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전해철’ vs ‘이해찬+이재명’ 대결 구도로 변질
이에 친노계 좌장격인 이해찬 의원은 “전당대회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 송영길 의원도 “선거용 공세”라고 각을 세웠다. 정치권의 뜨거운 이름 ‘이재명’을 둘러싸고 전선이 갈린 셈이다. 여기에는 당 주류의 분화 및 차기 대권 구도 등 다목적 포석이 담겨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박은숙 기자
김 의원의 선제공격은 친노·친문 혈투에 불을 댕기는 분기점으로 작용했다, 예비경선(컷오프) 전 ‘이해찬이냐, 아니냐’로 갈렸던 당 주류가 본경선에 들어서자 ‘이재명 변수’에 따라 출렁이고 있는 셈이다. 당 안팎에선 “민주당 차기 당권경쟁에 이 지사까지 4명이 뛰고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당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김 의원의 ‘이재명 공격’은 당 주류의 전선을 명확히 하려는 전략이다. 김 의원이 그간 친문계 내부에 퍼져있던 ‘반이재명’ 기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돌출 변수를 통해 차기 당권 구도를 ‘김진표 vs 이해찬’으로 끌고 가려는 속셈이다. 또 다른 당 관계자는 “‘경제소방수’를 앞세운 김 의원이 당의 아킬레스건인 계파 문제를 꺼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영진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도 “당이 탈당하라 말라 할 권한이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김 의원의 허를 찌르는 선제공격 이후 친노·친문계는 이 문제를 두고 갈렸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김 의원의 ‘이재명 탈당’ 요구에 대해 “(친문계) 등 지지층의 결집을 노린 한 수”라고 평가했다.
‘이재명 vs 전해철’ 구도였던 지난 6·13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당내 경선 당시 이해찬 의원의 측근인 이화영 전 의원은 이재명 캠프에서 총괄본부장을 맡았다. 이 전 의원은 현재 경기도 평화부지사(구 연정부지사)로 재직하고 있다. 김 의원 측은 “(이 지사에 대한 결단 요구가) 기자들과의 문답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친문계 결집의 극대화를 노린 승부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앞서 당 주류는 컷오프 전부터 분화의 길을 걸었다. 친문을 넘어 ‘진문(진짜 친문)’과 ‘뼈문(뼛속까지 친문)’ 찾기를 위한 현미경 검증을 시작했다. 송영길·김진표·이해찬(기호순) 의원이 이 검증 과정을 통과하자, 당 주류의 분화는 한층 빨라졌다. 친문 직계의 지지를 받는 김 의원과 친노계의 좌장 이 의원, 문재인 정부 들어 신주류로 부상한 86그룹의 송 의원까지, 친문계 분화는 불가피한 상수로 격상됐다.
그 사이 전당대회 판은 한층 커졌다. 김 의원은 “이 지사의 의혹이 당과 대통령에게 큰 부담”이라며 당·청 지지율 하락 문제를 전당대회 한복판에 세웠다. 효과는 컸다. 정치권의 이슈메이커인 이 지사를 전당대회에 끌어들인 이후 이 의원의 ‘20년 집권론’, 송 의원의 ‘세대교체론’ 등의 프레임 효과는 반감됐다. 적어도 이슈 선점 효과에서는 김 의원이 이해찬·송영길 의원을 앞선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지사에 대한 비토 기류는 차기 대권구도를 염두에 둔 장기 포석과 무관치 않다. 친문계 한 관계자는 “6·13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이 지사에 대한 비토 기류가 한층 강화된 것은 사실”이라며 “이대로 가다가는 차기 대선 과정에서 당이 사달 날 수도 있다는 기류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가 전한 ‘이재명 리스크’는 이렇다. 현재 친문계 내부에는 ‘포스트 문재인’이 전무하다. 친문계가 향후 1∼2년 내 ‘차기 대권 프로젝트’를 가동하겠지만, 성공 여부는 예단할 수 없다. 반면 친문계 못지않은 핵심 지지층을 가진 이 지사의 차기 대권 지지율은 두 자릿수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포스트 문재인’이 부재한 상황에서 이 지사의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이 일정 수준을 유지한다면, 친문계도 2022년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이냐, 아니냐’를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친문계가 이 지사를 문 대통령 차기로 옹립할 가능성은 낮다. 이 경우 이 지사도 ‘독자행보냐, 당 잔류냐’의 갈림길에 선다. 친문계가 우려하는 지점이다. 이 관계자는 “이 지사가 독자행보에 나설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고 전했다. 차기 대권 과정에서 여권이 분열한다면, 최악의 경우 정권을 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친문계의 선제공격은 이 지사의 예봉을 꺾는 의미도 있다는 얘기다. 다른 친문계 관계자는 “너무 앞서간 시나리오”라고 선을 그었지만, 당 주류에 퍼진 ‘이재명 비토’ 기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관전 포인트는 ‘이재명 변수’의 파괴력이다. 분석은 엇갈린다. 김 의원이 의도했든 안 했든 결과적으로 전당대회 구도는 ‘김진표+전해철’ vs ‘이해찬+이재명’ 연합군 대결로 변질됐다. 친문 직계와 친노계 좌장이 다른 길을 걷게 된 셈이다. 이 구도가 판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심사다. 민주당 대표경선 룰은 ‘대의원 45%+권리당원 40%+여론조사 15%(일반국민 10%+일반당원 5%)’다. 이 중 73만 명에 달하는 권리당원 표심이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이는 민주당 역사상 최대 규모다. 대의원은 1만 7000여 명이다.
권리당원의 위력은 지난 6·13 경선에서도 증명됐다. 친문계 후보는 전체 경선지역 11곳 중 8곳에 출격해 6곳에서 최종적으로 이겼다. 승률 75%다. 컷오프 이후 송영길·김진표 의원이 또 다른 친문인 최재성 의원에게 공개적으로 구애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최 의원은 2016년 개시한 권리당원 배가운동을 추미애 대표와 함께 주도했다.
다만 주목할 부분은 권리당원 표심이 당 최대 주주인 친문계 성향에 가깝지만, 대의원보다는 표심 결집력이 느슨하다는 점이다. ‘이재명 vs 전해철’ 구도였던 경기도지사 경선에서도 이 특성은 나타났다. 친문 직계인 전 의원은 예상과는 달리, 권리당원에서 3만 3375표로 이 지사(3만 5174표)보다 열세를 기록했다. 여론조사에서 압승한 이 지사는 최종 득표율 59.96%로, 전 의원(36.80%)을 크게 앞서면서 본선에 올랐다.
김성원 시사평론가는 “경기도지사 경선에서 전 의원이 크게 앞서지 못한 부분은 눈여겨볼 대목”이라며 “이해찬 의원의 경우 컷오프 닷새 전 출마 선언을 했음에도 최종 본선에 오르는 등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최근 광주를 찾은 이 의원도 전 의원의 ‘김진표 지지’에 대해 “부담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이 의원은 컷오프에서 탈락한 이종걸 의원의 지지를 끌어낸 데 이어 충청 조직력을 가진 친문 박범계 의원과 연대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부산·경남·울산(PK) 등 영남권에서 일고 있는 비토 기류는 이 의원의 약점으로 꼽힌다.
윤지상 언론인
‘86그룹’ 표심은? 송영길 전폭 지지 ‘미지수’ 분화의 갈림길에 선 것은 친문(친문재인)뿐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신주류로 부상한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도 마찬가지다. 운동권 세대가 주축인 86그룹은 지난 10여 년간 민주당 경선 등 권력구도 때마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 민주당 당 대표 후보 중 86그룹은 송영길 의원이 유일하다. 50대 기수론을 앞세운 송 의원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처럼 당내 세대교체를 이끌어 국민통합을 이룰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송 의원은 당내 이인영·우상호 의원 등 86그룹의 지지도 기대하고 있다. 당내 86그룹은 약 20명 안팎으로 적지 않은 조직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86그룹이 송 의원에게 전폭적으로 지지를 보낼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8·25 전당대회 컷오프 당시 86그룹에선 이인영 의원과 설훈 의원만이 단일화 논의에 참여했다. 설훈 의원은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이다. 86그룹 다수는 민평련에 몸을 담고 있다. 이인영 의원이 당 대표로 단일 추대되면서 설 의원은 최고위원으로 선회했다. 당 한 관계자는 “86그룹 중 일부는 송 의원을 지지하겠지만, 이해찬 의원 등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당원도 적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86그룹의 구심점이 약하다는 점도 분화 가능성에 힘을 싣는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청와대 참모진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송인배 정무비서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조국 민정수석 등과 조윤제 주미대사,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 86그룹이 실세로 떠올랐지만, 사실상 좌장 역할을 할 만한 인사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비문(비문재인)계 관계자는 “민평련 조직의 파워나 결집도가 상당히 약해진 상태”라며 “86그룹의 분화 여부와 관계없이 당권 구도에 큰 영향을 미칠지는 여전히 물음표”라고 말했다. 86그룹의 단일 후보였던 이인영 의원은 예선 탈락하면서 운동권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