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의 영광’ 뒤로한 한국 동계스포츠의 초라한 현실… 중국은 ‘동계스포츠 백년대계’ 가동
2월 25일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장명. 사진=일요신문 DB
[일요신문] 잔치가 끝난 자리에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한국 동계스포츠의 암담한 현실이다.
대한민국 체육 역사에 있어 2018 평창동계올림픽은 기념비적인 대회였다. 평창올림픽 개최로 한국은 세계 4대 스포츠제전(동·하계 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을 개최한 5번째 나라가 됐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기대했던 ‘동계스포츠 부흥’이란 거시적인 목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 동계스포츠는 올림픽 개최 이후 몸살을 앓는 모양새다. 한국 동계스포츠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리셋’된 한국 썰매 인프라, 다시 한번 쿨러닝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썰매 종목에 첫 금메달을 선물한 ‘아이언맨’ 윤성빈. 사진=일요신문 DB
2018년 2월 16일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 ‘아이언맨 헬멧’을 착용한 윤성빈이 결승점을 통과하자 관중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금메달이었다. 윤성빈은 한국 선수단에 썰매종목 사상 첫 메달을 선물했다.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의 선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봅슬레이 4인 경기에 출전한 원윤종, 서영우, 김동현, 전정린은 ‘깜짝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들의 열정은 국민들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했다.
10년 전만 해도 ‘썰매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배출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의 성과는 가히 ‘평창의 기적’이라 불릴 만했다.
이때까지만해도 한국 썰매 종목의 미래는 밝아 보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외부 환경이 걸림돌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올림픽이 끝난 뒤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센터’와 ‘실내 스타트 훈련장’이 폐쇄된 까닭이다.
선수들의 훈련 여건은 평창올림픽 10년 전으로 회귀했다. ‘썰매 인프라 시계’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훈련 여건 악화는 자연스레 경기력 하락으로 이어졌다. 한국 대표팀은 12월 7일부터 펼쳐진 두 차례 월드컵 대회에서 동메달 2개를 수확했다. 모두 스켈레톤 종목 윤성빈이 획득한 메달이다. 봅슬레이 종목에 참가한 한국 대표팀은 ‘악전고투’했지만 입상엔 실패했다.
12월 21일 ‘휠라코리아-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후원 협약식’에 참석한 한국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이용 총감독은 한국 썰매 위기론에 불을 지폈다.
이용 총감독은 “정부 예산이 70~80% 삭감됐다. 장비 살 돈이 없다. 슬라이딩센터가 폐쇄된 뒤 준비 역시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올림픽 이후 봅슬레이·스켈레톤 종목의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하소연했다.
한국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은 ‘한국판 쿨러닝(자메이카 봅슬레이 대표팀 일화를 모티브로 제작한 영화)’이라 불린다. 한국 대표팀은 열악한 환경을 열정 하나로 극복했다. 그리고 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선보였다. ‘한국판 쿨러닝’은 평창올림픽에서 클라이맥스를 맞았다.
하지만 ‘한국판 쿨러닝’의 열매는 달콤하지 않았다. 영광 재현을 노리는 한국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은 다시 원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12월 21일 경기도 부천시 중동 현대백화점 유플렉스에서 열린 ‘휠라코리아-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후원협약식’ 현장. 사진=일요신문
이처럼 악재가 산재해 있지만 희망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국산 의류 브랜드 휠라코리아가 위기에 처한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의 구세주로 나섰다. 휠라코리아는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에 의류용품 후원을 약속했다.
12월 21일 휠라코리아 윤윤수 회장은 ‘휠라코리아-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후원 협약식’에서 “그동안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에 최고 수준의 경기복을 제공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어 윤 회장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남다른 열정과 투지를 선보인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휠라코리아의 후원 협약이 ‘한국판 쿨러닝 재현’의 불씨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영미 신화’ 기억 저편으로… ‘뒤숭숭’ 컬링협회, 후원사 선정 역시 불투명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한국 컬링 여자대표팀 ‘팀킴’. 사진=일요신문 DB
“영미~!”
2018년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유행어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유행어를 만들어낸 주인공은 바로 한국 컬링여자 대표팀 ‘팀킴(김은정, 김경애, 김선영, 김영미, 김초희)’이었다.
‘팀킴’은 “영미~”라는 구호를 외치며, 올림픽 무대에서 연전연승을 거듭했다. ‘팀킴’의 드라마틱한 성장 스토리는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다. 비록 결승전에서 아쉽게 패했지만, ‘팀킴’의 도전은 ‘스토리텔링의 진수를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팀킴’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2018년 2월 말 ‘팀킴’은 한국갤럽이 실시한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종목’ 설문조사에서 70% 지지를 얻어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팀킴’의 미래는 탄탄대로가 될 것으로 보였다.
11월 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팀킴 기자회견’. 사진=일요신문DB
하지만 ‘팀킴’의 얼굴에 핀 웃음꽃은 금방 져버렸다. 11월 6일 ‘팀킴’은 어두운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에 나섰다. 그리고 이어진 ‘팀킴’의 폭로는 충격적이었다. “지도자로부터 폭언을 들었고, 대한컬링경기연맹(컬링연맹)으로부터 상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팀킴’의 폭로는 적잖은 파장을 몰고 왔다. 결국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와 대한체육회가 11월 13일부터 컬링연맹에 대한 특정감사를 시작했다. 컬링연맹은 2017년 8월 관리단체로 지정된 지 1년 2개월 만에 다시 한번 큰 위기를 맞았다.
이뿐 아니다. 컬링연맹은 후원사 선정에도 난항을 겪고 있다. 기존 후원사였던 휠라코리아와의 ‘후원 재계약 협상’이 결렬된 탓이다.
스포츠마케팅 업계 관계자 A 씨는 “재계약 협상 과정에서 휠라코리아가 평창올림픽 전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그럼에도 컬링연맹는 더 많은 요구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협상은 결렬됐다”고 전했다. 이어 “협상이 결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팀킴 사태’가 터졌다. 컬링연맹이 새 후원사를 찾는 작업은 앞으로도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림픽이 끝난 뒤 한국 컬링의 미래는 안개 속에 휩싸였다. 한국 컬링이 이룩한 ‘평창올림픽 신화가 원 히트 원더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체질개선’ 나선 한국 빙상, 변화는 가능할까
2018년 9월 대한빙상경기연맹이 대한체육회 관리단체로 지정됐다. 사진=일요신문 DB
빙상(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은 한국 동계스포츠의 뿌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빙상 강국’ 타이틀은 한국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개최하는 데 큰 힘이 됐다. 한국 빙상은 평창올림픽에서도 13개 메달을 수확하며 ‘빙상 강국’의 면모를 과시했다. 하지만 각종 논란이 불거지며 한국 빙상의 성과는 빛을 잃었다.
과거부터 빙상은 ‘구설수’가 풍성한 종목으로 유명했다.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파벌 논란,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 귀화 논란 등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 이슈가 많았던 탓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전후로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했다. 빙상을 둘러싼 잡음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온 것이다. 2018년 1월 ‘심석희 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같은 달 불거진 ‘노선영 출전 불가 논란’은 올림픽 기간 들어 ‘노선영 왕따’ 논란으로 번졌다. 여기에 ‘탱크(이승훈 밀어주기) 논란’까지 가세하며 빙상계는 혼란에 휩싸였다.
빙상인 B 씨는 “예견된 사태였다. 곪아 있던 게 터진 셈이다. 특정인이 권력을 독점한 가운데 대한빙상경기연맹(빙상연맹) 특유의 ‘비상식적 시스템’이 화를 불렀다”고 분석했다.
결국 ‘한국 빙상 대부’라 불리던 한국체대 전명규 교수가 2018년 4월 빙상연맹 부회장직을 내려놨다. 5월엔 문체부와 대한체육회가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감사 결과에 대한 후속 조치가 진행됐고, 빙상연맹은 9월 ‘대한체육회 관리단체’로 지정됐다.
빙상연맹의 관리단체 지정은 한국 체육계에 시사하는 의미는 크다. 빙상연맹은 동·하계 올림픽을 통틀어 가장 많은 메달을 배출한 종목단체인 까닭이다.
빙상인 B 씨는 “이제 국민들은 ‘결과’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는다. 여자 컬링 대표팀처럼 목표를 이뤄나가는 과정에 집중한다. 한국 빙상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과정의 중요성을 깨달을 때가 됐다”고 자성했다. 이어 “빙상연맹이 관리단체로 지정된 건 정말 큰 변화”라면서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연맹이 선수를 먼저 생각하는 조직으로 혁신해야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빙하기’가 도래한 한국 빙상은 이제 변화의 적기를 맞은 듯 보인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빙상인들의 바람은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통해 백년대계 준비하는 중국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펼쳐진 ‘2022 베이징에서 만나요’ 인수 공연 장면. 사진=일요신문 DB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최를 준비하는 중국의 움직임은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 중국 동계스포츠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중국은 벌써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이후를 바라보고 있다.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통해 과학적인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중국은 ‘향후 동계스포츠 시장을 이끌겠다’는 의지로 차기 동계올림픽을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평창올림픽이 끝난 뒤 중국 쇼트트랙 대표팀과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은 100명 가까운 대규모 상비군을 꾸렸다. 중국 빙상 상비군은 유럽·미국 등으로 전지훈련을 떠나 열띤 오디션을 치르고 있다. 중국 피겨스케이팅 대표팀은 2018년 8월 ‘김연아 스승’으로 유명한 브라이언 오서 코치를 선임했다. 피겨스케이팅 유망주 발굴 작업의 첫 삽을 뜨기 위해서다. 이처럼 중국은 동계 종목 인프라 확충뿐 아니라 ‘육성 시스템 개발’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중국의 방향성은 명확하다. 바로 ‘동계스포츠 백년대계를 책임질 시스템 구축’이다. 중국은 차근차근 ‘베이징 동계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한 마스터플랜을 가동 중이다. 평창 올림픽을 ‘1회성 잔치’로 끝낸 한국과 상반되는 모습이다. 평창올림픽 유치 당시 정부는 “동계스포츠 불모지 한국을 새로운 아시아 동계스포츠 허브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제시한 바 있다.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가 결정된 뒤로부터 9년이 지난 시점. 한국 정부와 체육계는 동계스포츠 활성화에 총력을 다했다. 국가 차원에서 엄청난 공력을 투입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공력은 ‘일회성 이벤트’로 산화한 듯하다. [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