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조기 전대론 급부상…여론조사 ‘황’ 우세 속 홍준표 출마 여부 등 변수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지난 7월 24일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빈소를 찾았다. 박은숙 기자
한국당 초재선 의원 모임인 ‘통합과 전진’은 지난 9월 6일 김병준 위원장을 만나 “비대위가 너무 비대위답지 않은 평상적인 당 운영을 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비대위가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자 한국당 내부의 시선은 벌써 차기 전당대회로 쏠리고 있다.
당내에선 빨리 전당대회를 열어 힘 있는 대표가 당을 강력하게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국당의 한 당직자는 “민주당 김종인 비대위가 성공한 것은 공천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김병준 위원장은 공천권이 없다. 당을 개혁할 힘이 없는데 이대로 계속 가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새로 뽑힐 당 대표는 임기가 2년이기 때문에 오는 2020년 4월 치러질 총선에서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도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차기 당 대표를) 내년에 뽑는다? 저는 빨리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해 조기 전당대회론에 힘을 보탰다.
다만 앞서 말한 당직자는 “곧 국정감사와 예산심사 등이 있는데 올해 안에 전당대회를 여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며 “빨라야 내년 초에 열리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당내에서 조기 전당대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자 당권주자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대통령 권한대행에서 물러난 후 언론과 접촉을 끊고 잠행해오던 황교안 전 총리는 지난 9월 7일 자신의 수필집 ‘황교안의 답-청년을 만나다’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다. 황 전 총리는 퇴임 후 유력한 보수 진영 대권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출판기념회를 계기로 황 전 총리가 본격적인 정치행보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황 전 총리는 이날 대권 또는 당권 도전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많은 분들의 말씀을 듣고 있다. 나중에 기회 있을 때 이야기하자”며 즉답을 피했다.
황 전 총리는 언론과 철저하게 거리를 두고 있다. 일요신문도 여러 차례 황 전 총리에게 인터뷰를 요청해봤지만 번번이 “나중에 하자”는 답변만 돌아왔다. 한 한국당 관계자는 “정치인이 (출마 여부에 대해) ‘많은 분들의 말씀을 듣고 있다’고 답변하는 것은 출마하는 것으로 80% 이상 기울었다는 것”이라며 “아마 당선 가능성 등을 따져보고 있을 것이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황 전 총리에 대한) 여론이 좋으면 100% 출마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내에선 친박(친박근혜) 진영이 차기 당권 주자로 황 전 총리를 밀려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를 뒷받침하듯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강효상, 윤상직, 이채익, 정종섭, 송언석, 추경호, 유기준, 김진태, 원유철 의원 등 친박계 의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친박계 의원들은 이날 자발적으로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전 총리 측은 “주최 측이 따로 (의원들에게) 초청장을 보내거나 한 적은 없고 자유롭게 와 주신 것”이라고 했다.
앞서의 한국당 관계자는 “친박이나 비박(비박근혜)계 모두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뺏기면 자신들이 인적 청산 대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총선 공천권이 걸린 차기 전당대회에 양측 모두 목숨 걸고 덤빌 것”이라며 “친박계에는 마땅한 당권주자가 없다. 그래서 황 전 총리가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한국당 관계자는 친박계가 황 전 총리를 당권주자로 내세우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친박이 구심점 역할을 할 새로운 인물을 찾고 있는 것은 맞지만 꼭 황 전 총리를 중심으로 뭉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황 전 총리도 (친박계 구심점 역할을 할) 여러 후보 중 하나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어찌됐든 황 전 총리 본인은 한국당에서 친박계 외에는 기댈 곳이 없지 않나. 만약 당권이나 대권에 도전하려면 결국 친박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무성 한국당 의원이 지난 6월 15일 오후 국회에서 비공개로 진행중인 의원총회 회의장 앞에서 통화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비박 진영에서는 김무성 의원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바른정당 복당파의 수장격인 김 의원은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이 참패하자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후 한동안 공개적인 외부활동을 중단해왔다. 그런데 김 의원은 지난 8월 27일 ‘길 잃은 보수 정치, 공화주의에 주목한다’라는 제목의 세미나와 지난 9월 4일 ‘소득주도성장, 왜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연이어 여는 등 다시 정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김 의원은 올해 정기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한국당 첫 번째 질의자로 나섰다. 정해진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대정부질문은 주로 초선이나 재선 의원들이 맡았다. 5선 이상 의원들 가운데 올해 대정부질문에 참여하는 의원은 김 의원이 유일하다. 김 의원은 6선이다.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김 의원이 이 시점에 다시 활동을 재개한 것은 차기 전당대회를 겨냥한 움직임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양측이 맞붙는다면 아직까지는 황 전 총리의 우세를 점치는 사람이 많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9월 3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보수층이 선호하는 차기 대선주자 1위로 황 전 총리(25.9%)가 꼽혔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김 의원은 5.3%로 7위에 그쳤다. (이번 조사는 전국 2507명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응답률은 7.3%,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0%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물론 변수는 있다. 한국당 주요당직을 복당파가 차지하고 있는 것은 김 의원에게 유리한 점이다. 홍준표 전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여부도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한편 당내에선 차기 전당대회가 친박과 비박 진영의 대리전 구도로 흐르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칫 두 사람이 맞붙으면 누가 이기든 정말 당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최근에는 계파갈등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지만 한국당 관계자들을 사석에서 만나보면 상대 계파에 대한 적개심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친박 진영에서는 김무성 의원의 당권 도전설에 대해 “20대 총선을 망친 사람이 다시 21대 총선을 지휘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당 깨고 나갔던 배신자가 어떻게 당을 대표하는 대표가 되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반대로 비박진영에선 황교안 전 총리의 당권 도전설에 대해 “국정농단 연루자가 무슨 당권이냐”고 비판한다. 어느 쪽이 당권을 잡아도 상대 진영이 당 대표로 인정하겠느냐는 지적이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