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한류스타 뜨고 송일국 ‘삼둥이 아빠’로 재기 성공…‘나영석표 예능’ 배우와 예능 장벽 허물어
지난해 2월 열린 KBS 2TV 예능 ‘하숙집 딸들’ 제작발표회. 데뷔 후 연기로 ‘한우물’을 파던 배우 이미숙이 예능 고정 출연을 결심해 화제가 된 프로그램이다. ‘하숙집 딸들’에는 이미숙 외에 이다해, 박시연, 윤소이, 장신영 등 여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당시 마이크를 잡은 이미숙은 “이미지를 많이 고수해야 되는 입장이기 때문에 예능에서 무너지는 모습, 솔직한 내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면서도 “이것도 하나의 장르라 생각한다. 남을 즐겁게 해주는 것도 하나의 연기라 생각할 수 있다. 요즘은 연기자들도 숨어있는 게 미덕은 아니더라”고 말했다.
이후 1년여가 흐른 지금, ‘하숙집 딸들’은 3개월 만에 막을 내렸지만 배우들의 예능 출연은 더욱 활발해졌다. 배우 한 명쯤 끼워 넣지 않은 프로그램을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드라마나 영화 개봉을 앞두고 홍보 차원에서 잠깐 얼굴을 비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예능을 통해 배우들이 전성기를 누리는 시대가 왔다.
# ‘홍보의 장’에서 ‘삶의 터전’으로
한동안 배우들에게 ‘예능=홍보’라는 인식이 강했다. 특히 개봉 첫 주 관객을 바짝 모아야 하는 영화의 경우, 개봉 직전 주연 배우들이 앞 다투어 당대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을 노크했다. 방송인 유재석이 진행하던 ‘무한도전’ ‘놀러와’를 비롯해 현재도 방송 중인 KBS 2TV ‘해피투게더’와 SBS ‘일요일이 좋다-런닝맨’ 등은 배우들이 가장 선호하는 프로그램으로 손꼽혔다. 유재석이 풍기는 특유의 친근감 외에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유재석의 진행 스타일이 예능에 낯선 배우들에게 안락함을 줬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예능 출연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대본대로 움직이는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요즘 예능에서는 자신의 실제 모습을 ‘날 것’처럼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사생활을 노출시키는 것 또한 부담이 컸다. 그들의 발언 하나하나가 기사화돼 인터넷을 도배하는 것도 우려됐다.
채널A ‘도시 어부’ 방송 화면 캡쳐
하지만 요즘 TV를 켜면 ‘저 배우가 왜 저기서 나와?’라는 의문을 가질 정도로 배우들이 예능에 차고 넘친다. 현재 지상파 외에도 케이블, 종합편성채널이 편성한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는 배우는 30명에 육박한다. 연장자 순으로 따지자면 tvN ‘꽃보다 할배 리턴즈’의 이순재, 신구, 백일섭 등이 있고 채널A 간판 예능 ‘도시 어부’에는 이덕화, tvN ‘수미네 반찬’에는 김수미가 버티고 있다. 배우들의 인지도가 스타성을 기준으로 보더라도 tvN ‘갈릴레오: 깨어난 우주’에 이례적으로 참여한 배우 하지원, SBS ‘일요일이 좋다-집사부일체’의 이승기와 이상윤, KBS 2TV ‘해피 선데이-1박2일’과 MBC ‘라디오스타’에 동시 출연 중인 차태현이 눈에 띈다. 이 외에도 이광수·전소민(SBS ‘런닝맨’), 소이현·인교진, 강경준·장신영(SBS ‘동상이몽’) 등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 ‘나영석표 예능’이 바꾼 풍경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야 하는 배우들에게 고착화된 이미지가 생긴다는 것은 독약이다. 특히 ‘웃기는 이미지’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었다. 이런 편견을 깬 기점은 무엇일까? 방송 전문가들은 ‘나영석표 예능’의 성공이라고 입을 모은다.
tvN 예능국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나영석 PD는 KBS에서 이적 후 ‘꽃보다’ 시리즈를 비롯해 ‘삼시세끼’, ‘윤식당’ 등 연타석 홈런을 때렸다. 게다가 각 프로그램을 이끈 출연진은 대부분 예능 출연이 거의 없었던 배우들이다. 나 PD의 페르소나라 불리는 배우 이서진은 ‘꽃보다 할배’의 짐꾼과 ‘삼시세끼’를 소화하며 다시금 전성기를 맞았다. ‘삼시세끼-어촌편’으로 눈을 돌리면 배우 차승원과 유해진의 활약이 돋보였다. 이 외에도 ‘꽃보다 누나’에는 윤여정, 김희애, 이미연 등이 참여했다.
이후 나영석표 예능은 유명 배우들이 먼저 찾는 프로그램이 됐다. ‘숲속의 작은 집’에 배우 소지섭, 박신혜가 흔쾌히 참여한 것이 그 예다. tvN 관계자는 “한국 예능은 나영석 PD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시즌제를 정착시켰을 뿐만 아니라 참신하고 고급스러운 연출과 설정으로 배우들과 예능 간 장벽까지 허물었다”고 말했다.
# 예능으로 전성기를 맞다
많은 배우들의 예능 출연을 통해 심리적 부담이 줄었다면, 예능을 통해 새로운 전환기를 맞은 동료 배우들의 성공 사례를 보면서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예능 출연이 오히려 연기 활동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대표적인 케이스인 이서진 외에도 이광수는 ‘런닝맨’이 중국어권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며 단숨에 한류스타로 도약했다. 사극 ‘주몽’ 등을 통해 절정의 인기를 누렸으나 한동안 활동이 뜸했던 배우 송일국은 KBS 2TV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 출연 이후 ‘삼둥이 아빠’로서 새로운 전성기를 열었다.
이런 성공 사례는 다른 배우에게도 큰 자극이 됐다. 예능을 통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으면 그로 인해 더 큰 배역을 맡게 되는 등 배우로서 한 단계 도약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예능 제작진의 치밀한 이미지메이킹 및 설정 역시 배우들의 구미를 당기게 만드는 요소다.
한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요즘 예능 프로그램이 리얼리티를 앞세우지만 기본적인 대본과 설정은 있다”면서 “연기에 능한 배우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실생활 중에서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대중이 열광할 만한 요소를 강조시키는 예능 제작진의 요청에 장단을 맞추며 인기를 극대화시키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