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3월20일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에 나선 시민들. | ||
시민단체들은 전국에서 탄핵 규탄운동을 벌였고, 성명과 집회·시위를 통하여 집단적인 저항을 보였다. 한 일간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이 “탄핵소추는 잘못한 일”이라고 했으며, 63%가 헌재에서 탄핵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공법학회 소속 헌법학자들 중 69%가 소추안은 탄핵사유가 안된다고 응답했다.
실인즉, 야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열흘째가 되는 날부터 ‘탄핵’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대통령 취임 후 반년도 되지 않았는데, 제1야당 대표가 “이 사람이 대한민국 대통령인가. 나는 솔직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솔직히 대통령 잘못 뽑았다”라고 그야말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두 달 뒤면 임기가 끝나는 16대 국회의 마지막 임시회에서 (표결에 걸린 시간을 빼면) 탄핵소추안 심의는 불과 3분 만에 끝났다. 그날 국회의사록에 의하면, 11시22분에 박관용 의장의 “개의를 선언합니다”로 시작해 “의사일정 제1항 대통령탄핵소추안을 상정합니다”, “조순형 의원의 제안설명은 유인물로 대체합니다”, “무기명 투표를 실시합니다” 라는 말이 끝난 때가 오전 11시25분, 국회의장의 입에서 나온 그 네 마디가 헌정사상 초유라는 대통령탄핵소추안 ‘심의’의 전부였다. 이것은 절차위반이 아니라 ‘무절차’라고 해야 맞다.
역사적인 대통령 탄핵심판의 첫 번째 변론은 3월30일 오후 2시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렸다. 첫날 변론 벽두에 소추위원(국회)측은 노 대통령의 헌재 출석 문제를 제기했다. 나는 소추위원측이 정치적, 도전적, 감정적으로 나오더라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거나 맞대응은 하지 말자고 대통령대리인단의 변호사들에게 권했다.
소추위원(국회)측 대리인은 정기승(전 대법원 판사, 헌변 회장), 한병채(전 국회의원, 헌재 재판관), 이진우(전 국회의원, 정무수석비서관) 변호사 등 67명의 대군단이었다. 이에 비해서 대통령 대리인단엔 유현석(전 서울지법 부장판사), 한승헌(전 서울지검 검사·감사원장), 하경철(전 서울지법 판사, 헌법재판관), 이용훈(전 대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등 12명이 포진했다.
최종변론(4월30일)의 마무리에서 나는 “국회가 대의기관 본질을 망각하고 대다수 국민들의 의사에 반해서 감행된 이 사건 소추는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고 역설했다.
5월14일 오전 10시 헌재 전원재판부(재판장 윤영철 헌법재판관)는 이 사건에 대하여 “탄핵결정에 필요한 재판관 수(6명)의 찬성을 얻지 못해서 청구를 기각한다”라고 선고했다.
노 대통령이 두 차례의 기자회견에서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을 한 것은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를 규정한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는 것이며, 중앙선관위가 노 대통령의 발언을 선거법위반으로 결정한 데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고, 선거법을 관권선거시대의 유물이라고 폄하한 행위는 대통령의 헌법수호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도 했다.
또한 노 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 제안 역시 대통령의 ‘국민투표부의권’의 위헌적 행사로 헌법수호 의무위반이라고 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위법이 대통령직을 파면할 만큼 중대한 것은 아니라고 하여 탄핵소추를 기각한 것이다(권력형 부정부패나 국민경제 파탄 등은 구체적 증명도 없을 뿐더러 ‘직무관련성’도 없어 탄핵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실로 63일 만에 직무에 복귀했다. 탄핵 추진에 앞장섰던 국회의원들은 총선에서 거의 전멸했다. 그것이 바로 ‘민심’이었다.
지난해 3월12일 박관용 국회의장(왼쪽 끝)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