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온디스크·파일구리와 ‘한솥밥’…현재는 빗썸의 김재욱 손에
정부는 내년 1월부터 불법촬영물에도 DNA 필터링 기술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DNA’ 필터링은 각각의 영상물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수치화하여 추출한 뒤 이를 원본 저작물과 비교해 동일성 여부를 확인하는 기술이다. 각각의 영상물이 갖고 있는 특징이 마치 DNA 같다하여 DNA 필터링이란 이름이 붙었다. 지금까진 영화나 방송물과 같은 저작권이 명백한 콘텐츠에만 이 필터링이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웹하드 카르텔과 디지털성범죄 확산으로 한국 사회가 들썩이자 정부도 칼을 빼들었다.
허욱 방통위 부위원장에 따르면 당초 기술 개발에 선정된 업체는 뮤레카였다. 그러나 10월 말 양진호 사건이 터지며 뮤레카와 이지원인터넷의 유착 관계가 드러나자 아컴스튜디오가 그 자리를 대신 앉게 됐다.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아컴스튜디오 역시 불법촬영물 유통 방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해당 업체가 2012년 웹하드 등록제 이후 지금까지 뮤레카와 함께 필터링 업계를 양분해왔기 때문이다.
온디스크와 아컴스튜디오 홈페이지 캡처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아컴스튜디오의 출신 성분이다. 온디스크, 파일구리, 케이디스크 등 국내 굵직한 웹하드사를 운영하고 있는 비엔씨피와 콘텐츠 유통과 필터링 사업을 하는 아컴스튜디오는 한때 한솥밥 먹던 사이였다.
이들을 품고 있었던 건 다름 아닌 SK텔레콤이다. 인연은 최태원 회장의 비자금 횡령 창구로 유명세를 치른 펀드운용사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서 시작된다. 베넥스인베스트먼트는 2011년부터 비엔씨피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었다. 아컴스튜디오의 전신인 캔들미디어는 그보다 앞선 2010년부터 스카이온과의 합병을 계기로 베넥스인베스트먼트의 베넥스섹터투자조합4호 오픈이노베이션펀드 더 컨텐츠 콤을 최대주주로 맞았다. 두 회사의 교류도 활발해졌다. 2011년 9월 비엔씨피는 캔들미디어(현 아컴스튜디오)가 제공하는 영상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웹하드 업로더들에게 추가 포인트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12월 베넥스인베스트먼트의 김준홍 전 대표와 이듬해 1월 최재원 부회장이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되자 SK텔레콤은 베넥스를 화이텍인베스트먼트에 매각했다. 당시 벤처캐피털 업계에서 이 둘의 거래는 흥미로운 소재였다고 한다. 한국정보공학 지분 100%의 화이텍은 운용자산이 겨우 271억 원에 불과한 것에 비해 베넥스가 만지는 돈은 3000억 원이 넘었다. 화이텍은 베넥스를 품기엔 너무 작은 회사였다. 여기에는 한국정보공학의 유용석 대표와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친분이 작용했다는 것이 당시 업계의 시각이었다. 두 사람은 2000년 9월 유 대표가 만든 벤처기업 발굴을 목적으로 한 브이소사이어티의 회원으로 친분을 쌓았다고 알려져 있다. 투자조합 매각 후에도 이름만 바뀌었을 뿐 실소유주는 SK라는 말이 무성했다.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2년 6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 SK 계열사 자금 117억 원이 캔들미디어에 투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비엔씨피와 캔들미디어의 인연도 2015년을 끝으로 완전히 마무리된다. 2015년 말 SK텔레콤이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부실자회사들을 처분했기 때문이다. 처분 리스트에 올라간 회사 중에는 비엔씨피와 그 자회사인 아이콘큐브홀딩스가 있었다. 캔들미디어 역시 2016년 3월 중국의 도온투자지주유한회사에 매각되면서 최대주주는 오픈이노베이션에서 투윈인베스트먼트로 바뀌었다.
2016년 이후로 두 회사 사이의 인적 교류나 자본 교류는 찾을 수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교류가 있을 것’이란 의심이 끊이지 않는 까닭은 과거 인적교류가 워낙 활발했기 때문이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비엔씨피와 캔들미디어 그리고 한국정보공학에는 유난히 겹치는 임원들이 많았다. 이들은 매년 돌아가며 비엔씨피와 캔들미디어의 임원직에 앉은 것으로 확인됐다. 2011년 9월부터 11월까지 비엔씨피 대표로 있었던 김도진 전 대표는 2011년 3월부터 2012년 3월까지 캔들미디어의 사내이사로 있었다. 정순암 전 한국정보공학 대표의 경우 2012년부터 1년간 비엔씨피의 대표를 지낸 후 이듬해 3월 캔들미디어의 대표도 역임했다. 한장규 전 이사와 이명근 전 이사는 각각 2012년부터 2013년까지,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비엔씨피와 캔들미디어 사내이사를 겸직하기도 했다.
‘일요신문’ 취재결과 현재 서울산업진흥원 장영승 대표도 한때 캔들미디어와 비엔씨피의 대표로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DNA 필터링 기술이 처음 캔들미디어에 들어온 것도 장 대표가 있던 시기다. 장 대표의 지인은 “장 대표가 SK의 최 회장과 같은 테니스동호회 회원”이라며 “당시 캔들미디어에 콘텐츠가 많지 않아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경영자들은 바뀌었어도 필터링 업무를 하는 직원들은 쉽게 바뀌지 않았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한국사이버성폭력 대응센터의 서승희 대표는 “비엔씨피와 아컴스튜디오가 뮤레카와 이지원인터넷과 같은 지배구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면서도 “중요한 건 뿌리다. 비엔씨피와 함께 일했던 직원들은 지금까지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올 7월 아컴스튜디오의 경영권은 완전히 새로운 사람에게 넘어갔다. 지난 4월 빗썸의 대표직에서 내려온 김재욱 대표다. 연예기획사 아티스트컴퍼니 전 대표로 유명한 그가 아컴스튜디오의 새로운 주인으로 취임하면서 앞으로의 사업 영역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아컴스튜디오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기존 사업을 매니지먼트와 영화제작 등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그러나 필터링 관련 사업도 지속할 것”이라면서도 비엔씨피와의 관계를 묻는 질문엔 “이미 비엔씨피와는 무관한 회사”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아컴스튜디오 인수 두 달 만에 아티스트컴퍼니 지분 15%를 인수해 자기 거래 및 배임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현재 상호명인 아컴스튜디오도 이때 변경됐다. 일부 언론들은 ‘우회상장’을 목적에 둔 인수가 아니냐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만약 김 대표가 아티스트컴퍼니의 지분율을 계속해서 늘려간다면 해당 기획사 소속 연예인인 정우성과 이정재 등도 아컴스튜디오에 관계될 확률이 없지 않다.
그동안 뮤레카와 아컴스튜디오 등 필터링 업체들이 영화와 드라마, 예능 등 영상물 콘텐츠의 저작권 보호에선 분명한 성과를 냈다. 영화계의 굿다운로더 캠페인이 다운로더들의 의식 변화를 주도했다면 필터링 업체는 기술적인 뒷받침을 해온 셈이다. 관건은 이제 필터링 업체들이 저작권과 관련 없이 불법 성인물까지 모두 필터링해낼 수 있느냐다. 연예관계자들이 아컴스튜디오의 경영권을 확보한 만큼 기대감을 표출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에 대해 디지털성폭력아웃(DSO)의 하예나 대표는 “필터링업체에게 웹하드사는 고객이다. 고객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은 회사는 없을 것이다. 굳이 한 몸이 아니어도 ‘돈’이라는 더 큰 사장님이 계시지 않나. 경영진이 바뀌었더라도 계속해서 지켜봐야 한다”고 지적하며 “결국 돈의 영향을 받는 사설 업체가 아닌 정부에서 직접 DNA 필터링 업체를 운영하는 등의 구조적인 변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사명 7번, 대표 16번 바뀌어…주력 사업 ‘애매’ 필터링업계의 양대산맥이라 불리는 아컴스튜디오의 이력은 특이하다 못해 화려하다. 1999년 2월 설립부터 2018년 현재까지 회사 이름만 7번, 대표이사만 약 16번 바뀌었다. 2017년 11월 당시 트윈글로벌(현 아컴스튜디오)과 함께 필터링 작업을 했던 DSO의 하예나 대표 역시 “회사명도 자주 바뀌고 임원들도 자주 바뀌어서 매우 수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한 바 있다. 아컴스튜디오의 연혁에는 국내 유명 기업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아컴스튜디오는 1999년 2월 비트윈 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같은 해 9월 국내 최초로 한국 영화 DVD를 제작해 업계에서 이름을 날렸다. 이때 제작된 DVD가 ‘쉬리’ ‘여고괴담’ ‘간첩 리철진’ 등이다. 곧이어 삼성벤처와 동양종금, 기보캐피탈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뒤 2003년 코스닥 등록에 성공해 상장회사로 거듭났다. 이후 등장하는 기업은 SM엔터테인먼트. 2007년 바뀐 상호명은 에스엠픽쳐스로 SM엔터테인먼트 맞춤형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때 이수만 회장도 에스엠픽쳐스의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에스엠픽쳐스는 영화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영화사업에 진출하는 듯했으나 인수 1년을 조금 넘긴 2009년 프리미어엔터테인먼트사와 합병하고 이름도 프리지엠으로 바꾸게 된다. 그 후로 2010년 아론미디어, 스카이온 등과의 합병을 거쳐 몸집을 키웠고 2011년 캔들미디어라는 이름으로 SK텔레콤 아래에 있게 된다. 2016년 매각 이후로 새로운 최대주주가 된 도온투자지주유한회사는 캔들미디어를 트윈글로벌로 변경하고 중국 공략에 나섰다. 그러나 같은 해 사드 여파로 중국으로의 콘텐츠 수출이 어렵게 되어 3년 연속 부분자본잠식 상태에 빠졌고 올 7월 비덴트가 이를 인수하면서 비덴트의 김재욱 대표가 아컴스튜디오의 새 주인이 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원래 공략했던 사업 영역에선 점점 멀어져갔다. 본래 설립 목적은 영상 콘텐츠 제작과 유통이었지만 이후 여러 번의 흡수합병을 거쳐 사업부문이 불명확해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현재 아컴스튜디오의 매출 절반은 메시지 대량 전송 서비스에서 나오고 있다. 올 11월 21일 새롭게 올라온 공시에는 이미지 제고를 위해 아컴스튜디오에서 버킷스튜디오로 사명을 바꾼다는 말과 함께 사업부문에 연예기획사 및 매니지먼트사업과 영화제작 사업이 추가됐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