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적 합의를 비롯해 앞으로 10년간에 걸쳐서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실행하겠다는 것이다. 자신의 임기 5년 동안은 그렇다 치고 그 뒤의 5년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정치적 연속성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의 여권에 의한 정권 재창출이 지속될 것인가.
그런데 항상 그렇듯이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되기가 쉽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여의도 유세장에서 중간평가를 받겠다는 공약을 한 것에 대해 측근들은 불만이었다. 선거 기간 내내 유리한 입장이었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부담스러운 공약을 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간다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신중함이 드러난 사례였다.
89년 한국정치 사상 초유의 여소야대 정국에서 노태우 정권은 공약으로 내걸었던 중간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민정계 내부에서도 이종찬 의원 등은 국민에게 한 선거 공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내부적으로는 당을 분열시키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분파주의적 행동이라고 몰아붙였다. 외부적으로는 김윤환 원내총무를 내세워 야권을 분열시켰던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핵심 측근들을 청와대로 불러 중간평가에 대한 의중을 일일이 확인했다. 이춘구 의원, 최병렬 문공부 장관, 김용갑 총무처 장관 그리고 박철언 정책보좌관과 최창윤 정무수석 등이다. 노태우 대통령이 돌아가면서 질문을 하는데 김용갑 총무처 장관의 차례가 되었다. 다혈질의 김용갑 장관이 마침내 핵심을 건드렸다. 그렇게 물어 보는 의중이 뭐냐. 대통령 자신은 중간평가를 하겠다는 것이냐 안 하겠다는 것이냐 먼저 속시원히 밝히라는 것이다.
“시방 내한테 뭐라고 했습니까? 김 장관의 생각을 묻기 전에 내부터 중간평가를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 태도를 밝히라고 했어요?” 김용갑 장관은 아차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단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중간평가에 관한 한 여러 번에 걸쳐 건의를 올렸습니다. 우리가 살 길은 중간평가를 통해 여소야대 정국을 정면 돌파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데 뭡니까?” “각하께서는 한 번도 명쾌한 답변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지한테 중간평가를 받는 기 옳으냐 받지 않는 기 옳으냐 하문 하시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순간 모인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노태우 대통령이 나섰다. “아, 조용히 하소. 조용히.” 그러자 이춘구 의원이 입을 열었다.
“각하.” “아, 이춘구 의원도 무신 할 말이 있습니까?” “제가 아는 한 이 자리에 참석한 전원은 중간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들입니다. 각하의 뜻은 어느 쪽입니까?” “좋아요. 말해 드리지. 내가 오늘 이 회의를 소집한 것은 중간평가 준비작업을 지시하기 위해섭니다.” 89년 3월9일이었다. 이날 모임에는 위에 열거한 인물들 외에도 홍성철 비서실장, 박세직 안기부장, 현홍주 법제처장 등도 참석했다.
이춘구 의원이 의아한 듯 확인했다. “중간평가를 지시하시기 위해 이 모임을 소집했다는 말씀이십니까?” “왜 그 말이 이상합니까?” “아닙니다. 이상한 게 아니라 그 말씀은 중간평가를 받기로 결심하신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이게 무슨 말이야. 허, 그러고 보니 이 의원이 대통령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구만.”
자신을 도와주려는 취지로 말문을 연 이춘구 의원이 수세에 몰리는 것으로 판단한 김용갑 총무처 장관이 편들고 나섰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각하.” “그렇지는 않아요?” “제가 아는 한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전원은 지난 대선 때 각하의 당선을 위해 전력투구한 측근 중의 측근입니다.” “내가 그런 사실을 모른다캤습니까?”
“그런 말씀은 안 하셨습니다. 다만 저희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하께서는 이미 저희들이 아닌 다른 팀에 중간평가 준비 작업을 맡기셨습니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뒤늦게 저희들에게 중간평가 준비 작업을 지시하신다 하니 그게 좀 이상합니다. 과연 어느 쪽이 진짜 중간평가 준비팀입니까?”
▲ 89년 민정당의 원내총무를 맡았던 허주 김윤환. 당시 ‘소여’의 어려움에 직면한 그는 야권과 만나겠다는 생각을 한다. | ||
“기구 명칭은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어쨌든 이 의원이 대책위원장을 맡고 나머지 분들은 위원으로 들어가서 힘을 합해 중간평가 준비에 만전을 기해 주기 바랍니다. 그라고 사무실은 청와대 뒤편 안기부 안가 있지요? 박세직 안기부장에게 지시해서 그 집을 쓰도록 했으니까 그리케 하시고 중간평가를 단행하는 디데이는 오는 4월입니다. 한 달밖에 안 남았어요. 시간이 임박하니까 서두르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참석자들이 뭔가 할 말을 하려고 했지만, 노태우 대통령이 서둘러 회의를 끝냈다.
중간평가와 관련한 김원기 당시 평화민주당 원내총무의 분석이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수세 일변도에 있던 여당이 애초의 공약과는 달리 5공 청산이라는 멍에에서 탈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기한 것이 중간평가였다. 그리하여 국민 투표에 승리함으로써 5공 청산을 할 뿐 아니라 여소야대 정국을 한꺼번에 뒤집어 보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나온 협박성 무기가 바로 중간평가였다.”
이와 같은 평민당 시각에 대하여 수세 일변도에 있던 소여의 주장은 어떤가. 당시 민정당 원내총무 김윤환 전 의원의 설명이다. “그래 가지고 야 3당이 합심을 해 가지고 중간평가를 하자고 공세를 펼쳐 오고 있었는데, 민정당 혼자서 안 하겠다고 우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국민투표를 해도 확실히 이긴다는 보장이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중간평가를 받고 안 받고 그런 거는 어찌 보면 어려운 것은 아니고 야 3당이 합쳐서 사사건건 반대를 하겠다고 나서면 앞으로 국정 운영이 제대로 안되겠다 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 그래서 어찌 됐건 여당의 원내총무로서 야권을 방문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에는 제일 초점이 정호용 의원 처리 문제였는데 정호용이 문제는 곧 5·18 문제이고 5공 청산의 문제였다. 당시 야권에서는 5공 핵심 여섯 사람의 공직 사퇴를 요구해 왔는데 청와대에서는 정효용 의원의 공직 사퇴만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뭐 도리가 있나. 그 당시에 세 야당이 힘을 합쳤는데 못할 게 뭐 있었겠나.”
여기서 잠시 짚고 넘어갈 사항이 있다. 허주 김윤환은 누구인가. 88년 5월 그가 소여의 민정당 원내총무로 취임했을 적에 도하 모든 언론 매체는 묻고 있다. ‘앞으로 정국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이에 그는 대답하고 있다. “여야가 공존하는 동반 정치 풍토를 이룩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당시 J일보 허아무개 기자와의 일문일답이다. “이번 4·26총선의 의미를 어떻게 보나.” “이제는 힘의 정치, 대립의 정치를 지양하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다운 정치를 펴 달라는 국민 여망의 표출로 본다. 이 같은 여망을 여야가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서로 노력한다면 처음으로 맞이하는 원내 구도이긴 하지만 정치 발전을 이루고 민주주의의 정착을 앞당길 수 있는 큰 전기가 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거대 야당이 쥐고 흔들면 소여의 민정당은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시각이 있다. 또한 청와대쪽은 정국을 지나치게 낙관하고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은데….” “반드시 비관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노 대통령의 6·29선언은 민주화를 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하고 우리 민정당이 이 선언을 그대로 실천해 나간다면 무슨 장애가 있겠나. 경우에 따라서는 위기 상황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없는 거는 아니지만 국민의 성숙된 역량과 그에 부응하려는 정치인의 노력이 충분히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대야 협상은 어떤 자세로 임할 것인가.” “대화와 타협으로 합의점을 찾아내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당은 민주화에 대한 의지가 확고한 만큼 야당과의 관계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선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야당 인사들과 접촉해서 허심탄회하게 정국 운영 방안을 논의해 나갈 것이다.” “상당히 장신이다. 신장이 얼마인가.” “별명이 ‘펜슬’이다. 연필처럼 길쭉하다는 뜻인데 1m81cm이다. 체중은 73kg.”
당시 김윤환 원내총무는 취미가 ‘홀로 여행’이고 골프 핸디는 14. 주량은 두주불사하다가 간을 조심하라는 의사의 경고를 받고 가차없이 끊었다. 가족은 아들 없이 딸이 둘이고, 정계 은퇴 후엔 둘째 딸이 프로 골퍼 지망생인데 따라다니면서 캐디 노릇이나 하고 싶다고 했다. 허주 김윤환의 별명은 ‘하회탈’이다.
이제 새로 탄생할 노무현 정권도 야권과의 공조가 필요하다. 국무총리, 국정원장 등 이른바 ‘빅4’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최초에 한해서 실시하지 말자는 첫 번째 사안에 대해 야권에서 제동을 걸고 나와 무산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앞으로 대야 협상 창구를 누가 맡을 것인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야말로 국민 통합의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정치적 협상 능력이 요구되고 있다.
한나라당도 오는 2004년 총선에서 다수당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반대나 제동만을 일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새천년민주당이나 한나라당 공히 개혁 특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체제를 정비하고 있다. 한나라당 젊은 의원들 지역구에서는 민주당의 개혁 노선에 합류하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2004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1년이 못가서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일반론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를 비롯한 민주당 주류들은 사실상의 정권 창출이나 대통령 선거 승리는 2004년 총선에서 승리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연 노무현 당선자를 중심으로 개혁 그룹들이 헤쳐 모일 것인가. 정계개편의 폭풍은 다시 불어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