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옳고 깨끗하며 생동하는 땅”
관악산 망해암 일몰. (사진제공=안양시)
안양여행은 이 정토를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관악산 망해암 일몰”
망해암(望海庵)은 암자에서 바다를 볼 수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날씨가 맑은 날에 시계(視界)가 탁 트인 관악산의 망해암에 올라 안양시가지와 서해 일몰을 감상하는 것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그 풍광이 빼어나다.
서해 너머로 붉게 물들어가고 갈 길을 재촉하는 도심의 차소리와 어우러져 회상 속에 빠져들게 하는 곳, 반짝임을 잃은 붉은 태양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재빨리 날아가는 산새와 함께 어둠이 서서히 다가오는 낮과 밤의 공존을 숙연하게 느끼게 해주는 곳, 낙조의 아름다움과 고즈넉함을 흠씬 느끼게 하는 광경이 연출되는 곳, 서해의 붉은 바다와 해가 진 후 어둠이 깔린 안양시내를 바라보는 야경은 다정한 사람과 손잡고 함께 거닐 산책로가 있는 망해암에서만 볼 수 있는 절경이다.
“삼막사 남녀근석”
삼막사(三幕寺)는 1300여년전 신라 문무왕(文武王) 17년(677)에 원효, 의상, 윤필 등 세 성인이 암자를 지어 정진한 것이 삼막사의 근본이며 삼성산(三聖山)이라는 이름도 이때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신기한 자연의 예술품인 남녀근석(男女根石. 경기도 민속문화재 제3호)은 삼막사 칠성각 앞에 있다. 풍화된 2개의 자연암석인데 그 모양이 남녀 성기(性器)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남녀근석이라고 부르고 있다. 남근과 여근의 거리는 2m이며 남근의 높이는 1.5m, 여근의 높이는 1.1m이다.
“평촌 중앙공원”
중앙공원은 11만 9843㎡의 공간에 각종 조경수와 편의시설을 비롯하여 다목적운동장 등 체육시설을 구비하고 있으며, 특히 4계절 테마(봄정원, 여름정원, 가을정원, 겨울정원)를 부여하여 조성한 공원으로 4계절에 맞게 식재된 다양한 종류의 꽃과 나무는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여 시민의 정서를 함양시키고 쾌적한 도시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도심 공원의 미래상을 조명하며 공원 내 수경시설은 207m의 계류와 다양한 형태의 분수시설(상징분수, 스크린분수, 터널분수, 바닥분수)로 어린이들의 흥미를 유발시킬 뿐 아니라 도심 속에 찌들었던 우리들의 마음을 한결 더 청량하게 해준다.
공원과 연계하여 시민들의 동적인 생활체육을 즐길 수 있는 인라인스케이트장, X-게임장, 차 없는 거리가 있다. 차 없는 거리는 토요일 오후 다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알뜰벼룩시장의 문화공간과 가족과 연인끼리 함께 즐길 수 있는 자전거도로 및 자신의 솜씨를 뽐내는 인라인매니아의 체육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우레탄으로 조성된 3300㎡의 전용 인라인스케이트장과 X-게임장은 가족 단위 및 청소년들의 생활체육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삼막천 만안교. (사진제공=안양시)
만안교(萬安橋)는 효성이 지극했던 조선 제22대 정조(1776~1800 재위)가 억울하게 참화를 당한 생부(生父)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을 참배하러 갈 때, 참배행렬이 편히 건너도록 축조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홍예석교(虹霓石橋)이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楊洲)에서 화산(華山)으로 이장한 후, 자주 능을 참배하며 부친의 원혼을 위로하였다 한다.
1795년(정조 19)에 당시 경기관찰사 서유방이 왕명을 받들어 3개월의 공역 끝에 길이 31.2m, 너비 8m에 7개의 갑문을 설치하고 그 위에 화강암 판석과 장대석(長臺石)을 깔아 축조하였다. 축조양식이 정교하여 조선 후기 대표적인 홍예석교로 평가받고 있다.
원래 위치는 남쪽 200m 지점의 안양천에 있었으나 국도확장사업으로 1980년 8월에 이곳 만안구 석수2동의 삼막천으로 이전하였다.
“수리산 성지”
수리산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신부가 된 최양업(토마스 1821~1861)의 아버지 최경환(프란치스코 1805~1839)이 부인 이성례(마리아 1800~1840)와 담배촌(안양9동)에 정착, 교우촌을 이루고 천주신앙을 전파하던 가톨릭 성지이다.
최경환은 배교(背敎)하라는 고문과 회유 속에서 신앙을 고수하며 모진 형벌을 받다가 그해 9월 12일 포청옥에서 장렬히 순교하였으며, 부인 이성례도 그 이듬해 1월 31일 용산 당고개에서 참수되었다. 최경환의 시신은 담배촌에 묻혔다가 명동성당으로 천묘 후 다시 양화진성당으로 옮겨졌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중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984년 5월 6일에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랐다.
수리산 성지는 2000년에 순례지로 지정되면서 새롭게 문을 연 성지이다. 수리산 성지는 가묘와 함께 예수님의 고행을 표현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초기 한국교회의 역사와 순교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수리산 성지. (사진제공=안양시)
안양예술공원은 안양유원지의 새로운 명칭으로 관악산과 삼성산 사이의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이 주변의 전통사찰 및 문화재와 조화를 이루어 과거 수도권의 휴양지로 각광을 받았으며, 안양의 명물로 이름을 떨쳤던 포도가 오가는 이의 미각을 돋우어 주던 곳이다.
인공폭포, 야외무대, 전시관을 비롯해 광장, 산책로, 조명시설 등을 설치하였으며, 공원조성 사업과 연계하여 국제적 수준의 제1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를 추진 전망대, 1평정보센터, 하늘 다락방, 물고기눈물분수 등 유원지 곳곳에 국내외 유명작가의 예술작품 52점을 설치되어 있다.
주변으로는 안양사, 염불암 등 전통사찰과 보물 제4호인 중초사지당간지주를 비롯해 석수동 마애종(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2호), 안양사 귀부(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3호), 중초사지 3층 석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4호) 등이 있어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병목안 산림욕장 석탑”
병목안은 마을의 지세가 병목처럼 마을초입은 좁으나 마을에 들어서면 골이 깊고 넓다고 하여 예로부터 불리워진 안양9동의 마을 명칭이다. 이곳은 계곡이 길고 경치가 수려하며 맑은 물이 흘러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병목안을 거슬러 올라가다 왼편에 보이는 산이 수리산으로 해발 489m로 높지는 않지만 빼어난 산세를 지니고 있으며, ×자 형태로 뻗은 능선을 따라 여러 산행코스를 이루고 있다.
수리산에는 안양시에서 잘 꾸며 놓은 산림욕장이 있다. 시에서 설치한 제 1·2·3전망대는 장소별로 각기 조망이 달라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특히, 제1·2전망대의 목재전망데크, 시민들의 건강을 위한 발지압장, 그리고 연장 25m의 출렁다리와 임간교실 등이 지난해 6월 설치됐다.
병목안을 상징해 주면서도 수리산을 상징하는 징표이기도 한 병모양의 석탑! 양 쪽에 조화롭게 병모양으로 쌓아 올린 탑은 주변의 쓸모없는 돌무더기들을 이용해서 자연의 조화와 인공의 미를 살린 수리산 산림욕장의 명물이며 이정표이기도 하다. 석탑이 상징하듯 백영약수터 오르막길에는 돌무더기 곳곳마다 정성을 쌓아 올린 돌탑들이 무수히 쌓여있다.
안양예술공원. (사진제공=안양시)
조선조 제22대 정조 임금께서 1795년 시흥현과 과천현 경계지점에 사도세자인 부왕의 묘에 능행을 위해 만안교를 놓으신 후 화산능행의 노정을 과천~인덕원~수원에서 시흥~안양~수원의 노정으로 바꾸면서 유래정 뒤(안양1동 674-67)에 안양 행궁을 짓고 휴식을 취하기 시작하자 주변에 민가가 생기기 시작했다.
재래상권인 안양시장이 1926년 이곳에 개설되어 상권의 기틀이 다져졌으며 1980년대에는 먹거리, 옷가게, 유흥주점이 주류를 이루었던 곳이었으나, 1990년대 들어 젊은 취향의 캐쥬얼 스타일의 의류와 내셔널 브랜드들이 대거 입점하였다.
2000년 이후 컴퓨터, 통신, 시네마 등 쇼핑과 문화가 잘 융화된 거리로 수도권에서 손꼽히는 상권을 형성하여 안양최대의 번화가로 부상하였다. 안양의 금융, 교통, 상권을 태동시킨 안양1번가는 지역 발전을 일으킨 상징적 의미에서 안양1번가로 부르게 되었고, 시에서는 1998년 상가 주변길을 ‘안양1번가 길’로 명칭을 부여했다.
1996년부터 매년 10월에 젊음의 도시·패션의거리 안양이라는 슬로건 아래 일번가 거리 대축제가 열려 시민들에게 볼거리 제공과 함께 자유와 멋과 낭만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에필로그”
이름부터 극락이요, 정토인 안양은 종교를 넘어 영원한 구원의 믿음을 가진 이들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현실의 ‘유토피아’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람이 모여들었고 그들의 꿈이 다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도 안양은 새로운 변화,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의 꿈, 그 맨 앞에 서 있다.
이상과 현실, 꿈과 삶 속에서 치열한 안양에서 세상 유일한 극락을, 구원의 믿음을 만나봄이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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