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할 교육청 “신고하면 조사하겠다” 뒷짐…불법 운영 학원 “교육청 자문 구했다” 당당
강남서초의 한 학원 앞에 자정 가까이에 아이들이 각자 집이 아닌 거리에서 서성이고 있다. 이들은 학원 뒤편에 위치한 빌라에서 주말마다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신문’은 지난 6월부터 강남·서초 학원가에서 불법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심야 잠복 취재 등을 실시했다. 그 결과 이 지역 일부 학원들이 학원 인근에 숙소를 잡고 합숙과 수업을 병행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방학 전인 지난 6월말과 7월초 금요일 자정을 몇십분 남겨둔 강남·서초 지역의 A 학원에서 수업을 마친 10여 명의 학생들이 어디론가 향했다. 이들은 각자 집이 아닌 A 학원 바로 뒤편에 위치한 허름한 빌라로 나누어 들어갔다. 이동하는 경로 역시 사방이 어두컴컴해 학생들의 모습조차 선명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학원 관계자로 보이는 20~30대 남성이 학생들을 인솔·관리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들은 빌라 형태의 공동 숙소에서 잠을 자고 이튿날 또 다시 학원으로 향했다.
학생들이 학원에서 수업 중인 시간에 취재진은 이들이 전날 묵은 것으로 보이는 빌라로 향했다. 빌라의 현관 입구에 위치한 우편함에는 A 학원 명의의 우편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건물 주변은 다소 지저분한데다 재건축을 앞둘 정도로 낡아 학생들의 안전을 우려할 만큼 위태로워 보였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까지 학원은 불을 밝히고 있었다.
관할 교육청에 따르면, 학원이 학생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려면 별도의 신고와 일정 수준 이상의 시설 확충이 필요하다. 하지만 A 학원은 별도의 신고 없이 불법 영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과거부터 이 같은 형태의 운영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 A 학원 대표 B 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는 “현재는 학원 운영에서 손을 뗐다”면서도 운영 방식 등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B 씨는 “내가 만든 방식으로 여전히 주말반이 운영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숙소를 학원 명의가 아닌 제3자에게 임대를 받고 비용 또한 그 사람으로 가게 해놓는 방식”이라고 상세하게 답했다. 이어 “그렇게 하면 문제의 소지가 적다. 내가 직접 교육청에 자문을 구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학생들에게 ‘숙소는 너희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돈은 절대 학원에서 받지 않는다. 여전히 일부 학원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도 했다. 또한 과거 학원을 운영할 당시를 떠올리며 “숙소 책임자를 등록하라고 해서 내 이름을 불러준 것이 생각이 났다”면서 “이제는 (본인)이름을 지워야겠다”고 덧붙였다.
B 씨의 주장대로 이런 형태의 운영은 문제가 없을까. 학원 및 교습소 관련 법 등에 따르면 기숙학원의 경우 ‘숙박시설을 학원의 시설로 해야 한다’는 항목이 존재한다. 현재 일부 학원의 영업 형태와 명백하게 대치되는 부분이다.
일부 학원의 불법·편법 영업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관할 교육청에서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우리 관내에는 단 한 개의 기숙학원도 설립돼 있지 않다”면서 학원 인근 지역 빌라 등에서 학생들을 재우는 행태에 대해서는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교육청의 자문을 구했다’는 B 씨의 설명을 전했지만 교육청 관계자는 여전히 “불법이 맞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이 같은 형태로 일부 학원이 운영되고 있다고 하자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조치를 취할테니 신고를 해 달라”며 ‘선 신고 후 조치’ 의사를 피력했다. 기자가 학원 명까지 언급하며 불법사항을 설명했는데도 여전히 어떠한 조사나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2008년 사교육 과열을 막기 위해 제정한 ‘서울시 심야교습 금지 조례’에 따라 서울지역 학원은 밤 10시가 되면 모두 수업을 종료해야 한다.
강남 등 학원가의 밤은 아이들에겐 너무 어둡고 위험해보였다. 학원 심야수업 뒤 숙소로 향하는 아이들.
그럼에도 학원들은 이 같은 단속을 비웃듯 2014년을 전후해 학원가 주변 빌라 등 가정집을 개조해 심야교습이나 비밀교습을 하기 시작했다. 합숙도 흔해진 형태다.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학원들이 교육당국의 단속을 피하는 방법을 더욱 교묘히 착안하는 동안 서울시교육청도 불법운영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지난해 벌점제를 통한 영업정지 등 단속 기준을 한층 강화했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사교육 1번지인 강남·서초 지역의 단속 대상 학원만 수천 개에 달하지만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이들을 단속하는 인원은 단 5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관할 교육청이 관내 불법·편법 운영 중인 학원들을 방관·묵인하는 동안 무법지대로 전락한 사교육 현장에 우리 아이들만 위태롭게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서동철·김상래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