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접고 종군기자 자처…캄보디아 좌익 무장단체 크메르루주에 붙잡혀 피살 추측
에롤 플린과 숀 플린
에롤 플린은 배우였던 릴리 다미타와의 첫 번째 결혼에서 숀 플린을 낳았다. 1941년이었고, 다음 해 부부는 이혼하게 되면서 어린 숀은 어머니의 손에서 성장한다. 이혼하긴 했지만 숀은 아버지와 친하게 지냈고, 무비 스타인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듀크 대학에 진학했지만, 아버지를 쏙 빼닮은 금발 미남 숀 플린은 이내 곧 영화계로 진출한다. 견인차 역할을 한 사람은 친구이자 배우인 조지 해밀턴. 그가 주연을 맡은 ‘해변에서 생긴 일’(1960)에 단역으로 출연한 후 숀 플린은 스무 살이 되던 1961년에 ‘캡틴 블러드의 아들’ 촬영을 시작한다. ‘캡틴 블러드’는 아버지 에롤을 대표하는 캐릭터. 그 속편격인 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이후 그는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등 주로 유럽에서 배우 활동을 했지만 곧 연기에 싫증을 느꼈다.
이후 그의 역마살은 시작된다. 1984년에 아프리카로 가 사파리 가이드와 사냥 일을 접한 그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가끔씩 유럽에 건너가 싸구려 스파게티 웨스턴에 출연하곤 했다. 이후 그는 포토 저널리스트로 방향을 정했고, 전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날아간다. 첫 경험은 1966년의 베트남이었다. 프리랜서 포토그래퍼로서 ‘타임’이나 ‘라이프’ 같은 유명 잡지에 사진을 실었던 숀 플린은 한 컷을 건지기 위해 그 어떤 위험도 감수했고, 총격전의 와중에서 목숨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으며, 직접 낙하산을 타기도 했다. 1967년에 아랍 전쟁 취재를 위해 이스라엘로 갔던 그는 1970년에 캄보디아로 들어간다. 북베트남이 그곳으로 진군한다는 뉴스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동료였던 스티브 벨이 촬영한 숀 플린과 데이너 스톤의 마지막 기념사진.
1970년 캄보디아와 베트남이 접한 국경 지역은 매우 위험했다. 두 사람이 실종된 4월 6일에만 프랑스와 일본의 포토그래퍼 네 명이 베트콩에게 잡혔다. 이때부터 6월까지 총 25명의 저널리스트 잡혔고, 그 중 세 명은 죽었고 일부는 풀려났으며 실종된 사람도 있었다. 아무튼 그날 이후 플린과 스톤, 두 사람은 목격되지도 않았고 시체가 발견되지도 않았다. 추측만 있을 뿐이었다. 당시 아버지 에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상황. 어머니인 릴리 다미타는 막대한 돈을 쓰며 아들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나섰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결국 정부는 두 사람이 베트콩에게 1년 이상 잡혀 있다가 1971년 6월에 크메르루주 반군에게 넘겨져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들이 공식적으로 ‘실종 후 사망’ 선고를 받은 건 1984년. 하지만 다른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캄보디아의 어느 마을에 그들이 몇 년 동안 살았다는 얘기가 나왔다. 1980년대엔 멕시코의 어느 마을에서 두 미국인이 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그들 중 한 명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유명한 영화배우라고 자랑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이에 그들이 실종되었을 때 동료 중 한 명이었던 포토그래퍼 팀 페이지가 취재진을 이끌고 1990년에 캄보디아의 상케 카옹이라는 마을로 갔다. 그곳은 CIA 문서에 의하면, 두 사람이 몇 달 동안 잡혀 있던 곳이었다. 페이지는 그곳에서 한 노파를 만났다. 그녀의 증언에 의하면 과거 한 미국인이 자신을 배우의 아들이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배우 시절과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당시의 숀 플린.
페이지는 사람들의 증언에 따라 이동했는데, 그는 두 사람이 미군의 캄보디아 진입 후 베트콩에 의해 계속 북쪽으로 이동했고 결국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 반군에 넘겨진 것으로 추측했다. 마지막으로 도달한 곳은 ‘베이 메트’라는 작은 마을. 거기서 빈 무덤 하나를 발견했는데, 아직까지 남아 있는 극소량의 유해를 분석한 결과 키 큰 남자 한 명과 키 작은 남자 한 명이 끔찍한 폭력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플린과 스톤을 연상시키는 대목이었다. 한편 제프리 마이어스라는 작가는 2002년에 낸 책에서 숀 플린이 말라리아에 걸렸고, 감염을 막기 위해 산 채로 불태워져 죽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사망 시점은 1971년으로 추정했다. 한편 2010년 3월, 플린을 찾던 영국의 탐사 팀은 캄퐁 참 지역에서 거대한 외국인 무덤을 발견했지만, 분석 결과 그곳에서 발견된 유해 중 플린과 DNA가 일치하는 건 없었다.
과연 플린은 베트콩 혹은 크메르루주에 의해 사살된 것일까? 아니면 어떻게든 탈출해 의외의 장소에서 생존하다가 세상을 떠난 걸까? 그 여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