종복 전 의원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공천권을 행사하고 싶어한다. 정수성 의원이 입당하게 되면 본인이 좀 곤란해질 가능성을 우려해 정 의원의 입당을 꺼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수성 의원이 입당할 경우 현직 의원이 당협 위원장을 우선적으로 맡는다는 관행 때문에 정종복 전 의원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내 일각에서는 지방선거 이전 개각이 단행된다면 정종복 전 의원이 입각을 통해 공직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한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3기 개각에서 정종복 의원이 포함된다면 정수성 의원의 입당이 성사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방선거 이전에 개각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게 정가의 전망이다.
친박계이지만 무소속 신분인 정수성 의원 측도 입당 여부가 하루빨리 결정 나길 바라는 분위기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미래희망연대(구 친박연대)도 경주 지역에 후보를 내기 위해 준비 중인 상황. 정수성 의원 측은 “지방선거에서 적극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라도 조속히 입당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반면 송훈석 의원(강원 속초·양양·고성)과 최연희 의원(동해·삼척)의 경우 ‘입당’에 대해 강한 의지를 갖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송훈석 의원과 최연희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최욱철(강릉) 의원과 함께 강원 지역에서 무소속 돌풍을 일으킨 바 있다. 이후 최욱철 의원은 선거법 위반혐의로 당선이 무효가 되었고 이 지역에서는 지난해 10·28 재보선에서 한나라당 권성동 의원이 당선됐다.
두 의원의 입당에 대해서는 당내에서도 적극적으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특히 최연희 의원의 경우 지난 2006년 여기자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 탈당한 바 있어 한나라당에서도 영입에 부담을 갖고 있는 상황. 지난해 지역의 최연희 의원 지지자들이 ‘최연희 의원 복당추진위’를 결성해 한나라당을 방문하는 등 복당 요구가 있었으나 당시 박희태 대표와 이상득 의원이 직접 나서 ‘거론불가’ 입장을 밝힌 이후 복당에 관한 이야기는 다시 잠잠해졌다. 최연희 의원 측도 당에 부담을 주면서까지 복당을 고수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다가 탈락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한 송훈석 의원(강원 강릉)도 당분간 무소속 행보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송 의원이 무소속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은 강원 지역 민심 특성과도 관련이 적지 않다. 강원도는 지난 18대 총선에서 지역구 8곳 중 세 곳에서 무소속 의원이 당선되었고, 한나라당이 3곳, 민주당이 2곳에서 당선되는 등 비교적 지역색에 치우지지 않은 곳이다.
송 의원 측 관계자는 “무소속으로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지역민들의 의견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강원 지역 민심은 특정 정당에 대해 몰표를 보내지 않는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굳이 입당의 필요를 느끼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인근인 고성군(황종국 군수) 역시 2008년 6·4 재·보궐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 두 명이 1표차로 접전을 벌인 바 있을 정도로 ‘무소속 돌풍’이 거센 지역이다. 송 의원 측은 “지방선거가 다가오면 재고의 여지는 있다”며 복당의 가능성은 열어두었다.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총리직을 제의받은 뒤 이회창 총재와의 갈등으로 자유선진당을 탈당했던 심대평 의원(충남 공주 연기)의 경우 이번 지방선거를 목표로 창당을 준비 중이다. 심대평 의원 측 관계자는 “25일 창당 준비위원회를 선관위에 등록했고 3월 15일 공식 창당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신당은 가칭 ‘국민중심연합’으로 중앙당 창당과 함께 대전·충남·충북·경북·인천 등 5개 지역에 시도당을 창당할 예정이라고 한다. 3선의 충남지사였던 심 의원은 충청을 대표하는 정치인 중 한 명으로 지난 대선 때 이회창 무소속 후보와 손을 잡았고 이듬해 총선에선 자유선진당이 18석을 차지해 단시간에 충청권 맹주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바 있다. 심 의원의 탈당으로 자유선진당은 교섭단체 구성 자격을 상실하며 ‘지역정당’으로 전락하는 등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의 탈당 이후 한때 이 심 의원이 제기한 ‘사당화 논란’과 관련해 “당 체제를 바꾸겠다”며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다. 심 의원 역시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일단 새로운 당을 만든 뒤 선거 전 선진당과의 합당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혀 지방선거 직전 연대가 성사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또한 양측은 부인하고 있지만 최근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의 영입설도 흘러나오는 등 심 대표는 신당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외부인사 영입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 심 의원의 신당 창당으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두 정당이 어떤 결과를 얻을지가 최대 관심사로 급부상했다.
이인제 의원(충남 논산·계룡·금산) 역시 지방선거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주목되는 ‘무소속 의원’이다. 심대평 의원의 자유선진당 탈당 이후 한때 정가에선 이인제 의원의 자유선진당 영입설이 나돈 바 있다. 그뒤 자유선진당 영입설은 잠잠해졌지만, 이인제 의원은 최근 세종시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밝히는 등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의원은 지난 1월 15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한 번 결정한 것이니 절대로 손을 댈 수 없다는 태도는 정당하지 않다. 역사란 끊임없이 낡은 결정을 경정하고 오류를 수정하며 발전한다”는 글을 올렸다. 지역구가 있는 충남지역에서 세종시 원안 찬성 입장이 높은 점을 감안하면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이인제 의원 측은 이에 대해 “그렇다고 수정안을 찬성한다는 입장은 아니다. 원안 고수의 강제성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원안을 고칠 수 있는 여지를 두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일부 언론의 여론조사에서 이인제 의원은 안희정 최고위원, 류근찬 의원 등과 함께 충남도지사 후보군에 포함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 이인제 의원 측 관계자는 “이번 지방선거에 대해서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 대통령 선거에 세 번이나 나갔는데 도지사에 욕심을 내겠느냐”며 관심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