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는 1384년 동북면도원수문하찬성사(東北面都元帥門下贊成事)가 되고 이듬해 함주에 쳐들어 온 왜구를 대파했다. 1388년에는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이 되었다. 이때 최영과 함께 임견미, 염흥방을 주살하여 내정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최영은 딸을 우왕에게 시집보내면서 고려의 실권을 장악했다. 이때 명나라는 원나라를 축출하고 고려에 철령 이북이 한때 원나라 영토였으니 명나라에 반환하라는 요구를 해왔다.
“호부가 황제의 명을 받드노라. 철령 이북, 이동, 이서는 원래 개원(開原)의 관할이니 여기에 속해 있던 군민(軍民), 한인(漢人), 여진, 달달, 고려는 종전과 같이 요동에 속한다.”
요동 도사가 이사경(李思敬) 등을 보내어 압록강을 건너 방을 붙인 내용이었다. 고려의 정당(政堂:조정)은 명나라의 통고에 발칵 뒤집혔다. 영토 문제는 어떤 임금이든지 한 치도 빼앗길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게다가 철령 이북은 동북면으로 이성계의 세력권이었다. 이성계의 참모들은 요동에서 날아온 첩보에 대경실색했다. 정도전, 조영무를 비롯해 이방원 형제들이 모여 심각하게 대책을 숙의했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정도전이 이성계에게 말했다. 이성계도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수밖에 대책이 없었다. 고려 조정도 명나라의 요구에 대책을 세우느라고 부산하게 움직였다. 고려는 명나라의 요구에 정국이 살얼음판을 딛는 것처럼 위태롭게 돌변했다. 최영이 정당에서 여러 재상과 함께 요동을 칠 것인가, 화친을 청할 것인가 가부를 의논하자 모두 화친하자는 의논에 찬성했다. 다만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철령 이북이 원나라가 한때 점거한 것은 사실이나 짧은 기간 점거한 것이었을 뿐 실제로는 고려의 영토이니 외교적인 노력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사신을 파견했으나 명나라는 고려의 주장을 한 마디로 묵살했다.
“철령 이북은 원래 원 나라에 속하였으니 모두 요동에 귀속시키고, 개원, 심양, 신주(信州) 등처의 군사와 백성은 생업을 회복하도록 돌려보내라.”
명나라에 파견되었던 사신 설장수가 남경으로부터 돌아와서 구두로 명나라 황제 주원장의 명을 전했다. 최영은 비밀리에 우왕을 만나 요동을 칠 것을 건의했다. 고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된 셈이었다. 특히 이성계는 자신의 세력권인 함경도가 명나라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묵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기가 문제였다. 이성계는 전략상 겨울에 요동을 칠 것을 주장했으나 우왕과 최영은 요동이 전쟁 준비를 갖추기 전에 군사를 일으켜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왕이 최영의 주장을 받아들여 군사들을 동원하라는 영을 내렸다. 고려는 요동을 정벌하기 위한 군사를 동원하면서 전국이 전쟁의 바람에 휩쓸렸다. 이성계는 최영을 찾아가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대했다.
“우리가 명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저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저들이 철령 이북 때문에 전쟁을 하겠는가?”
최영이 이성계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최영을 따르는 장수들도 병풍을 치듯 둘러서서 흉흉한 살기를 뿜으며 이성계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압록강까지 가서 군사를 회군시킬 것입니까?”
이성계도 매서운 눈으로 최영을 쏘아보면서 물었다. 이성계의 뒤에도 전쟁터를 누비던 맹장들이 눈을 번들거리며 살기를 뿜었다. 양측은 팽팽하게 대립했다.
“군사를 일으키고 어찌 철군을 하겠는가?”
최영이 언성을 높여서 소리를 질렀다.
“요동을 치는 것이 어쩔 수 없다면 시기라도 조절해야 하지 않습니까?”
“왕명이다. 장군은 왕명을 거역하지 말라.”
“지금 군사를 내는 데에 4가지 불가한 것이 있으니,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거스르는 것이 첫 번째 불가한 것이요, 여름에 군사를 출동시키는 것이 두 번째 불가한 것이요, 온 나라가 멀리 정벌을 하면 왜적이 빈틈을 타서 침입할 것이니 세 번째 불가한 것이요, 때가 무덥고 비가 오는 시기라서 활에 아교가 녹아 풀어지는 것과 대군이 전염병에 걸릴 것이 네 번째 불가한 것입니다.”
이성계는 고려의 명나라를 치는 것은 불가하다고 4불론(四不論)을 내세웠다. 그러나 최영은 요동정벌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이성계는 다시 대궐에 들어가 우왕에게 요동 정벌을 중지할 것을 아뢰었다. 우왕은 이미 영을 내렸으니 돌이킬 수 없다고 거절했다. 이성계는 우왕과 최영이 이성계의 반대를 물리치고 군사를 일으키는 이상 그들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성계는 정도전 등과 긴밀하게 협의했다. 그러나 요동정벌이 결정되어 최영을 8도도통사, 조민수를 좌군도통사, 이성계를 우군도통사에 임명하여 5만 대군을 이끌고 출정하게 되었다.
정도전이 이성계에게 비밀리에 보고했다. 이성계는 정도전과 비상한 책략을 세웠다.
우왕은 최영을 거느리고 자신이 직접 평양까지 출정하여 군사를 감독했다. 우왕이 평양에 머물면서 여러 도의 군사를 징발하여 압록강에 부교를 만들고, 중들을 징발하여 군사에 충당했다. 고려는 좌군과 우군이 합하여 5만여 명이었으나 대외적으로는 10만 군사라고 선전했다. 고려의 요동정벌군은 5월이 되어서야 압록강을 건너서 위화도(威化島)에 이르렀다. 이때 여름이 시작되어 위화도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전쟁과 폭우에 놀라 도망하는 군사가 속출했다. 우왕이 도망병들을 모조리 잡아서 참수하라는 영을 내렸으나 금지시키지 못했다.
“신 등이 뗏목을 타고 압록강을 건넜으나 앞에는 큰 냇물이 있는데 비로 인해 물이 넘쳐, 제1여울에 빠진 사람이 수백 명이나 되고, 제2여울은 더욱 깊어서 주중(洲中)에 머물러 둔치고 있으니 한갓 군량만 허비할 뿐입니다.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나라를 보전하는 도리입니다. 유지휘(劉指揮)가 군사를 거느리고 철령위(鐵嶺衛)를 세운다는 말을 듣고, 밀직 제학 박의중(朴宜中)을 시켜서 표문(表文)을 받들어 품처를 계획했으니, 대책이 매우 좋았습니다. 지금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서 갑자기 큰 나라를 범하게 되니, 종사와 생민의 복이 아닙니다.”
이성계와 조민수는 위화도에서 우왕에게 상언을 올렸다. 상언의 내용은 철령 이북의 영토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고 군사를 회군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물며 지금은 장마철이므로 활은 아교가 풀어지고 갑옷은 무거우며 군사와 말이 모두 피곤한데 이를 몰아 견고한 성 아래로 간다면 싸워도 승리를 기약할 수 없습니다. 이때를 당하여 군량이 공급되지 않으므로 나아갈 수도 없고 물러갈 수도 없으니 장차 어떻게 이를 처리하겠습니까? 삼가 생각하건대 전하께서 특별히 군사를 돌이키도록 명하시어 나라 사람의 기대에 보답하소서.”
조민수와 이성계는 군사적인 이유까지 들어 철군하게 해달라고 청했다. 조민수 장군 같은 인물이 무엇 때문에 이성계에게 가담했는지는 수수께끼다. 그러나 조민수와 이성계는 여러 차례 회군하게 해달라고 청했으나 우왕이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에 군심이 흉흉해졌다. 이성계는 애초부터 요동을 정벌할 의사가 없었고 조민수는 충실하게 명령을 따르는 사람이었다.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강경하게 자신의 입장을 천명했다. 그는 우왕과 최영이 회군한다는 청을 들어주지 않으니 자신은 군사들을 이끌고 동북면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이성계 장군이 휘하의 친병(親兵)을 거느리고 동북면을 향하는데 벌써 말에 올랐다.”
고려 요동정벌군에는 이성계가 떠난다는 말이 떠들썩하게 퍼졌다. 조민수는 당황하여 이성계를 향해 달려갔다. 이성계 군사들이 떠나면 조민수의 군사들로 요동을 정벌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단독으로 회군할 입장도 아니었다. 이성계는 자신을 찾아온 조민수를 회유와 협박으로 설득했다. 이미 조민수의 수하 장수들까지 모두 몰려와 이성계에게 가담한 상태였다. 조민수는 어쩔 수없이 이성계에게 가담하고 무릎을 꿇었다.
“만약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상대로 국경을 침범하면 큰 나라가 그냥 있겠는가. 내가 순리와 역리로써 글을 올려 군사를 돌이킬 것을 청했으나 왕은 살피지 아니했다. 최영 또한 늙어 정신이 혼몽하여 듣지 아니하니 어찌 그대들과 함께 왕에게 직접 아뢰어 측근의 악인을 제거하여 생령을 편안하게 하지 않겠는가? 그대들은 나를 따르겠는가?”
이성계가 여러 장수들 앞에서 반란을 일으킬 것을 선언했다. 군중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이성계는 악인을 제거한다고 했지만 이는 고려의 왕인 우왕의 제거까지 염두에 둔 말이다. 이성계의 휘하 장수들을 비롯하여 조민수의 장수들까지 반란에 가담한 것은 고려말에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반란이 일어나 반기를 드는 것을 장수들이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대들은 나를 따르겠는가?”
이성계가 다시 언성을 높여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죽고 사는 것이 장군의 한 몸에 매여 있으니 누구 감히 명령에 따르지 않겠습니까?”
장수들이 일제히 이성계의 영을 따를 것을 맹세했다.
“전군은 회군한다. 회군!”
이성계가 마침내 역사의 물줄기를 돌리는 영을 내렸다. 이성계는 즉시 군사를 돌이켜 압록강에 이르러 흰 말을 타고 동궁과 백우전을 가지고 언덕 위에 서서 군사들이 압록강을 건너는 것을 지휘했다. 때마침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여 군사들이 겁을 내고 다투어 건넜다.
“옛부터 지금까지 이 같은 장군은 없었다.”
이성계가 마지막으로 강을 건너는 것을 보고 군사들이 감동에 젖어서 말했다. 이때 장마가 사흘 동안 계속되었는데도 물이 범람하지 않다가 5만의 대군이 차례로 건너가고 난 뒤에야 큰물이 쏟아져 내려와 위화도가 물에 잠기자 군사들이 모두 이를 신기하게 생각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