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면 군사들이 지치게 된다. 속전속결로 적을 격파해야 승리할 수 있다.’
병법으로 볼 때 산 위에 있는 적을 산 아래에서 공격하는 것은 하책이다. 그러나 이성계는 기꺼이 병법의 하책을 이용하여 왜구를 격파할 결심을 했다. “말고삐를 단단히 잡고 말을 넘어지지 못하게 하라.”
이성계는 군사들의 대오를 정돈하고 자신이 선봉에 서서 적진을 향해 달려갔다. 왜구는 화살을 비 오듯이 날린 뒤에 진을 나와 응전했다. 전투는 다시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이 전투는 훗날 황산대첩이라고 불릴 정도로 격렬했고 양측에서 많은 사상자를 냈다. 이성계는 왜구의 숫자가 훨씬 우세하고 지세가 불리했는데도 정공법으로 몰아붙였다.
“장군, 뒤를 보십시오.”
이성계의 뒤에서 적장이 긴 창을 휘두르며 달려오는 것을 본 이성계의 편장(偏將) 이두란(李豆蘭)이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성계는 미처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이두란이 황급히 활을 꺼내 적장을 쏘아 죽였다. 이성계는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겼다.
“병사들은 나를 따르라!”
이성계가 야차처럼 왜구를 공격하자 왜구도 필사적으로 응전했다. 전투는 시간이 흐를수록 아수라의 지옥으로 변해 갔다. 사방에서 피보라가 자욱하게 뿌려지고 비명소리가 난무했다. 팔다리가 잘린 병사, 창자가 쏟아져 나온 병사, 목이 잘린 병사들의 시체가 골짜기를 메워 시산혈해로 변해 갔다. 이성계는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것처럼 갑옷이 혈의로 변했는데도 병사들을 독려하면서 왜구를 도륙했다. 그의 칼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왜구들이 처절한 비명을 지르면서 나뒹굴었다. 이성계는 말이 화살에 맞아 넘어져 바꾸어 탔는데, 또 화살에 맞아 넘어졌으나 전쟁의 화신처럼 다시 바꾸어 타고 적진을 종횡무진으로 누비면서 칼을 휘둘렀다.
“앗!”
그때 날아오는 화살이 이성계의 왼쪽 다리에 꽂혔다. 이성계는 화살을 뽑아 버리고 더욱 용감하게 왜구와 싸워 고려군은 이성계가 상처를 입은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적장을 죽여라! 적장을 죽여야 승리한다!”
왜구는 이성계를 여러 겹으로 포위했다.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이성계는 기병 두어 명과 함께 포위를 뚫고 앞으로 돌진했다. 왜구들이 이성계의 앞에서 파도가 몰아치듯이 공격을 해왔다. 이성계가 선두에서 달려오는 왜구 8명을 죽이자 왜구들은 감히 앞으로 나오지 못했다.
“겁이 나는 자는 물러가라. 살려고 하는 자는 죽을 것이고 죽으려고 하는 자는 살 것이다. 앞으로 돌격하라!”
이성계는 칼을 높이 치켜들고 군사들을 독려했다. 그의 갑옷은 피투성이가 되었고 산에는 왜구와 아군의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이성계가 피투성이가 되어 용전분투하자 고려의 장수와 군사들이 감동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돌격했다. 왜구들은 야차처럼 칼을 휘두르며 달려오는 이성계를 보고 나무처럼 서서 움직이지 못하였다.
‘저 자는 나이가 어린 것 같은데 참으로 용맹하구나.’
이성계는 왜장 하나가 무예가 뛰어난 것을 보고 감탄했다. 왜장은 나이가 겨우 15, 6세쯤 되었는데, 골격과 용모가 단정했으나 사납고 용맹스러움이 비할 데가 없었다. 흰 말을 타고 창을 마음대로 휘두르면서 전장을 누비고 있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고려군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감히 대적하는 병사들이 없었다.
“아기발도(阿其拔都)다!”
이성계의 군사들은 그가 나타나면 일제히 피했다. 이성계는 그의 용맹하고 뛰어난 무예를 아껴서 이두란에게 산 채로 사로잡으라는 영을 내렸다.
“장군, 만약 산 채로 사로잡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우리 쪽 사람들이 많이 상하게 할 것입니다.”
이두란이 불가능하다고 아뢰었다.
“그렇다면 목을 베어라!”
“내가 투구의 정자(頂子)를 쏘아 투구를 벗길 것이니 그대가 즉시 쏘아라.”
이성계가 이두란에게 영을 내렸다.
“장군의 영에 따르겠습니다.”
이두란이 말을 세우고 활을 쏠 준비를 했다. 이성계는 즉시 말을 채찍질해 뛰게 하여 아기발도의 투구를 쏘아 정자를 명중시켰다. 아기발도는 투구의 끈이 끊어져서 기울어지자 급히 투구를 바르게 쓰려고 했다. 그때 이성계가 두 번째 화살로 재빨리 투구를 쏘아 또 정자를 맞춰 투구를 떨어트렸다. 이두란이 즉시 활을 쏘아서 아기발도를 죽였다.
“아기발도가 죽었다!”
왜구들은 아기발도가 죽자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이에 이성계는 군사를 휘몰아 왜구를 맹렬하게 공격했다. 왜구들은 아기발도가 쓰러진 이후 고려군의 대대적인 반격을 받아 패퇴했다. 왜구들은 혼비백산하여 산으로 달아났는데 통곡하는 소리가 1만 마리의 소 울음소리와 같았다. 고려군은 승세를 타고 산으로 달려 올라가면서 북을 치며 함성을 질렀다. 전의를 상실한 왜구들이었다. 그들은 이리저리 쓸리면서 고려군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고려군은 그들을 뒤따라가면서 창으로 찌르고 목을 베어 대파했다. 시체가 골짜기마다 가득하고 냇물이 붉어 6, 7일 동안이나 빛깔이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물을 마실 수가 없어서 그릇에 담아 맑기를 기다려 한참만에야 물을 마실 수 있었다. 전리품으로 1600여 필의 말을 얻고 무기를 얻은 것은 헤아릴 수도 없었다. 왜구는 고려 군사보다 10배나 많았는데 다만 70여 명만이 지리산 방면으로 도망쳤다.
“적군의 주력은 괴멸되었다. 적의 씨를 남기지 않는 나라는 없으니 그들이 돌아갈 길을 열어주라.”
이성계는 왜구들이 일본으로 돌아가는 길을 차단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장군,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두란과 이지란을 비롯하여 휘하 장수들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이 전투에는 이성계의 여러 아들도 참가했는데 이방원을 비롯하여 많은 아들들이 공을 세웠다. 이성계는 군악을 크게 울리며 나희(儺戱)를 베풀고 군사들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 왜구의 수급(首級)을 바친 것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아기발도가 장군님이 진을 설치한 것을 바라보고는 그 무리들에게 이르기를 ‘이 군대의 세력을 보건대 결코 지난날의 여러 장수들에게 비할 바가 아니다. 오늘의 전쟁은 너희들이 마땅히 각기 조심해야 될 것이다’했습니다.”
왜구에게 사로잡혀 있다가 돌아온 병사들이 이성계에게 보고했다.
“핫핫핫! 아기발도가 왜구라고 해도 사람을 보는 눈이 있구나.”
이성계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성계는 송도로 승전보를 올리고 천천히 개선하기 시작했다. 이성계의 대승은 어지러운 고려 조정을 승전 무드로 바꾸었다. 이성계의 개선군이 보무당당하게 돌아오자 판삼사(判三司)의 벼슬에 있던 최영이 백관을 거느리고 동교(東郊) 천수사(天壽寺) 앞에서 줄을 지어 영접했다. 이성계가 말에서 내려 재빨리 재배했다.
“공이 아니면 누가 능히 이 일을 하겠습니까?”
최영도 재배하고 앞으로 나아와서 이성계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이성계는 황산대첩이라고 불리는 운봉전투로 고려의 영웅이 된 것이다. 송도에 있는 수많은 백성들도 연도에 몰려나와 이성계를 환영했다.
“삼가 명공(明公)의 지휘를 받들어 다행히 싸움을 이긴 것이지 내가 무슨 공이 있겠습니까? 왜구들의 주력은 완전히 격파했사오나 혹시 만약에 다시 침략해 온다면 내가 마땅히 책임을 지겠습니다.”
이성계가 머리를 숙여 사례했다. 우왕도 이성계의 승전을 기뻐하면서 황금 50냥을 하사했다.
“장수가 적군을 죽인 것은 직책일 뿐인데 신이 어찌 감히 받을 수 있겠습니까? 신은 황공하여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성계는 사양하면서 아뢰었다. 한산군(韓山君) 이색(李穡)이 시를 지어 치하했다.
적의 용장 죽이기를 썩은 나무 꺾듯이 하니,
삼한의 좋은 기상이 공에게 맡겨졌네.
충성은 백일(白日)처럼 빛나매 하늘에 안개가 걷히고,
위엄은 청구(靑丘)에 떨치매 바다에 바람이 없도다.
출목연(出牧筵)의 잔치에서는 무열(武烈)을 노래하고,
능연각(凌煙閣)의 집에서는 영웅을 그리도다.
병든 몸 교외 영접 참가하지 못하고,
신시(新詩)를 지어 읊어 큰 공을 기리네.
이색은 고려의 대문장가이자 학자로 간신들조차 떠받드는 인물이었다. 그가 시를 지어 이성계의 승전을 치하하자 이성계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