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부당 지원·비자금 조성·외국인 이사 불법 재직 등 무혐의…‘내부 조력자 있나’
지난 4일 서울 금호아시아나 광화문 사옥에서 ‘기내식 대란’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임준선 기자
납품업체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파문이 확대된 ‘기내식 대란’은 예견된 사태였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기존 기내식 업체인 LSG스카이셰프코리아와 계약을 해지하고 게이트고메코리아를 새 기내식 업체로 선정했다. 중국 하이난항공 계열인 게이트고메코리아는 아시아나항공이 지분 40%를 투자한 사실상 합작회사다.
아시아나항공은 2016년 12월 게이트고메코리아 지분을 취득하는 대신 그룹 지주사인 금호홀딩스 BW(신주인수권부사채) 1600억 원어치를 하이난그룹에 매각했다. 앞서 LSG는 금호아시아나로부터 금호홀딩스 BW 인수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했다. 이에 아시아나항공은 기존 공급계약을 연장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LSG는 “기내식 계약을 빌미로 금호홀딩스 지원을 요구한 것은 불공정거래에 해당한다”며 금호아시아나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기내식 문제와 관련한 전속고발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게이트고메코리아는 공장 화재로 기내식 공급에 차질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납품업체 사장이 목숨을 잃었다. 대기업 2차 협력사 대표인 H 씨는 “나와 내 주변을 보면 공정위에 불공정거래와 계열사 부당 지원을 신고해도 늑장 조사로 의욕이 없을 뿐 아니라 대기업을 감싸는 경우까지 있었다”며 “숨진 납품업체 사장의 비극이 남일 같지 않은 이유”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금호아시아나에 ‘면죄부’를 내린 사건은 또 있다. 2015년 11월 공정위는 금호아시아나가 2009년 유동성 위기 당시 계열사 간 CP(기업어음) 거래로 부도를 막은 사건에 대해 “부당 지원이 아니다”라며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당시 아시아나항공 등 계열사 8곳은 워크아웃을 앞두고 있던 금호타이어와 금호산업의 CP에 대해 만기 연장 처분을 내렸다. 즉 부도 직전인 회사 어음에 대해 ‘채권자’가 상환을 유예해준 것이다. 당초 공정위는 이 같은 내부 거래가 이례적인 것으로 보고 회사 오너인 박 회장의 개입 여부를 의심했다. 실제 공정위는 “계열사 부당 지원에 해당할 수 있다”며 형사 고발 여부를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공정위 최종 의결기구인 전체회의의 판단은 달랐다. 경영상 불가피한 선택으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와 관련해 공정위 안팎에선 공정위가 금호아시아나를 봐준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일종의 ‘로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다. 금호아시아나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누군가 박 회장의 뒤를 봐주려고 마음먹지 않은 이상 나올 수 없는 결정이었다”며 “내부적으로도 중간에 왜 판단이 바뀌었는지 의문이 많던 사건”이라고 말했다. 최근 검찰은 공정위 재취업 비리 수사 과정에서 금호아시아나가 공정위 고위 관료와 유착한 사실이 있는지 등을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 역시 금호아시아나에 대해 이례적으로 수사를 유예하거나 사건 자체를 축소한 의혹이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4년 9월 검찰은 금호아시아나의 비자금 조성 의혹 등에 대해 수사에 착수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배당했지만 지금껏 사건을 매듭짓지 않았다. 당시 사건 담당 검사가 검찰 수뇌부와 사건 처리로 마찰을 빚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기내식 대란’이 일으킨 태풍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을 덮치고 있다. 박 회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지만 성난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사진 서울 금호아시아나본사 전경. 일요신문DB
앞서 ‘일요신문’은 검찰에 제출된 ‘금호그룹 비자금 문건’ 일부를 입수한 바 있다. 관련 문건을 보면 금호 오너 일가를 포함한 임직원들은 2009~2010년 수시로 은행계좌에서 수십억 원을 현금화하고 수억 원의 돈을 나눠 입금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금을 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건에는 박 회장 역시 2010년 1월 자신의 계좌에서 수억 원을 빼내 측근인 최 아무개 씨 계좌로 입금한 것으로 나와 있다. 금호아시아나 측은 이 같은 자금 흐름에 대해 “문건 내용이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 안팎에선 당시 검찰이 해당 문건의 진위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은 것은 권력 핵심부에 있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온다. 김 전 실장의 처남은 박 회장과 고등학교 친구로 김 전 실장 역시 2009년 금호가 인수한 대한통운의 사외이사를 역임한 바 있다.
또 검찰은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이 연루된 이른바 ‘박수환 게이트’ 당시 금호아시아나가 박수환 전 뉴스컴 대표에게 건넨 30억 원을 문제가 없는 돈으로 판단했다. 2009년 박 회장은 당시 산업은행이 요구한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미루기 위해 뉴스컴과 30억 원 규모의 홍보 용역 계약을 맺었다. 검찰은 박 전 대표에게 사기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지만 법원은 1심과 2심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 판단의 요지는 금호아시아나가 현안 해결을 위해 뉴스컴과 계약을 맺은 사실은 인정되지만 박 전 대표가 금호를 기망할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즉 ‘실패한 로비’인 셈인데 검찰은 박 전 대표를 기소하면서도 부정한 돈을 건넨 금호아시아나는 처벌하지 않았다.
아울러 검찰은 당시 경제개혁연대 소장이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고발한 박 회장의 수백억 원대 배임 사건에 대해 2016년 12월 ‘혐의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박 회장이 경영권 강화를 위해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과 죽호학원의 돈 550억 원을 비상장사인 금호기업 주식 인수에 쓴 것은 배임’이라는 취지로 고발장을 제출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들 재단이 ‘배당금을 수취했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이후 박 회장은 최순실이 설립에 관여한 미르재단과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이사직을 맡은 한국방문위원회에도 계열사를 동원해 자금을 지원했다.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관리감독 의무를 진 국토교통부도 최근까지 금호아시아나에 ‘면죄부’를 줘온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나항공은 진에어와 마찬가지로 미국 국적을 가진 사외이사가 6년간 재직했다. 뿐만 아니라 국토부는 2013년 18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아시아나항공의 샌프란시스코 공항 착륙 사고 책임을 물어 아시아나항공에 노선 45일 운항정지 처분을 내렸지만 아시아나항공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1심과 2심 모두 아시아나항공이 패소했지만 대법원 판결이 남았다는 이유로 운항은 중단되지 않고 있다. 국토부는 이에 대해 별다른 추가 제재를 내놓지 않고 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