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라. IMF라고 해도 여기는 돈이 넘치지?”
김상복이 오준태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마치 전쟁에 내보내는 장수를 격려하는 듯한 태도였다.
“금붙이를 나라에 바치는 사람들만 어리석지. 그 돈이 다 어디로 가겠냐?”
외환위기를 금으로 극복하겠다는 발상이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방송사와 신문사에 금반지며 금목걸이, 팔찌를 바치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마치 구한말의 국채보상 운동과 비슷하여 텔레비전을 보던 오준태는 감동을 하기까지 했었다.
“어디로 가는데?”
“내 장담하지만 절대로 국민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평화의 댐 건설할 때 낸 성금이 어떻게 됐냐. 어떤 놈 입으로 들어갈지 아무도 모른다.”
김상복이 콧방귀를 뀌었다. 3월인데도 날씨가 차가웠다. 김상복의 회사는 텐트를 치고 딱지를 사 모으고 있었다. 딱지는 1순위 청약통장을 200~300개씩 사모아서 그 중에 몇 개가 당첨되면 프리미엄을 붙여서 팔아먹는 것이었다. 김상복이 나타나자 직원들이 몰려와 인사를 했다. 김상복은 직원들에게 간단하게 훈시를 한 뒤에 다시 오준태에게 왔다.
“딱지를 못 사더라도 연락처는 꼭 받아둬라. 네 명함도 잔뜩 뿌리고.”
김상복에게 며칠 동안 교육을 받기는 했으나 실전에 투입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생판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청약통장을 사들이는 일이 어려웠다. 명함을 나누어주려고 해도 잘 받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래도 오준태는 자신의 능력을 시험이라도 하듯이 하루 종일 사람들에게 매달렸다.
‘미국에서도 성공한 사람들은 80%가 세일즈맨 출신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영업사원들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오준태는 그날 하루 7개의 청약통장을 사들였고 다음날은 15개의 통장을 사들였다. 분양 신청 기간이 딱 이틀이었기 때문에 이틀밖에 활동을 할 수 없었으나 김상복의 회사는 전체적으로 120개의 통장을 사들였다. 이중에서 열 개만 당첨이 되어도 한 개당 1000만 원을 남기면 1억 원을 벌어들인다.
“야,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우리가 9개 당첨이 되었는데 네가 사들인 게 7개나 되었어.”
분양권 추첨이 이루어지자 김상복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사무실의 직원들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박수를 쳤다.
“운이겠지.”
오준태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딱지로 사들인 청약통장이 몇 개나 당첨되어도 오준태가 돈을 버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운이지. 그러니까 네가 운이 좋다는 거야. 금년에 대박 한 번 터뜨리겠는데.”
김상복은 기분이 좋아서 갈비로 저녁을 샀다.
“분양권을 파는데 하한선은 1500만 원이야. 그 이상 받는 것은 각자 수당으로 생각하고 못 팔면 알아서들 해.”
김상복이 분양권 9개를 직원들에게 내주었다. 김상복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오준태까지 모두 다섯이었다. 오준태는 처음이라 하나를 받아서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김상복의 회사에 작성되어 있는 고객 명단은 70%가 여자들이었다. 오준태는 얼마에 팔까 생각을 하다가 2000만 원에 팔기로 결정했다. 몇 군데 전화를 하자 대부분 경계하는 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고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만 전화를 끊었다.
‘낯선 사람이 전화를 하니 경계를 하는구나.’
오준태는 분양권을 팔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는 학군이 좋다는 것과 1년 안에 아파트값이 반드시 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로 했다. 아파트값이 폭락해서 미분양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강남은 보합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보합세를 이루는 것은 여차하면 폭등을 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누가 오랫동안 버티느냐의 문제일 뿐이었다.
“사모님, 지금 사두셔야 돈을 법니다. 이렇게 학군이 좋고 싼 데가 없습니다. 강남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준태는 오후 내내 전화를 걸었는데 소득이 없었다. 벌써 분양권 2개를 1700만 원에 판 사람들도 있었다. 하루종일 공을 들인 탓인지 거의 포기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주애란이라는 여자였다. 남편과 상의를 하고 전화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일 몇 시에 뵐 수 있어요?”
“내일 10시면 출근합니다.”
오준태는 주애란과 약속을 했다. 이튿날 사무실에 나가자 주애란은 10시에 정확하게 도착했다. 뜻밖에 그녀는 오준태가 다니던 대학교의 미술사 교수였다. 오준태가 대학교에 다닐 때는 못 보던 교수인데 졸업한 뒤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저희 학교 교수님이네요.”
“그래요? 우리 학교 졸업했어요?”
학번을 비교하자 주애란은 오준태의 5년 선배였다. 주애란은 오준태가 갖고 있는 분양권 두 개를 모두 샀다. 값도 깎지 않았다. 오준태는 주애란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분양권을 사는 데 놀랐다.
“앞으로 많이 도와 줘요.”
주애란이 손을 내밀며 오준태가 해야할 말을 먼저 꺼냈다.
“말씀 낮추십시오. 후배 아닙니까.”
오준태는 주애란의 보드라운 손을 잡았다. 여자의 손을 잡자 짜릿했다.
“호호호. 그래도 될까. 좋은 후배를 만났으니 내가 점심을 사야겠네.”
주애란은 계약을 마치고 점심까지 사고 돌아갔다. 오준태는 주애란이 고급 승용차를 끌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향해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불과 며칠 만에 1000만 원을 벌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분양권 한 개당 프리미엄 1500만 원만 김상복에게 주고 나머지 500만 원은 수당으로 받기로 한 것이다.
“야, 너 왜 이렇게 사람을 놀라게 하는 거야.”
김상복은 깜짝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운이 곧 사업이야. 너 며칠 만에 1000만 원을 번거잖아. 하여튼 너랑 나랑 일 좀 벌이면 대박 터지겠다.”
김상복은 기분이 좋아서 빳빳한 10만 원권 자기앞수표 100장으로 수당을 지급한 뒤에 직원들을 데리고 일식집에 가서 저녁을 샀다. 일식집에서도 오준태가 프리미엄을 2000만 원이나 붙여서 판 것이 단연 화제였다. 물론 가장 많이 돈을 번 것은 김상복이지만 그는 자기 돈을 투자한 것이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오 과장님, 대한민국 돈 혼자만 벌지 마시고 저도 좀 도와주세요.”
사무실에서 유일하게 여자인 정혜원이 오준태에게 술을 따르면서 말했다. 김상복의 사무실은 직원이 모두 다섯인데 전화를 받은 경리 미스 리 외에는 모두 과장이라고 명함에 박아놓고 있었다. 정혜원도 과장 직함을 갖고 있었다.
“한 식구니까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호호호. 저도 2000만 원짜리 하나만 해주세요.”
“성의껏 해보겠습니다.”
정혜원은 30대 주부로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밤에는 병원에서 간병을 한다고 했다. 오준태는 일식집에서 나오자 김상복으로부터 받은 1000만 원 중 500만 원을 따로 챙기고 500만 원만 봉투에 넣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몸이 아프다고 출근하지 않고 있었다.
“많이 아픈 거야?”
오준태는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는 아내를 향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아니야. 몸이 좀 피곤해서 그래.”
아내는 헐렁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앞이 패여 허연 젖무덤이 절반이나 드러나 있었다.
“힘들면 일 나가지 말아.”
“누구는 나가고 싶어 나가나? 저녁은 어떻게 했어?”
“먹고 왔어.”
오준태는 500만 원이 든 흰 봉투를 아내에게 내밀었다. 아내가 봉투 안을 들여다보더니 깜짝 놀라서 오준태를 쳐다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돈이야?”
“아파트 계약해 주고 받은 돈이야.”
아내가 수표에 침을 묻혀 가면서 두 번이나 정성스럽게 세었다. 아내는 방향을 바꾸어 또 여러 번 세었다.
“50장이니까….”
“500만 원이지 얼마야? 그것도 계산이 안 되냐?”
오준태가 퉁명스럽게 말하는데도 아내는 백치처럼 배시시 웃었다.
“여보야. 당신 너무 이쁘다.”
아내가 오준태에게 와락 달려들더니 입술을 문질러댔다. 오준태는 얼떨결에 아내를 안아서 펑퍼짐한 둔부를 쓰다듬었다. 걸핏하면 신경질을 부리는 아내로 인해 그동안 얼마나 속을 끓였던가.
‘흐흐…. 오늘에야 이 여편네가 고분고분해지겠군.’
오준태는 아내의 물컹한 엉덩이를 잡아당기면서 하체를 바짝 밀착시켰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