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화해무드’ 속 높아지는 탈북민 불안감 “믿었던 하나센터마저… 누굴 믿어야 하나”
경북하나센터 직원 PC가 해킹당해 탈북민 997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사진=일요신문 DB
[일요신문]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한 탈북민. 이들의 마음이 새해부터 불안하다.
지난해 12월 28일 ‘통일부 소속 경북하나센터 직원 PC 1대가 해킹당하면서 탈북민 997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소식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경북하나센터는 경산시를 제외한 경상북도 22개 시·군에 거주하는 탈북민들의 한국사회 정착을 지원하는 기관이다. 본부는 경북 구미에 있다. 그런데 이 기관의 PC 1대가 악성코드에 감염됐다. 그러면서 경북 거주 탈북민 997명의 성명·생년월일·주소가 유출됐다.
탈북민들의 개인정보가 어디로 유출됐는지 여부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해킹의 목적 역시 알 수 없다. 통일부는 ‘탈북민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대한 수사를 경찰에 의뢰한 상태다.
탈북민들의 정착을 돕는 남북하나재단을 목표 삼은 해킹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탈북민 개인정보는 해커들의 ‘단골 타깃’이었다.
자유한국당 정양석 의원이 통일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 8월까지 남북하나재단에 대한 해킹 시도는 총 3546건이었다. 그 가운데 3085건이 탈북자들의 개인정보가 들어있는 시스템을 노렸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이 기간 전체 해킹 시도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사례(1670건)가 중국 IP를 통해 이뤄졌다는 점이다. 일부 사이버 보안 전문가들이 “해킹이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 이유다.
‘탈북민 개인정보 해킹’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바뀌자 탈북민들의 불안감은 고조되고 있다. 탈북민들이 느끼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무게감은 상당히 컸던 것으로 보인다.
# 탈북민들 개인정보 유출에 잠 못 드는 이유... “북에 있는 가족들 신변이 더 위험하다”
거리의 평양시민. 사진=일요신문 DB
1월 3일 ‘일요신문’은 경상북도에 거주하는 탈북민 신왕철 씨(가명, 46)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신 씨는 “탈북민이 개인정보 유출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자신의 신변 위협’을 느껴서라기보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 신변이 걱정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 씨는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탈북민이 많다. 유출된 개인정보가 북한으로 흘러 들어갈 경우 북한 당국이 탈북민의 가족을 해코지할 가능성이 크다. 탈북민은 가족이 위험에 처해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탈북민이 떠올리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바로 북한의 가족이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탈북민들은 이번 해킹을 북한의 소행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 신 씨는 “아직은 해킹의 주체가 북한이라고 확언하기 어렵다”면서도 “북한의 소행이 아니더라도 유출된 개인정보가 북한으로 전달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연말에 통일부가 ‘경북하나센터 탈북민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한 공식 입장을 밝힌 뒤 신 씨 전화기엔 불이 났다. 경북 지역에 거주하는 탈북민들의 연락이었다. 신 씨는 “사건이 터진 뒤 경북 각지에 흩어져 있는 탈북민들로부터 연락이 온다. ‘불안하다’는 말을 한다. 탈북민 모임에서도 ‘하나센터가 해킹을 당했는데 이제 누구를 신뢰하겠느냐’는 하소연이 터져 나왔다.”고 말했다.
하나센터가 해킹당한 건 탈북민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서울에 거주하는 탈북민 김광민 씨(가명, 44)는 “하나센터에 대한 탈북민들의 믿음은 상당히 큰 편이었다. 그랬기에 탈북민이 개인정보 유출 건으로 느낀 상실감은 더 컸다”고 밝혔다.
이어 김 씨는 “탈북민들 사이에선 ‘이젠 하나센터가 우리한테 신경을 덜 쓰나보다’란 이야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소외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경북뿐 아니라 전국에 있는 탈북민들이 동요하고 있다”며 탈북민 커뮤니티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정부는 오랜 기간 동안 탈북민·하나센터·정부 사이의 신뢰 구축에 힘썼다. 하지만 경북하나센터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터지면서 탈북민과 정부 사이의 ‘신뢰 프로세스’엔 균열 조짐이 보이고 있다.
# “재발 방지 대책만큼 중요한 건 탈북민을 안심시키는 것”
1월 3일 ‘일요신문’ 취재에 응한 탈북민 조경철 씨(가명)가 ‘경북하나센터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일요신문
‘경북하나센터 탈북민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후 통일부는 “여러 탈북민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개인정보 보호 강화와 피해 재발 방지에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진 상황이다. 탈북민의 불안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1월 3일 ‘일요신문’ 취재에 응한 탈북민 조경철 씨(가명, 51)는 “정부가 철저한 재발방지 대책을 통해 탈북민들과의 신뢰를 회복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조 씨는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이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물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불안한 탈북민들을 안심시킬 효과적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 씨는 “마침 연말에 탈북민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터졌다. 기해년을 맞이하는 탈북민의 마음엔 ‘두려움’과 ‘소외감’이 무겁게 자리했다. 하나센터에선 탈북민을 안심시키려 개개인에게 연락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탈북민들의 불안감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하나센터의 ’신규 사이버보안 시스템’은 2019년부터 본격 시행될 계획이다. 통일부는 지난해 전국 25개 하나센터 업무망 PC와 인터넷망 PC를 분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올해부터 새 시스템을 운용할 예정이다.
앞서의 탈북민 신왕철 씨(가명)는 “통일부가 탈북민 개인정보 보안 강화에 어떤 구체적인 대안을 구상하고 있는지 탈북민에게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그것이 탈북자를 안심시키는 첫 단추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대북 평화 정책’ 바라보는 탈북민의 묘한 긴장감… “북한에서 배운 대로 되고 있다” 2018년 9월 20일 제3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내외의 모습. 사진=일요신문DB 2018년 대한민국의 가장 큰 화두 가운데 하나는 ‘남북 화합’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세 차례 정상회담을 가지며 ‘남북 화해무드’를 조성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탈북민의 시선엔 걱정이 가득하다. 탈북민 김광민 씨(가명)는 남북 화해무드에 대해 “북한에서 배운 대로 되고 있다”는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김 씨는 “북한에서 태어나면 어렸을 때부터 수도 없이 외치는 구호가 있다. 바로 ‘적화통일’이다. 북한의 궁극적인 목표다. 남북이 어떤 관계를 수립하든 ‘적화통일’이란 북한의 목표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경철 씨(가명)는 “남북 화해무드가 본격화되면서 일반 국민이 느끼는 김정은과 북한 정권에 대한 반감이 많이 상쇄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북한이 원하는 대로 판이 깔리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조 씨는 “백두칭송위원회처럼 김정은을 찬양하는 단체가 버젓이 서울 한복판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라. 북한에서 한국 정부를 저렇게 찬양한다고 생각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만 해도 두렵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한국에선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조 씨는 “탈북민들은 본능적으로 남북 화해무드에 미묘한 긴장감을 느낀다. ‘혹시라도 탈북민이 남북 공공의 적이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원인이다. 경북하나센터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