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독회담을 갖고 있는 김영삼-노태우. | ||
당시에는 3당 합당이 아니라 양당 합당이었지만 편의상 3당 합당으로 호칭한다. 이 3당 합당을 위한 물밑 협상의 진상을, 아니 그런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 시점에서 3당간의 이른바 공조체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안기부 출신 P국장으로부터 정보 당국에서 파악하고 있던 세 야당의 협조 체제를 살펴보자.
“89년 들어 세 야당 총재들은 두 번에 걸쳐 모임을 가졌다. 이른바 ‘3야당 총재 회담’으로 1월24일 그리고 3월4일이다. 이 3야당 회담의 결과를 바탕으로 5월16일부터 26일까지 여야 4당 14인 중진회의가 열렸는데 주된 의제는 5공 청산이었다.
내용은 그 전해 5월 3야당 총재 회담에서 합의된 내용 그대로였다.
첫째 5공 비리 조사 특위 구성, 둘째 광주 사태 진상 규명 특위 설치, 셋째 안기부 보안사 및 검찰과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법률 개폐 특위 등 5개 특위 설치, 넷째 80년 5공 특위의 출범을 합리화하기 위해 희생된 모든 해직자들의 전원 복권.
이상과 같은 합의안은 그러나 하나의 윤곽이었을 뿐 구체적인 실천 방안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5월16일부터 26일까지의 4당 14인 중진회의에서 이를 실천 방안으로 구체화시킨 것인데 세 야당 총재간의 공조 체제는 여기서부터 뒤틀리기 시작했다.
” 진술자가 바뀌어 6공 청와대 Y비서관의 증언이다. “7월10일 노태우 김종필 청와대 단독 회담이 있었다. 이 회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김종필 총재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회담의 성과에 대해서는 아직 모른다. 지금 막 아이를 가졌는데 아들인지 딸인지 어떻게 아나. 그러니까 그것은 좀 기다려 주고 대신 내가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다.
에, 오늘 대통령 각하를 만나 뵙고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눈 끝에 알게 된 것은 우리 세 야당 총재들의 합의 사항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5공 청산 안할 거냐 그건 아니다. 해야지. 반드시 한다. 다만 우리 세 야당 총재들의 합의 사항만 고집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부득이 차선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김종필 총재의 답변에 기자들이 많은 질문을 했는데, 김 총재는 특유의 선문답으로 피해 나갔다.” 김종필 총재의 선문답은 여러 가지 억측을 낳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의 발언은 항상 측근들의 부연 설명을 필요로 했다. 정계 개편을 위한 막바지 물밑 교섭이 진행되고 있던 89년 6월 시점,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 총재와 김용환 정책위 의장의 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각에 당사에 나와 총재실을 찾은 김용환 의장.
“일찍 나오셨습니다. 총재님” “아, 김 의장 무슨 일이요?” “오늘 아침 따라 너무 일찍 나오신 것 같아서 들러 봤습니다.” “그래요? 그런 것 같질 않은데…. 3야당 총재간의 합의안을 내가 변질시켰다 해서 김 의장이 언론으로부터 매를 맞고 있다는 얘길 들었어요.
그래서 나한테 항의라도 하려고 들어온 거 아니에요?” “역시 총재님은 대단하시군요. 제가 아예 말을 할 수가 없게 만들어 버리시네…. 사실은 제가 기자들을 설득하느라고 진땀을 빼긴 했습니다. 뭐 있는 그대로 얘기를 했지요.
세 야당 총재들간의 합의 사항을 제일 먼저 변질시킨 사람은 김종필 총재가 아니라 평민당 김대중 총재다. 당신들도 알지 않느냐. 김대중 총재가 지난 3월10일날 청와대 회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뭐라고 했느냐. 정권의 신임이 연계된 중간 평가는 헌법 위반 사항이므로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게 바로 세 야당 총재의 합의를 변질시킨 것인데 이제 와서 합의 사항 변질의 책임을 우리 김종필 총재에게 덮어씌운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김종필 총재의 선문답에는 항상 주석이 따랐다.
이에 앞서 노태우 김영삼 청와대 회담에서 김영삼 총재가 요구한 합당 방안은 무엇이었나. 당시 김영삼 총재는 방법은 오로지 합당뿐이라고 주장했다. 정책 연합도 안되고 연정도 안되고 양당의 합당만이 오직 하나뿐인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삼 총재가 이렇듯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가. 통일민주당 정책위 의장 황병태 전 의원의 진술이다. “그거는 어떤 의미에서 당연하다. 당시 김영삼 총재는 이른바 합당을 노태우 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자선으로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먼저 민정당 간판을 내려라. 그러면 도와주겠다 이렇게 나온 거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합당의 주역은 당신이 아니라 나다. 따라서 당신은 내가 걸어 들어가는 길에 마땅히 꽃길을 만들어 줘야 한다. 이런 뜻이다. 그것이 바로 노태우 대통령으로 하여금 고민에 빠지게 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박철언 보좌관은 평민당의 김원기 원내총무와 만나고 있었다.
김원기 총무가 말했다. “결국 얘긴즉 이렇게 되는 것 같소. 민정당하고 통일민주당이 합작해서 평민당을 죽이기로 작심했다. 그렇지요. 박 보좌관?”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박철언 보좌관이 대답한다.
“나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 시방 뭐라고 했습니까, 김 총무?” “몰라서 묻소?” “그러니까 우리 민정당하고 통일민주당이 합작해서 평민당을 죽일라고 한다, 그 말입니까?” “평민당이 아니라 물론 평민당도 그렇지만 우리 김대중 총재를 죽이려고 하고 있어요.
김 총재가 죽으면 평민당은 따라서 죽게 돼 있는 거 아니겠소.” 박철언 보좌관은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다. “더욱 알아듣기 어렵네.” “알아듣기 어려워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그렇습니다. 내가 시방 김 총무를 뭐하러 만나고 있습니까.” 김원기 총무의 목소리가 커졌다. “시치미 떼지 마시오. 박 보좌관! 증거가 있어요. 그런데도 모른다고 오리발을 내밀 겁니까.” “증거라니 무슨 증겁니까.” “끝까지 실토를 안할 생각이구만.
그렇다면 나가 말해 드리지. 안기부에서 우리 김대중 총재에게 소환장을 발부했소.” 소환장이라는 말에 흠칫 놀라는 박 보좌관이다.
“안기부에서 소환장을 발부해요? 안기부에서 무신 일로 김 총재에게 소환장을 발부했습니까?” “아니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요? 알고 이러는 거요?” “대통령이 모르는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어요?” 탁자를 내리치는 김원기 총무. “다른 곳도 아닌 안기부에서 서경원이 밀입북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제1야당 당수에게 소환장을 발부했는데 이게 대통령이 모를 수 있는 일입니까?” 여기서 진술이다.
89년 6월21일 노태우 김영삼 단독 회담이 있었던 그 무렵의 정국 상황. 안기부 출신 P국장의 증언이다. “6월19일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를 초치해서 청와대 단독 회담을 열었다. 주의제는 역시 김 총재의 소련 방문의 경과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실질적인 토의 내용은 민정당과 통일민주당의 합당이었다. 김영삼 총재가 소련을 방문하고 있는 약 20일 동안 청와대 비서실에서는 정무수석실이 중심이 돼서 정계 개편 3당 합당의 세부적인 검토가 진행됐다.
그렇게 해서 작성된 정계 개편 방안 검토 보고서는 김 총재가 귀국할 무렵인 6월17일 경 홍성철 비서실장을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첫째 신민주공화당과의 합당, 이는 여소야대 구도를 극복할 수 있는 단순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신민주공화당의 대국민 이미지에 문제가 있고 구 여권과의 합당이라는 면에서 또한 문제가 있다.
둘째 통일민주당과의 합당, 실현 가능성에 문제가 있다. 그러나 실현될 수 있다면 국민 정서면에 명분이 있다.
셋째 평민당하고의 합당. 지역 감정 해소 측면에서 긍정적이며 바람직하다. 다만 두 당의 구성원 사이에 너무나도 큰 이질감이 있어 합당이 되더라도 융합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런 보고를 받고 노태우 대통령은 상당히 고심을 했다.
” 여기서 진술자가 바뀌어 최창윤 당시 정무수석의 진술이다. “이 보고서를 토대로 해서 노태우 대통령은 6월21일 김영삼 총재와의 청와대 단독 회담에서 민정당과 통일민주당의 통합을 제의했다. 보고서의 두 번째 항목은 실현되기는 어렵다.
단 실현될 수만 있다면 국민 정서면에서 명분이 있다. 이런 내용에 의거한 제의였다. 그런데 문제는 양당 제휴의 방법이었다. 노 대통령은 일단 양당간의 정책연합이나 연정, 연립정부안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하고 있었다기보다 그것은 정계 개편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청와대 핵심간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런데 김영삼 총재가 강력하게 반발을 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노태우 대통령은 난감해졌다. 실제로 양당 합당의 경우 문제가 많았던 게 사실이다. 민정당은 민정당대로 그리고 통일민주당은 또 그들대로 각기 반발하는 세력이 만만치 않은데다 지난날의 여야, 여야라기보다는 차라리 서로 대치하는 적대 세력이 어느날 아침 합당을 해서 동지의 관계로 변신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는가.
이래서 노태우 대통령은 번민에 빠진 것이다.” 다시 박철언 김원기 담판 현장으로 돌아가 보자. 앞에서 나온 안기부 소환장 대목에서 흥분한 나머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친 김원기 총무는 사실 면담 처음부터 상기된 표정이었다.
“나가 오늘 박 보좌관을 만나자고 한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지난번에 박 보좌관이 민정당하고 우리 평민당의 합작을 제의했을 적에 양당간의 제휴가 왜 불가능한지를 충분히 설명을 했습니다. 나도 그랬고 우리 김 총재도 그랬어요. 그렇지요?” 박철언 보좌관은 왜 김 총무가 자기를 보자고 했는지 살피고 있다.
“말씀은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김대중 총재께 요청했지요.” “무슨 요청이요?” “그렇다고 이 일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계속해서 대화가 필요하니까 김 총재님을 대신할 수 있는 측근 중에서 누구 한 사람 지명해 달라.” “그랬더니 김 총재께서 나를 지명했다 이 말이지요.” “그랬으니까 지금까지 대화를 해 오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갑자기 통일민주당하고 합작해서 평민당을 죽일라고 한다,
김대중 총재를 죽일라고 한다, 이기 대체 무신 말입니까?” “그래 죽일라고 하는 기 아니면 명색이 제1야당 총재에게 소환장을 발부할 수 있는 겁니까? 당신 말대로 지금까지 우린 상당한 기간 양당의 합작 문제와 관련해서 대화를 해 왔어요. 비록 물밑에서나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얘기요.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돌변해서 평민당 죽이기, 김대중 죽이기가 시작됐소.” 정치란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비록 김대중 죽이기, 평민당 죽이기로 비쳤지만 어쨌든 김대중 대통령은 탄생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을 정계 개편의 주체들은 앞을 내다보는 눈을 가져야 할 것이다. 누구의 눈이 정확했는지는 금년 12월이면 알 수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