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 편애 경험에 배우로서 경쟁심 결합해 시상식서 ‘발화’…96세 동생 죽자 “슬프다” 비로소 화해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왼쪽)와 조앤 폰테인.
엄마의 미모와 재능을 물려받은 두 딸은 어릴 적부터 배우를 꿈꾸었다. 각자 19살, 18살이었던 1935년에 데뷔한 자매. 먼저 치고 나간 사람은 언니인 올리비아였는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의 멜라니 역으로 오스카 여우조연상 부문 후보에 오른다. 흥미로운 건 올리비아는 아빠의 성인 드 하빌랜드를 썼지만 조앤은 엄마의 성인 폰테인을 사용했다는 것. 그 사연은 이후 밝혀진다.
조앤도 바로 치고 올라갔다. 다음 해 앨프레드 히치콕의 ‘레베카’(1940)로 여우주연상 부문 후보에 오른 것. 그리고 두 사람은 다음 해인 1942년 시상식에선 여우주연상 부문에서 맞붙었고, 동생인 조앤이 트로피를 거머쥔다. 이때부터였다. 할리우드에서 한창 떠오르던 유망주 자매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얘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시상식에서 조앤 폰테인의 이름이 호명되던 순간, 언니인 올리비아는 “우리가 해냈어!”라며 축하 세리머니를 하려 했지만 동생인 폰테인은 거부했고 루머는 시작되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조앤은 스튜디오에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퍼트린 소문일 뿐이라고 강변했지만, 두 사람 사이의 이상 기류는 끝없이 포착되었다. 1946년에 올리비아가 소설과 마커스 굿리치와 결혼했을 때, 동생인 조앤은 인터뷰를 하다가 잘못된 결혼이라는 발언을 했고, 이에 언니는 큰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조앤은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고 그렇게 앙금은 쌓여갔다.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194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리워라 내 아들’(1946)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사람들은 그들이 최소한 가벼운 허그 정도는 나누며 화해할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엔 올리비아의 복수였는데, 시상자로 나온 동생이 악수를 청했지만 올리비아는 무시하고 단상에 올라갔다. 1949년에 올리비아는 ‘여상속인’(1948)으로 두 번째 오스카를 거머쥐는데, 역시 동생과 기쁨을 나누는 일 따윈 없었다.
조앤 폰테인의 두 딸은 이모인 올리비아를 좋아했는데, 조앤은 그 이유로 딸과의 사이마저 멀어졌다. 다행히 잠시 평화로운 시간은 있었다. 1961년 굿리치와 이혼한 올리비아는 조카들의 초대로 크리스마스를 동생 식구들과 함께 보냈던 것. 이후 조금씩 상황이 좋아지는 듯했지만, 1975년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자매들의 엄마인 릴리언이 암에 걸렸는데, 그 치료법을 놓고 의견이 갈렸던 것. 올리비아는 여러 의사들에게 진찰을 받은 뒤, 질병 상태를 알아보기 위한 예비 수술을 하자고 했지만 조앤은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그 해 릴리언은 세상을 떠났는데, 장례식엔 올리비아만 있었다. 당시 조앤은 연극 투어 중이었다. 올리비아의 주장에 의하면 연락을 했지만 동생이 바쁘다며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조앤은 언니의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때부터 그들은 완전히 결별했다. 1987년에 오스카 60주년을 맞이해 특별 행사로 초청 받았을 때 잠깐 조우한 게 전부였고, 이때도 호텔 같은 층에 숙소를 잡았다는 이유로 그들은 아카데미 위원회에 강력하게 따졌다.
전성기 시절의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와 조앤 폰테인.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렇게 사이가 나빴던 걸까? 모든 건 유년기부터 시작되었다. 어릴 적 올리비아는 자신에게 동생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에 릴리언은 언니인 올리비아를 편애했고, 이 부분에 대한 조앤의 반발심은 계속 커졌다. 가혹 행위도 있었다. 조앤은 올리비아의 옷을 물려 입었는데, 올리비아는 자신의 옷을 찢어놓고 꿰매 입으라고 했다. 심한 장난으로 쇄골을 부러뜨린 적도 있었고 툭하면 머리를 잡아당기며 괴롭혔다. 같은 시기에 데뷔했을 때도, 엄마는 올리비아에게만 패밀리 네임인 드 하빌랜드를 사용하도록 했다. 할리우드에 나왔을 땐, 스튜디오로부터 같은 배역을 놓고 저울질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릴 적의 경험과 성인이 되어서의 경쟁이 결합되면서, 그 감정은 점점 거칠어졌던 것이다.
두 사람은 2013년 12월, 조앤 폰테인이 9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을 때 비로소 화해한다. 올리비아가 “큰 충격을 받았고 너무나 슬프다”는 공식 성명을 낸 것. 1975년부터 남남으로 살아온 자매가 거의 40년 만에 화해한 셈이다. 그리고 2018년 현재,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102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다섯 마리의 애견들과 함께 살고 있으며, 생존하고 있는 최고령 오스카 수상자로 기록되고 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