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공 핵심인물의 사법처리문제가 불거지자 노태우 대통령 (왼쪽)은 정호용씨(오른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간평 가 묵살이라는 카드를 꺼내든다. | ||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전두환 대통령을 위해 서슴없이 감옥까지 갈 정도로 의리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장 전 부장은 호남 출신 인사이다. 그러나 그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5공 핵심 세력들로서 영남권 인사들이다.
장 전 부장이 대선에 나오기까지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과의 조율은 불가결했을 것이다. 장 전 부장은 전두환 대통령에게 심려를 끼쳤다는 말로서 사전에 조율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했지만 과연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다면 이회창 후보의 영남권 아성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인가. 장세동 전 안기부장과 함께 또 한 사람의 영남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5·18 당시 특전사 사령관 정호용 전 의원이다.
정호용 전 의원은 89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정호용 사건의 주인공이다. 정호용 사건은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의 3김씨가 이끄는 야당이 지목한 5공 핵심 인물 6인에 정호용 전 의원이 포함돼 있었는데 노태우 대통령이 정호용 전 의원을 빼줄 것을 요청한 사건이다.
89년 초 청와대로 돌아가자. 노태우 대통령이 김윤환 민정당 원내총무를 호출했다. “김 총무, 아무래도 일이 자꾸만 안 좋은 쪽으로 꼬여가는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야 3당 총재들의 합의 말씀입니까?” “이제까지는 우리가 백담사 전임을 청문회에 끌어내는 것 때문에 고심해 온 것 아니야.” “전임을 청문회에 내세울 겁니까?” “내세우든 내세우지 않든 양쪽 다 고민 아니야. 내세운다카만 백담사를 설득하는 기 고민이고, 내세우지 않는다카만 야 3당을 설득하는 기 고민 아니야 그렇잖아?”
“그거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전임을 설득하는 거 보다는 야 3당을 설득하는 기 안 낫겠습니까?” “그거는 김 총무가 뭘 잘 모르는구만. 나는 시방 그 얘길 하고 있는 기 아니야.” “아니면….” “야 3당 총재가 5공 핵심 여섯 명을 사법처리하기로 합의를 안 했나.”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기는 뭘 알고 있어. 여섯 명 중에 정호용이가 포함돼 있다카는 것도 알고 있나?”
그제서야 김윤환 총무가 알아들었다. “안 그래도 명단을 보고 일이 좀 어렵게 되겠다 싶었습니다.” “정호용이는 내가 후계자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야. 그런 사람을 이제 와서 사법 처리할 수 있나.” “방법은 있을 낍니다.” “무신 방법?” “연구해 봐야지예.”
“연구할 시간이 어데 있어. 일이 코앞에 닥쳤는데.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우리가 대선 때 공약한 중간평가 안 있나. 이거를 이용해서 한 번 정면 돌파해 보면 어떻겠나 이 말이야.” “중간평가를 이용한다면 중간평가를 조기에 단행해서….” “아니야 그 반대야.” “반대요?” “중간평가를 묵살하는 거지. 그러만 정국의 초점이 5공 청산에서 그쪽으로 돌아가는 거 아니겠어.”
89년 당시 혼란한 정국을 정면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은 87년 대선 때 노태우 후보가 약속한 중간평가밖에 없었다. 그런데 왜 결과적으로 중간평가는 이루어지지 않았는가. 그리고 이 문제와 정호용 사건과는 어떤 관계가 있었는가.
한편 노태우 대통령이 한창 갈등을 하고 있을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백담사에서 첫 번째 생일과 겨울을 함께 맞이하고 있었다.
89년 1월18일. 영하 16℃. 전두환 전 대통령의 59회 생일이다. 이순자씨가 일어나 보니 이른 새벽에 이미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나가고 없었다. “이상하네. 이분이 눈이 이렇게 쌓였는데 아침부터 어딜 가셨지.” “추운데 뭐 하러 나오노.” “어머나 거기 계셨네. 거기서 뭘 하고 계세요?” “서울서 누가 내려올 거 같아서 기다리고 안 있나.”
이순자씨가 허리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며 걸어 왔다. “아이구머니나 눈이 허리까지 빠지네. 이렇게 눈이 쌓였는데 내려올 사람이 누가 있다고 나와서 기다리고 있어요.” “다른 날은 몰라도 오늘은 특별한 날 아니야. 아이들도 그렇고 그래도 사람들이 안 내려오겠나.” “용대리에서 들어오는 길이 막혔어요. 저렇게 눈이 쌓였는데 어떻게 차가 들어와요?”
“그럴 거 같아서 새벽에 일어나 가지고 경호원들을 안 시켰나. 승용차 한 대가 들어올 정도면 되니까 어떻게 길을 좀 내보라고 말이야.” “그래서 새벽부터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군요. 그래 경호원들이 길을 냈어요?” “그러니까 기다리지. 아니만 뭐 하러 이러고 있어. 인자 첫 번째 손님이 도착할 때가 됐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이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다행히 용대리로부터의 진입로에 쌓인 눈을 치우고 승용차 한 대가 들어올 수 있는 길이 트였다. 아침 일찍 서울로부터 가족들과 측근들이 내려와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였다. 축하 전보가 4백 통. 여러 종류의 서적들이 10여 권 우편으로 배달되었다.
저녁 무렵 뜻밖의 손님이 도착했다. 법정 스님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지 백담사에서 처음 맞이하는 생일날 전두환씨는 만가지 감회가 교차했다. 절에서 차리고 서울에서 차려 온 푸짐한 음식을 앞에 놓고 울적한 심정을 달래기 위해 노래를 불렀다. 측근들이 부르고 가족들이 부르고 절에 있는 사람들도 한 곡씩 불렀다.
마침내 전씨의 차례가 됐다. 약간 취기가 도는 목소리다. “아니 다들 우째 내를 보고 박수를 치노. 어이 안현태?” “각하 오늘은 59회 생신이십니다. 한 곡조 안 뽑으실 수 있겠습니까.” 좌중이 박수로 노래를 청했다. “아니 그럼 내더러 창가를 하라 이 말이야?” “백담사 주지승도 파계하고 유행가를 불렀으니 어르신께서도 한 곡조 하셔야지요.”
이순자씨도 좌중과 함께 재촉을 했다. “그렇게 하세요. 당신 왜 18번 있잖아요.” 좌중이 더욱 힘을 얻어 박수를 쳤다. “참,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카더니 마누라까지 그쪽 편이네. 좋다. 주지 스님께서 청하는데 안 부를 수 없지. 대신 조용히 들으셔야 합니데이.”
전두환 전대통령은 그의 18번인 ‘방랑시인 김 삿갓’이란 노래를 불렀다. ‘김 삿갓’이란 대목에선 ‘전 삿갓’으로 바꿔 부르는 여유도 보였다. 그러나 일절이 끝나갈 즈음에 전두환씨는 마침내 울먹이고 말았다. 순간 좌중에서도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안현태 경호실장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각하, 이러시면 안됩니다. 각하….” “현태가.” “예” “말해 봐라. 다들 어데 갔노.” “누가 말씀이십니까.” “다 어데 가고 이양우 민정기 김정기 이놈아들만 이 자리에 남아 있나 이 말이야.” “모두들 생신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각하.”
“이양우도 민정기도 그렇고 김병훈이도 그렇고 여기 남아서 고생할 이유가 없다. 내가 이 사람들한테 뭐 해준 게 있나. 청와대에서 진급도 못 시켜 줬는데…. 진급 시켜준 놈들은 한 놈도 안 보이고 와 이것들만 남아서 내 때문에 고생하나. 대통령 시켜준 놈은 어데 가고 장관 한자리도 시켜주지 못한 이것들만 남아서 고생을 하나 말이야, 앙!” 마침내 전두환 절대 군주의 참았던 노기가 폭발했다. 술상을 엎어 버린 것이다. S대령의 회상이다.
“89년 초 백담사의 불만은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유배된 지 3∼4개월이 지난 시점에 6공 청와대와 백담사간의 갈등은 갈수록 격화됐다. 원인은 6공 청와대가 추진하는 5공 청산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백담사측의 불신이다. 40년의 우정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노태우 대통령을 믿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백담사일지를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88년 12월1일. 전 전 대통령이 백담사에 들어간 날이 11월23일이었으니까 12월1일은 약 일주일 뒤의 일이다. 인제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익명의 인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백담사로 통하는 모든 전화에 도청장치가 설치됐다. 오늘 12시부터 작동된다. 조심하라. 이 전화가 백담사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다.
88년 12월31일. 한 해가 가는 마지막 쓸쓸한 날이다. 오후 7시40분 관할지역 군단장과 사단장이 미리 세배를 드린다면서 군단 보안대장과 함께 군용차가 아닌 봉고차를 타고 찾아왔다. 오리털 파카로 신분을 감춘 민간인 복장이었다.’
“그들이 왜 민간인 복장을 하고 군용차가 아닌 봉고차를 타고 왔느냐. 말할 것도 없이 주위의 눈을 의식해서 군단장이나 사단장이 백담사를 방문한 사실을 숨기자는 것이다. 이것 또한 전 전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더욱 화를 돋운 것은 이 두 사람이 전 대통령을 찾아간 다음에 결국 군단장은 예편해서 옷을 벗었고, 사단장은 좌천됐다는 보고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심기가 몹시 사나와진 터에 전 전 대통령으로 하여금 분통을 터뜨리게 하는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그 해 겨울 백담사로 통하는 길목에 세워진 검문소에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사복 차림의 두 사람이 검문을 하고 있다. “실례합니다. 어디 가십니까?” “나는 합참의장 최세창 대장이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그를 알아보았다. “알고 있습니다. 장군님.” 최세창 대장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알고 있으면 통과를 시켜야지. 어째서 차를 세우나.” 두 사람의 청년은 전혀 긴장하지 않고 사무적으로 되물었다. “묻고 있잖습니까. 어디 가십니까?” “내가 그런 것까지 너희들에게 말해야 되나. 도대체 너희들 소속이 어디야?” “청와대 경호실입니다.” “청와대 경호실? 백담사 경비를 경호실에서 맡고 있나.” “백담사에 가십니까.”
“이렇게 멀리 와 계신데 한 번도 찾아뵙지를 못했다. 그래서 연말 연시를 맞이해서….”최세창 합참의장의 말이 중간에 끊어졌다. 검문 요원의 단호한 어조에. 백담사엔 못 가십니다.” “뭐, 뭐야?” 군 최고 책임자인 합참의장의 행동까지도 제약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