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 부 오찬. 왼쪽부터 정대철 대표, 이상수 사무총장,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 ||
노무현 대통령의 특검법안 수용 발표(14일) 이후 동교동계 등 민주당 구주류의 반발과 이들을 중심으로 한 ‘호남권 신당’ 추진 움직임, 정대철 대표 등 신주류 당 지도부의 정치력 부재와 당 개혁안 표류 등 일련의 상황이 전개되면서 노 대통령의 핵심 참모그룹에서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선 개혁신당밖에 없다”는 주장이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이 6월 말까지 특검법안을 둘러싼 논란과 ‘당 개혁’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체제개혁을 이루지 못할 경우 총선 승리가 난망할 것이며 이는 곧 노무현 정권의 조기 레임 덕을 초래할 것이란 것이 이들의 우려. 때문에 상반기 중 양대 현안이 매듭되지 않을 경우 7~8월쯤에는 민주당 간판을 내리고 각계의 개혁세력을 결집해 신당을 창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386 핵심측근들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이 같은 주장은 구주류의 반발은 물론 신주류 내에서조차 적지 않은 반대에 부딪히고 있어 ‘대세’를 형성할지 여부는 미지수. 하지만 특검법안 수용 결정을 전후로 해서 노 대통령이 민주당의 향후 진로와 관련해 이들과 상당 부분 인식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노 대통령의 한 핵심 측근은 특검법안 공포 후 전개되고 있는 민주당 내 상황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특검법안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지도부의 대야 협상력, 당내 갈등 조정능력에 상당히 실망한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청와대가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향후 정국 안정을 위해 특검법안의 ‘조건부 수용’이 불가피하다는 사인(Sign)을 일찌감치 전달했건만 당 지도부가 이를 관철시키는 대신 구주류의 반발을 이유로 ‘조건부 거부권 행사’를 당론화하는 것을 보고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여기에 일부 신주류 인사들의 경우 ‘차기 당권’에 매몰돼 현안 해결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도 노 대통령으로 하여금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강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실제 노 대통령은 지난 18일 청와대에서 민주당 정대철 대표, 이상수 사무총장과 가진 오찬 회동에서 당 지도부의 지도력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의문을 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동은 노 대통령이 민주당의 ‘조건부 거부권 행사’를 묵살하면서 초래된 청와대-민주당 간의 갈등을 수습하기 위해 마련된 것.
양측은 회동 후 노 대통령과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이 각각 격주로 민주당 지도부와 정례회동을 가져 주요 현안을 조율키로 했다고 발표했고 이에 따라 ‘당-청 갈등설’은 수습의 가닥을 잡은 것처럼 비쳐졌다.
▲ 안희정 부소장 | ||
유인태 정무수석은 이를 두고 “소위 특검 정국에서 당론을 결집하는 과정, 당 개혁문제 등 최근 민주당이 보이는 양상에 대해 대통령이 좀 문제점을 느껴 한 말씀으로 본다”고 말해 노 대통령이 당 지도부에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인정했다.
청와대 한 핵심 관계자도 “민주당이 처음부터 ‘특검 반대’ 당론을 내세워 협상이 이뤄질 여지를 봉쇄한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노 대통령의 얘기대로 당내 상황에 매몰돼 정국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정서와 인식을 놓고 해법을 찾았다면 그 같은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 청와대 자체 여론조사에 따르면 노 대통령의 특검법안 수용에 대해 조사 대상의 82%가 지지의사를 표시해 노 대통령의 결단이 옳았음을 입증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여권 핵심부의 불신은 안희정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의 ‘폭탄 발언’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함께 노 대통령의 핵심 386 참모인 안 부소장은 지난 20일 노 대통령의 특검법 수용에 대한 당내 반발과 관련, “대통령이 특검법을 수용한 것은 더욱 폭넓은 국민적 합의를 얻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는데도, DJ와 대북평화노선을 핑계로 민심을 선동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하면 야당이 1년 내내 국회를 마비시킬 게 뻔한데, 그것이 평화노선 유지에 도움이 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지구당위원장제 폐지를 뼈대로 한 당 개혁안이 최근 상당수 의원들의 반대로 좌초위기에 놓인 데 대해서도 “국민경선을 통해 합법적으로 뽑힌 후보(노 대통령)에게 사퇴하라고 요구했던 사람들이 지금 총선 승리를 위해 자신의 지구당 위원장 자리를 내놓으라는 대의에는 반대하는 후안무치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일갈했다.
안 부소장의 이 같은 발언은 외형상 동교동계 등 구주류를 겨냥한 것으로 읽혀졌지만 실제로는 특검법안과 당 개혁에 대한 구주류의 반발에 ‘특검법 조건부 거부권 행사’, ‘지구당 위원장 폐지안 백지화’에 선뜻 동조한 신주류 지도부에 대한 비판과 함께 ‘개혁 신당’의 불가피성을 강조한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의 또 다른 386 핵심측근은 “특검법안과 당 개혁을 둘러싼 당내 갈등 과정에서 신주류 지도부의 역량은 바닥을 드러냈다. 시니어 신주류의 양 축인 정대철 대표와 김원기 고문은 차기 당권에 연연해 구주류의 눈치를 보느라 우왕좌왕하고 있고 기대했던 정동영 고문은 1월 하순 노 대통령 당선자 특사로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한 이후 당내 현안에는 등한시한 채 외국인사들을 만나느라 여념이 없는 등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겨냥한 행보에만 몰두하고 있다.
천정배, 신기남 의원 등 이른바 ‘탈레반’은 개혁성향은 확실하지만 당내 상황을 매니지먼트할 역량은 부족해 당장 전면에 내세우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386 그룹들의 이 같은 상황인식에 대해 구주류측의 “노 대통령 측근들이 이제야 본색을 드러냈다”(동교동계 한 의원)는 반발이 거세짐은 물론 신주류 내에서도 찬반 양론이 엇갈리고 있다. 후보 비서실장과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장, 인사특보를 지내며 신주류의 핵심으로 떠오른 신계륜 의원은 “(민주당이) 그대로 가든지, 바꾸든지 간에 현재의 민주당이 쪼개지면 내년 총선은 100% 필패”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호남권의 신주류 한 의원도 “개혁도 좋지만 ‘손에 쥔 새 한 마리가, 숲 속의 새 두 마리보다 더 가치 있다’는 평범한 진리처럼 고정 지지층의 이탈을 초래해서는 곤란하다”고 가세했다. ‘개혁신당’ 창당을 둘러싼 여권 내 갈등이 단순히 신·구주류 간 대립을 넘어 신주류 내에서도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박영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