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비대위 정당성 문제 삼아 반발…조기 전당대회 개최 주장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직에 이름이 거론되는 인물 대부분이 손사래를 치며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는 가운데, 친박계가 비대위 정당성에 반발하고 나서며 향후 비대위 출범에 난항이 예상된다. 사진은 지난 3일 ‘2018 국회 대비 정책혁신 워크숍’에 참석한 김성태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박은숙 기자
우선 비대위원장으로는 많은 유명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회창 전 한나라당(현 한국당) 총재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대위원장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무엇보다 이회창 전 총재는 한국당의 정체성과 가장 걸맞은 인물이지만, 정작 당사자는 불쾌감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총재는 “한국당으로부터 연락도 없었지만, 그런 요청이 오더라도 비대위원장을 할 생각이 없다”며 “언론을 통해 떠보는 것 아니냐. 정치권이 예의가 없다”고 말했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당의 공천권을 잡고 휘두르며 당시 친문계를 ‘컷오프’시키는 등 과감한 개혁을 시도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민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그는 이후 민주당을 탈당하며 정치권에서 한 발짝 멀어졌다. 게다가 김종인 전 위원장은 현 한국당 상황에 맞지 않는 인물이다. 한국당 현역 의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을 김종인 전 위원장에게 선뜻 맡기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정치권 관계자들을 통해 거절의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각계의 유력 인사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정치권에선 김형오·박관용·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구원투수로 거론되고 있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맡았던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을 감찰하다가 옷을 벗은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도 얘기가 나돈다. 또한, 황교안·김황식·정홍원 전 국무총리와 이국종 수원대 교수, 홍정욱 헤럴드 회장,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까지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사들이 비대위원장직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정미 전 재판관은 “제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한국당 비대위원장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밝혔고, 최장집 교수도 “농담 같은 소리”라며 거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모두가 손사래를 치자 한국당은 급기야 지난 2일 당 홈페이지를 통해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및 위원 대국민 공모 및 추천’ 공고를 게시했다.
그나마 현실적으로 영입이 가능한 인물은 김병준 교수다. 안상수 비대위 준비위원장도 “김병준 교수는 당연히 후보군에 들어가 있다”라고 밝히며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병준 교수 역시 “국가에서 녹을 먹고 미래에 대해 걱정도 하는 사람이 단순히 한국당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당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같이 고민하자’면 고민해야 할 판”이라며 “딱 잘라 덮어버릴 수 있겠느냐”라고 했다. 공식적인 제안이 오면 비대위원장직을 맡겠다는 의지를 에둘려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도 진통은 존재한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김진태 의원은 “비대위원장에 노무현의 사람(김병준 교수)까지 거론되고 있다. 고맙지만 정중히 사양하고 싶다”면서 “반성을 해도 우리가 하고 혁신을 해도 우리가 한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친박계 의원들이 김병준 교수에게 반발하는 이유는 그 인물 자체에 대한 반대보다는 비대위에 대한 반발로 해석된다. 현재 비박계 의원들이 지방선거 이후 당의 주도권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비박계인 김성태 권한대행이 비대위 출범을 먼저 제안했고, 비대위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가이드라인까지 던져놓은 상황이라 한국당은 현재 ‘김성태 쇄신안’에 자연스레 따라가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주도권을 내주고 싶지 않은 친박계는 비대위의 정당성을 문제 삼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한국당이 거쳐야 할 근본적인 혁신은 정당을 이렇게까지 만든 주역들에 대한 대대적인 청산작업인데 그 대상인 친박계가 반발하는 것”이라며 “‘인적 쇄신을 해야 한다’라는 메시지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으니 그 메시지를 말하는 메신저, 비박계 김성태 의원을 흔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평론가는 “친박계는 지금 온갖 명분을 가지고 와서 김성태 원내대표가 주도하는 비대위를 흔들고 있다”며 “누가 비대위원장으로 오더라도 그 사람의 언행이나 출신지를 꼬투리 잡으며 물러나라고 할 것”이라고 했다.
기자가 한 친박계 의원에게 전화통화를 통해 ‘비대위와 준비위가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당에서) 매일 (친박·비박계가) 싸운다고 하니까 뭐라고 말도 못 하겠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비박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김성태 권한대행의 주도로 출범하는 비대위’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건 이미 지나간 건데 어떡하겠냐. 지나간 건 돌이킬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지금과 같이 친박계와 비박계 간의 팽팽한 신경전은 앞으로 더 격화될 전망이다. 안상수 준비위원장은 당 전국위원회를 오는 17일 개최하고 이날 비대위원장을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국위는 비박계 위원과 친박계 위원들이 골고루 구성돼 있어 적잖은 마찰이 예상된다.
한편, 이같이 계파간 의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자 당내에선 비대위를 꾸리지 말고 ‘조기 전당대회’를 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며, 이 주장은 친박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새어나오고 있다. 김진태 의원은 지난달 28일 “전대를 무기한 미룬다고 능사가 아니다”, 윤상직 의원도 “이른 시일 내에 전대를 열어 대표를 뽑고, 그 대표가 잘하면 21대 총선까지 가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비박계가 주도권을 잡은 비대위로 인해 자칫 친박계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에 대한 우려로 해석된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