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P는 YS와 골프회동을 갖고 그의 마음을 돌려 놓기로 한다. | ||
‘8월12일 검찰은 마침내 평민당 김대중 총재와 김원기 원내총무를 국가 보안법 위반 불고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로써 정국은 또 한 차례 회오리 속에 휘말려들 것으로 전망되는데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이 김대중 정국으로 표현이 바뀌어가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검찰 발표를 놓고 긴장하고 있는 것은 평민당뿐만 아니라 여권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검찰 조사 결과에 따라 정부나 평민당 중 어느 한쪽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검찰 발표대로 김대중 총재가 지난 4월 서경원 의원의 밀입북 사실을 인지했고, 서 의원이 북쪽에서 받아온 5만달러 중에 1만달러를 받은 사실이 확인되면 이를 부인해온 평민당과 김대중 총재는 사법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정치 도의적인 면에서 회복 불능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 확실하다.’
‘반면에 검찰 발표가 평민당 주장대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거나 객관적으로 입증할 만한 증거 없이 유야무야 돼버린다면 정부 여당으로서는 평민당의 대역전 공세에 휘말려들 수밖에 없다. 양측이 다 사활이 걸린, 전면전으로 빠져들고 있는 느낌이다.’
당시 사건에 대한 일선 기자들의 인식이다. 여기서 다시 의문이 제기된다. 민정 민주 양당이 극비리에 합당을 위한 물밑 교섭을 진행하고 있던 89년 6월과 7월 및 8월, 제1야당 평민당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다. 해답은 그렇다. 그해 3월에 발생한 문익환 목사 밀입북 사건에 이어 6월 또 다시 발생한 서경원 사건으로 안기부 및 검찰과의 전면전에 돌입해 있었다. 다시 말해서 두 당이 합당하든 3당이 합당하든 그런 일은 알지도 못했고, 알았다 해도 손을 쓸 여유가 없었다.
여기서 6공 청와대 Y비서관의 진술이다. “서경원 밀입북 사건이라는 돌풍 속에서 김대중 총재가 여권과의 정치적 협상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능하면 사건을 확대시키지 않고 조기에 협상을 통해 해결되기를 바랐는데 그 첫 번째 대상이 바로 청와대 박철언 정책보좌관이었다. 그런데 왜 타협이 안되었느냐. 박 보좌관에게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당시 여권의 분위기를 살펴보자. 노태우 대통령이 박철언 정책보좌관을 청와대로 불렀다.
“말해 봐. 아까 전화로 한 얘기가 무신 얘기야. DJ를 어떻게 해.” “각하. 김대중 총재는 제1야당의 총재입니다.” “내가 그걸 모르나.”
“그런 데다가 지금 평민당하고의 합당 교섭은 끝난 것이 아니고 지금도 진행중입니다.” “그러니까 서경원이 사건을 조용히 끝나게 하자, 그 말이가.” “서경원 사건이 엄청난 파장으로 번지고 있다카는 거는 저도 압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사건이라 해도 정계개편이나 합당에 비할 수는 없는 기 아니겠습니까.”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만, 박철언이. 남의 걱정말고 자기 처신이나 조심해. 무신 말인지 알겠어.” 다시 Y비서관의 진술이다. “박철언 보좌관의 한계는 군부와 여권 핵심부의 제동이었다. 이 무렵 군부나 여권 핵심에서는 박 보좌관이 북방 정책의 총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것 때문에 특히 군부로부터 상당한 비판의 대상이 돼 있었다.
또 여권에서도 이 문제와 관련해 집중적으로 건의가 들어갔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서경원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김대중 총재를 살리기 위해 발벗고 나설 수는 없었던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군부와의 관계 등을 고려할 때 평민당과의 합당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뭐 그라고 있어. 알았으면 그만 나가 봐.” “각하.” “또 할 말이 있어.” “그러면 평민당하고의 합당은….” “평민당하고는 제휴 안한다고 안했나. 그런데 뭐 자꾸만 평민당, 평민당 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물러가겠습니다.” 무소불위의 ‘황태자’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계개편의 결말은 과연 어떤 것일까. 당시의 박철언 정책보좌관의 구상을 고려할 때 일부 TK 세력이 민주당과 연합하는 시나리오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3당 합당은 처음에 민정 민주계의 양당 합당에 DJ와 JP가 있는 것이다. 한편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먼저 기자의 질문이다. “지난 7월10일 청와대 회담 뒤에 나온 정계 개편 문제와 관련해서 청와대의 발표는 극히 포괄적이라는 인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계에서는 노태우 김종필 중심의 보수연합설이 나오고 있는데 진상은 무엇입니까.”
“그런 내용의 구체적인 합의는 없었다. 그동안 우려했던 대로 우리 사회가 이념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과 소련 등 공산주의 종주국들마저 개혁을 부르짖고 있는 판국에 뒤늦게 잘못된 진보주의적 인식을 가지고 이념 문제로 혼선을 빚고 있다는 것이 이 얼마나 걱정스러운 일이냐. 따라서 우리는 보수적인 위치에서 입장을 분명히 하고 급진이든 완속이든 간에 진보는 진보대로 자기 빛깔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나눈 것뿐이다.”
“회동 후 김 총재께서는 정계개편에 앞서 먼저 5공 청산이나 광주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여야간의 중재 역할을 자임했습니다. 그러면서 4당이 다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최선이 아니면 차선책을 강구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차선책은 어떤 내용입니까.”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총재는 답변하고 있다. “내가 말한 차선책은 앞으로 얘기해서 정리가 돼야 하니까 지금 당장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몇 가지 상황을 생각해 보자.
▲ 서경원 밀입북 사건으로 불구속 입건된 DJ. | ||
첫째, 광주 문제는 그동안 자그마치 9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그런 데도 아직까지 해결이 안된 것을 보면 당시의 상황, 당시의 생각들을 지금에 와서 완전하게 반영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국회 청문회를 했는데 이것 역시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끝난 것으로 봐서 상황을 너무 크게 잡은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다. 셋째, 사법적 처리든 정치적 처리든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제한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자, 그렇다면 이런 현실 상황들을 도외시하고 그냥 밀어붙인다고 해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 아무 것도 없다. 진짜로 아무 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다 하는 말을 한 거다.”
다시 기자의 질문.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는 것은 정치권이나 국회에서 해결책을 모색하다가 잘 안되니까 나온 얘깁니다. 그렇다고 안할 수는 없으니까 차선책이라도 찾아보자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건 정치권의 생각일 뿐 국민의 뜻은 아닙니다. 최선을 요구하는 국민들이 납득하겠습니까.”
“그런 식으로 문제를 제기한다면 할 말이 없다. 내 얘기는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을 도출해 낸다는 것은 어려우니까 그런 인식 하에 차선책이라도 찾아보자는 것인데 그런 식으로 접근한다면 이 문제는 사실상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둘이서 만나보고….” 여기서 둘이란 두 정당이다. 구체적으로는 민정당과 신민주공화당이다. “그런 뒤에 셋이서, 또 넷이서…. 이런 식으로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해서 내가 김대중, 김영삼 총재에게 3자 회동을 제의했는데 만나서 얘길 해 보면 해결책이 나온다. 최선은 아니라도 그 다음 정도의 결과는 얻어낼 수 있지 않겠느냐 나는 이렇게 믿고 있다. 세상일이라는 게 어디 그렇게 뜻대로 되는 일이 있는가.”
그즈음 YS와 JP의 이른바 골프 회동이 있게 되는데, 골프 회동을 놓고 통일민주당과 신민주공화당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김종필 총재와 김용환 의원의 대화 내용이다. “어젯밤에 황병태 의원을 만났습니다.” “황병태. 아, 통일민주당 정책위의장 말이요.” “그 친구가 저하고 고시 동깁니다. 그래서 가끔 어울리는데 어젯밤은 그 친구가 엉뚱한 얘길 꺼냈습니다.” “무슨 얘길.” “총재님하고 YS하고 골프 회동을 한 번 마련하면 어떻겠느냐….”
“골프 회동요.” “저희들이 그런 식으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의미 있는 표현 아닙니까.” “난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YS는 골프를 못 치잖소.” “상관이 있습니까? 어차피 골프가 목적이 아니잖습니까.” “그럼 뭐가 목적이오. 둘이서 잔디밭을 산책이라도 하라는 게요.” “그것도 좋지요. 비로소 알게 됐는데 그동안 청와대 쪽에서 연락이 없었던 것은 YS가 틀었기 때문에 그랬답니다.”
“YS가 뭘 틀어요?” “민정당하고 우리 신민주공화당의 제휴에 강력히 제동을 걸었다는 얘기죠. 그랬기 때문에 청와대 쪽에서는 결단을 못 내리고 주저하고 있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골프 회동을 통해서 YS의 마음을 돌려놓을 필요가 있다?” 황병태 의원과 김용환 의원이 서로 먼저 골프 회동을 제의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황병태 의원의 진술. “사실은 골프 회동을 먼저 제의한 것은 통일민주당 쪽이었고, 3당 합당 교섭 과정에 김용환 의원은 참여한 일이 없다. 당연했다. YS는 신민주공화당이 참여하면 민정당하고 통일민주당의 합당은 절대 불가라는 조건을 내놓고 있을 때인데 김용환 의원이 어떻게 들어오나. 그렇다면 골프 회동은 어떻게 해서 이루어졌나.
89년 9월, 그러니까 정기 국회가 열렸을 때쯤으로 생각이 된다. 그때 JP는 상당히 외로웠다. 노태우 대통령에게 민정당하고의 합당을 제의해놓고 있었지만 진척은 잘 안되고 또한 국회에서는 신민주공화당의 애매모호한 입장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런 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내가 김용환 의원에게 JP 기 좀 살려주자 해서 YS하고의 골프 회동을 제의한 거다.”
그즈음 노태우 대통령은 민정당의 박준병 의원을 급히 찾았다. “안녕하십니까. 박준병입니다.” “아, 박 장군. 일본에서는 언제 돌아왔어요?” “박철언 보좌관이 지시한 대로 도쿄에서 2시 비행기를 탔습니다.” “박철언이가 지시를 했어요?” “일본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각하를 대신해서 건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박철언이가 지시한 기 아니지. 내가 지시한 것 아니오.” “어쨌든 그래 가지고 김포에 도착해서 곧바로 들어왔는데, 홍 실장 지금 몇 십니까.” “6시5분 전입니다.” “시간은 뭐 할라고.” “박 보좌관이 그랬습니다. 각하의 지시가 늦어도 6시까지는 청와대 현관에 도착하라는 명령이다. 그래서 보던 일도 다 못보고 들어왔는데 혹시 서울에 무슨 큰 일이라도 일어난 것 아닙니까.”
“큰일이야 났지. 어쨌든 앉읍시다.” “박 장군, 아니 박 의원. 인자부터 내가 하는 얘길 잘 들으소.” 박준병 의원의 증언 진술이 이어진다. 노태우 대통령은 무엇 때문에 3당 합당 협상 과정에 박 의원을 추가로 참여시킬 필요가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