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마크 수익률보다 낮아…“감놔라 배 놔라 참견하는 나라서 수익률 제고 어려워”
지난해 8월 열린 국민연금 제도개선 방향에 관한 공청회에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관계자들이 지급보장 명문화 등을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연금납부액을 늘리는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납부액 인상을 검토하기 전에 수익률을 올릴 방안부터 찾아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이하 본부) 관계자는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이유에 대해 “지난해 국내 주식이 크게 하락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코스피는 2500선에서 2000선까지 수직 하락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국내 주식 부문 수익률이 -16.57%를 기록했다. 반면 해외주식은 1.64% 수익을 냈다.
본부 해명에 대해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민연금 수익률 하락에 국내 주식 상황이 영향을 미친 것은 맞다. 그런데 국민연금 수익률은 벤치마크(투자 성과를 평가할 때 기준이 되는 지표) 수익률보다 낮았다. 결국 기금운용을 잘못했다는 것 아닌가. 그런 식으로 핑계를 대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학과 교수는 “예를 들어 코스피가 20% 하락했다면 국민연금 수익률도 그 정도만 하락해야 된다. 투자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코스피 하락률보다 더 큰 폭으로 수익률을 하락시킨 것은 분명한 잘못”이라고 했다.
국민연금 한 관계자는 “국내 주식이 하락할 것이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다. 그렇다고 국민연금이 앞장서서 국내 주식을 팔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국민연금이 주식을 내다팔면 국내 증시 하락을 더 부채질하게 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전현직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최근 국민연금의 공익적 역할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수익률 악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진선미 여성가족부(여가부) 장관이 여성 임원 비율이 높은 곳에 국민연금을 투자하자고 발언한 것을 보고 황당했다. 국민연금은 국민 노후자금이다. 이익을 많이 낼 수 있는 회사에 투자하는 것이 기본원칙이다. 수익을 포기하고 여성 임원 많다고 투자하라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물론 기금운용은 독립되어 있다. 여가부 장관은 물론이고 대통령이 개입하려 해도 쉽지 않다. 그래도 현 정부 들어 국민연금이 공적인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분위기가 팽배해 투자활동이 위축되는 것은 사실이다. 수익만 생각하고 투자해야 되는데 제약이 많다. 일례로 지난해 국민연금이 전범기업에 투자하고 있다고 해서 문제가 됐다. 그런 정치적인 부분까지 다 따져가며 투자하면 제대로 수익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진 장관 발언은 아이디어 차원의 깜짝 발언이 아니었다. 여가부는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새해 업무보고에서 여성 임원이 많은 기업에 국민연금 투자를 늘리겠다는 안을 포함시켰다. 여가부는 국민연금 운용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도 해당 사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찬우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등 국민연금을 이용해 대기업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런 움직임이 수익률 하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지는 않지만 일부분 영향은 있을 수 있다. 기업이 이익을 창출해야 증시 상승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이 전 본부장은 “홍완선 본부장 사태(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영본부장이 삼성합병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로 처벌을 받은 사건) 이후 본부 내에서 주도적으로 일을 하려 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 혹시 책임질 일은 하지 않겠다는 거다. 그런 분위기를 깨지 못하면 수익률 높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최광 전 국민연금 이사장도 현재 기금 운용에 우려를 나타냈다. 최 전 이사장은 “국내 주식이 폭락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갈공명이 와도 안 되는 것”이라면서도 “여성임원 비율이 높은 곳에 국민연금을 투자하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수익률을 높일 수 있겠냐”고 했다.
최 전 이사장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다고 하는데 해외에서 도입된 경우는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 투자자들이 요구한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나라들은 기금 운용이 완벽하게 독립되어 있다. 우리같이 국민연금에 배 놔라, 감 놔라 참견하는 나라에서 도입하면 수익률 제고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가능성 크다”면서 “기업 오너에게 잘못이 있으면 기존 법으로 처벌하면 되는데 왜 국민연금을 이용해 응징을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재계에서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우려를 나타냈지만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23일 “대기업 대주주 중대탈법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하겠다”고 못을 박았다.
최 전 이사장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전주 이전도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최 전 이사장은 “본부 전주 이전이 수익률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영향은 있다”면서 “기금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잘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국민들이 사안(본부 전주 이전)을 너무 가볍게 본 것”이라고 했다.
본부 퇴사자수는 2014년 9명, 2015년 10명이었으나 전주 이전이 결정된 2016년 30명으로 급증했다. 2017년에도 27명이 본부를 떠났다. 본부 전주 이전으로 최신 투자 정보를 얻기 어려워지고 인재들이 떠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기금운용본부장 자리가 15개월이나 공석이었던 것도 전주 이전과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유능한 인재들이 지방생활에 거부감을 나타내 영입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본부 서울 재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호남이 지역기반인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내에서도 나온다. 최운열 민주당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연금 수익률에 근본적인 변화를 주려면 우수한 인력들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지역 균형 발전도 좋지만 본부가 업계 최고 전문가를 데리고 일을 하려면 서울에 자리 잡아야 한다. 본부 서울 재이전이라는 전향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전 이사장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임기가 3년 정도로 짧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 전 이사장은 “미국에서 대법관은 종신이고, 감사원장은 임기가 15년이다. 잘하는 사람은 계속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해외에서는 기금운용 성과를 내면 엄청난 인센티브가 제공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것도 없다”고 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본부 관계자는 “국내 주식 하락으로 인한 수익률 악화라는 기존 입장 외에 더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