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제대 후 포기,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복수 국적자 논란 막기 위한 선제조치
이웅열 회장(왼쪽)과 이규호 전무 부자. 사진=코오롱그룹
그런데 ‘일요신문’ 취재 결과 한국과 미국 복수(이중) 국적자였던 이규호 전무가 몇 해 전 미국 시민권(국적)을 포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무가 복수 국적을 포기한 구체적인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구설에 오를 수도 있는 복수 국적자 논란을 차단하기 위한 선제조치 아니냐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코오롱그룹 측은 “개인 신상에 관한 일이라 정확한 시기를 밝힐 수 없으나 이 전무는 한국과 미국 복수 국적을 가진 상태에서 한국 육군에 자원 입대했다. 제대 후 미국 시민권을 포기해 한국 국적만을 남겼다”고 설명했다.
이규호 전무는 고 이원만 창업주- 고 이동찬 명예회장- 이웅열 회장에 이은 코오롱그룹 4세다. 이 전무는 1984년 8월 미국에서 출생했다. 미국은 수정헌법 14조에 따라 부모의 국적에 상관없이 미국 땅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속지주의를 따르고 있다. 따라서 이 전무는 출생과 동시에 미국 시민권자였다.
이웅열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에 입학해 2학년을 수료한 후 군 복무를 마치고 미국 유학길에 떠났다. 이 회장은 1983년 2월 워싱턴 D.C.에 있는 아메리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85년 2월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학위를 받았다.
이 회장은 1983년 서병식 동남갈포공업 회장의 장녀 서창희 현 꽃과 어린왕자 이사장과 결혼했고 이 전무는 이듬해 이 회장이 MBA 과정을 밟던 중에 출생했다. 이 전무는 영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이 전무는 한국에 돌아와 육군에 입대했다. 그는 복무 당시 동명부대 일원으로 레바논에 파병을 다녀오기도 하는 등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미국 시민권 포기는 이 직후에 있었다.
2010년까지는 복수 국적자인 남성은 병역을 마쳤더라도 하나의 국적을 반드시 선택해야 했다. 하지만 국적법 개정으로 2011년 1월부터 남성의 경우 병역의무를 마치고 2년 내에 외국국적 불이행 서약만 내면 복수 국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전무는 국적법에 따라 복수 국적을 유지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코오롱그룹 측은 이 전무의 제대 시점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 이웅열 회장도 만기제대했다. 재벌가에서 군 면제 등 병역문제 논란이 심심찮게 불거지는 점을 감안하면 코오롱그룹 오너 부자의 행보는 분명 차별화 된 것이었다.
이 회장과 서 이사장은 이 전무 밑으로 두 딸인 소윤 씨와 소민 씨를 두고 있다. 코오롱그룹 총수 일가는 장자에게만 경영권을 승계하고 있으며 딸과 사위에게는 경영 참여를 배제하는 가풍을 잇고 있다. 코오롱 총수 일가가 대대로 아들이 귀한 집안이기 때문인 게 그 이유다. 이원만 창업주는 2남 4녀, 이동찬 명예회장은 1남 5녀, 이웅열 회장도 1남 2녀를 두었다. 이 전무의 두 여동생도 현재 그룹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 이 회장의 경영일선 후퇴 선언에 따라 이 전무의 경영권 승계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지고 있는 형국이다.
경기도 과천시 소재 코오롱그룹 본사. 사진=박은숙 기자
이 전무는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에 차장으로 입사했다. 이 전무는 입사 후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그는 입사 3년만인 2015년 12월 코오롱인더스트리 상무보로 선임되면서 100대 그룹 최연소 임원으로 이름을 올렸고, 2017년 12월 ㈜코오롱 전략기획담당 상무에 이어 이번에 전무로 승진했다.
하지만 이 전무가 그룹 경영권을 장악하기까진 앞으로 풀어야 할 난제들이 많다. 이 전무는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지주회사 ㈜코오롱의 지분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다. 이 전무가 경영권 승계를 완료하려면 ㈜코오롱의 지분 49.74%를 보유하고 있는 이웅열 회장으로부터 지분을 상속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재 이 회장이 ‘상속세 탈세’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어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또한 이 전무는 제대로 검증받지 못한 경영능력을 스스로 입증해 보여야 한다.
이 회장의 퇴임으로 당분간 유석진 ㈜코오롱 사장이 지주회사를 이끌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주요 계열사 사장단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 성격의 ‘원앤온리 위원회’가 그룹 주요 경영 현안을 챙기고 조율할 것으로 관측된다.
장익창 기자 sanabd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