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파렴치함은 더했다. 20여 년 전 겪은 일이다. 교도소 안에서 교도관들에 의해 한 사람이 맞아죽은 후 인근에 매장됐다. 형식적인 검사의 변사체 검시와 심장마비라는 의사의 사무적인 진단으로 한 힘없는 인간의 죽음은 은폐됐다.
밤에 끌려가 자루를 뒤집어쓰고 집단구타를 당한 후 죽은 걸 목격한 옆방의 재소자가 변호사인 내게 은밀히 고발했었다. 변호사들이 종종 맞닥뜨리는 상황이다. 그럴 때면 우선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다. 자칫하면 내부자 고발 비슷한 게 되어 밥벌이에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부닥쳤다. 양심이 쥐어뜯기는 것 같은 고통이 왔다. 악마들이 날뛰는 세상에 대항하기 위해서 법을 공부했는데 그 이상은 색이 바래 본래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느낌이었다. 법의 제단 뒤에서 벌어지는 그런 비밀을 폭로한 적이 있다. 업무상기밀누설과 명예훼손의 죄인으로 소환되어 온갖 수모를 당했다.
껍데기만 보는 법원은 내게 거액의 배상금을 판결하기도 했다. 공권력의 불법을 폭로한 대가는 더 혹독했다. 공권력은 유명언론을 통해 별 볼일 없는 변호사가 공명심에 들떠 헛소리를 한다며 점잖게 진실을 부인했다.
권력 측으로부터 변호사를 계속하겠느냐는 노골적인 협박이 오기도 했다. 당연한 진실을 믿게 한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 선동된 네티즌 수만 명으로부터 신상이 털리고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진실이 밝혀지는 데는 그 후 여러 해가 걸리기도 했다.
5년 후 생긴 의문사 진상위원회는 내가 폭로한 한 인간의 죽음을 의문사 1호로 공식적으로 판정했었다. 몸으로 겪어본 내부고발자와 유사한 경험이었다.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사무관의 폭로가 도덕성을 강조한 정권에게 목에 걸린 가시가 된 것 같다.
정부는 그의 주장을 전면부인하며 그를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정권 측은 관련증거를 은닉하고 기밀누설죄 등으로 구속해서 그의 입을 막고 싶을 것이다.
보도 자료를 작성한 사람들이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의 폭로동기가 순수하고 세상에 알린 게 진실이라면 동료들이 돌을 던지는 현실이 가장 마음 아플 것이다. 그래서 신재민 사무관은 자살을 시도했는지도 모른다. 내부고발자들이 통과해야 할 시련은 철저히 뭉개지는 것이다. 칭찬과 세상의 동조가 아니라 악랄한 음해와 모함이 그들을 짓밟을 것이다. 성경속의 세례요한도 왕의 잘못을 지적하다가 목이 잘린 채 쟁반위에 올라 하룻밤 연회에서 안주거리가 되기도 했다.
정의란 그렇게 악에게 일단 패배한다. 그러나 그 후에 밀려오는 엄청난 존재에 의해 다시 살아나는 게 역사의 법칙이다. 포도가 짓밟히지 않으면 포도주가 될 수 없다.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