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소프트뱅크 코리아 사무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소프트뱅크가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기업은 지난 10월30일 부도난 IT제품 유통업체인 소프트윈과 이어 지난 11월1일 부도난 에이콘(IT관련 유통전문업체).
또 지난 11월8일에는 소프트뱅크의 어음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코스닥 등록기업인 자네트시스템이 자금 악화설에 휩쓸렸다. 이 회사는 루머로 이날 주식 거래가 중단되기도 했다.
표면상 이들 3개 회사의 부도 또는 매매거래 정지 원인은, 이들 회사와 거래를 해온 ‘한국RF로직’이라는 IT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유통업체가 지난 10월 중순 갑자기 부도난 때문이었다.
소프트윈 등 3개사와 RF로직의 부도가 소프트뱅크코리아의 배후설로 이어진 것은, RF로직과 소프트뱅크가 1년간 1천억원대의 거래를 할 정도로 깊은 관계였기 때문.
이로 인해 금융가에서는 소프트뱅크가 이번 부도 사건과 모종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줄부도 사건의 발단은 지난 10월18일 RF로직 임직원들이 소프트뱅크, 소프트윈 등에 4백억원대 규모의 물품대금을 갚지 않고 일제히 잠적하면서 터졌다.
이로 인해 RF로직과 거래를 했던 소프트윈과 에이콘 등 상대적으로 자금여력이 많지 않았던 두 회사는 10월말~11월초 연쇄부도를 맞게 됐다. 이 상황에서 RF로직과 거래했던 소프트뱅크는 지난 10월31일자로 만기가 도래한 RF로직과 관련된 어음 1백55억원에 대해 거래은행에 사고예치금만 맡기고 지급결제 중지요청(법률용어로는 피사취 부도)을 했다.
따라서 RF로직의 어음을 갖고 있던 자네트시스템 등 관련 업체들이 연쇄적으로 유동성 위기에 휘말린 것. 소프트뱅크는 이달 14일에도 이런 ‘피사취부도’ 처리되는 어음이 무려 5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벤처기업들의 연쇄 줄부도가 터질 것으로 우려된다.
▲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 | ||
때문에 현재 RF로직의 피사취 어음을 갖고 있는 H사 등 벤처기업들에 연쇄 자금난이 벌어지는 등 일파만파로 파문이 번질 조짐이다. 증권가나 IT업계의 관심은 이번 사건이 RF로직의 가공어음을 통한 매출 부풀리기 결과일 수도 있다는 해석이 많다.
더욱이 이같은 관측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RF로직의 회계장부 조작이 단독범은 아닐 것이라는 데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것. 이와 관련 에이콘의 김철환 사장은 “에이콘과 소프트윈의 연쇄 부도는 RF로직과 소프트뱅크코리아 사이에 수백억원에 달하는 가공매출이 있었고, 이들은 이 가공매출을 근거로 수백억원대의 기업어음을 남발해 결국 부도가 불가피했다”고 폭로하고 나서 파문이 예상된다.
김 사장은 에이콘의 대주주인 IMC(벤처투자회사)와 RF로직, 소프트뱅크 3사가 가공매출을 주고받다가 RF로직이 중간에서 부도를 내는 바람에 연관된 기업들로 연쇄 부도가 이어진 것이라는 주장이다.
IMC의 오너인 이찬익 IMC 이사도 <일요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은 주장을 폈다. 그는 인터뷰에서 IMC가 계열사인 에이콘과 m플러스텍 등을 이용해 RF로직의 가공거래에 개입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시인했다.
이 이사는 “소프트뱅크의 한해 매출액이 2천억원대이고 소프트뱅크와 RF로직의 거래액이 지난 1년반 동안 1천5백억원대인 상황에서 소프트뱅크가 이런 거래 내용을 몰랐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장한 핵심은 소프트뱅크도 이번 사건의 공동 책임자라는 것이다.
물론 이 주장에 대해 소프트뱅크는 “피해자”라는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소프트뱅크코리아의 홍보대행을 맡고 있는 브이콤의 민호기 대표는 “RF로직과의 거래를 맡았던 소프트뱅크의 조아무개 차장은 이미 정직 처분을 받았고, 자체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소프트뱅크의 책임론을 거론하고 있는 에이콘의 김철환 사장은 이번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다. 에이콘의 소액주주들에게 책임회피를 하기 위해 그런 식으로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프트뱅크는 이번 RF로직 부도와 관련 부도업체들의 미수금이 2백억원대이고, 지급해야 할 돈도 3백억~4백억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업체에선 소프트뱅크가 이 사건과 관련해 어떤 관련자에 대해서도 형사고발 등 필요한 법적절차를 밟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RF로직의 실질적인 대주주인 이병훈씨를 형사고발하겠다는 얘기도 나왔지만, RF로직이 부도난 이후 현재까지 고발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는 상황이다. 통상 이런 사기 사건의 경우 사건이 공론화되기 전에는 물밑에서 진행되다 관련 회사의 피해가 가시화될 경우 바로 형사고발에 들어가는 것과는 크게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또 이번 사건의 소프트뱅크쪽 담당자로 알려진 조아무개씨 등 2명의 소프트뱅크쪽 직원들도 형사고발을 당하지 않았다. 일각에선 소프트뱅크가 9월 초 RF로직이 1차 부도 위기를 맞았을 때 부도를 막아줬다는 주장을 펴고 있기도 하다.
이런 점을 들어 소프트뱅크가 이번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보고 있는 시각이 나오기도 한다. 이에 대해 소프트뱅크는 “부도를 막아줬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며, 관련자의 형사고발보다는 어느 어음이 실제거래에서 이뤄진 어음인지 가리기 위해서 담당 직원들에 대한 조사가 필요해 일단 고발을 미루고 있다”고 해명하고 있다.
조 차장 역시 사내 조사를 하기 위해 정직 조치를 취했고 현재 조사중이라는 것. 자네트 등 코스닥 등록기업들은 거래대금과 관련된 진성어음은 소프트뱅크가 피사취로 묶어놓지 말고 돈을 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이를 위해 소프트뱅크와 협상중이다.
특히 부도난 에이콘의 소액주주들도 소액주주모임을 결성해 자체적으로 사건 진상을 파헤치고 있어 이번 사건은 일파만파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건의 의혹은 RF로직 관련자들이 잠적했고, 가장 큰 피해자인 소프트뱅크는 사법조치를 미루고 있고, RF로직과 소프트뱅크의 연결고리인 에이콘이나 IMC의 책임경영진들은 가공매출을 인정하면서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궁금증을 부채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