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초상권 교묘히 피하는 ‘얌체’ 기업들…문제는 권리 인정 여부
CJ헬스케어의 제품 컨디션이 JTBC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캐릭터와 대사를 패러디한 광고를 게재했다. 사진=컨디션 공식 인스타그램
지난해 10월, 1990년대 인기 시트콤인 ‘순풍산부인과’에 출연했던 개그우먼 박미선은 이런 사례를 직접 지적하고 나서기도 했다. ‘순풍산부인과’에서 박미선의 대사 가운데 “○○는 내가 할게. XX는 누가 할래?”라는 대사가 갑작스럽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인기를 끌면서 각종 SNS 홍보물에 그의 캐리커처와 대사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박미선은 “유행인 건 알겠는데 (홍보물 속 사진이) 누가 봐도 박미선 같은데, 캐리커처는 초상권에 해당 안 된다고 너무들 갖다 쓰셔서... (중략) 상업적 목적으로 이렇게 쓰는 건 아닌 거 같은데, 그쵸?”라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박미선의 사례 역시 현재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사용되고 있는 ‘스카이캐슬’의 유행어와 캐릭터 캐리커처의 상업적 이용과 유사하다.
이에 대해 연예계에서는 ‘퍼블리시티권(Right of Publicity, 성명이나 초상, 서명 등이 갖는 재산적 가치를 독점적,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권리)’를 내세워 업체들과의 소송을 몇 차례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례에서 재판부는 이들이 주장하는 퍼블리시티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내법상 퍼블리시티권에 대해 인정하고 있지 않으며, 법률이 인정하지 않는 권리에 대해서는 논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 사례에 한해서는 유명인의 성명이나 초상 등 ‘자기동일성의 상업적 사용’에 대한 퍼블리시티권이 인정돼 유명인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사례들이 유명인 ‘본인’의 퍼블리시티권 침해에 한정된다는 점이다. 앞선 박미선이나 스카이캐슬의 사례는 유명인 그 자체가 아니라 극을 위해 분장한 캐릭터의 모습이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됐다. 이 때문에 퍼블리시티권의 국내 인정 여부를 떠나 유명인이 직접 자기동일성을 전제로 하는 권리 침해에 대해 주장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신 극중 캐릭터에 대한 저작권을 가지는 작가, 연출가 등 제작사 측에서는 적극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단순한 ‘가능성’으로만 남는다. 이에 대해 실제로 권리를 주장해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례가 거의 없고, 있더라도 재판부가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캐릭터 분장이나 캐리커처 외에 대사만 따와 광고에 이용한 사례도 있다. 사진=남순남 순대국 인스타그램
이에 대해 장천 변호사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단순한 한 문장 등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는 창작성 있는 표현이라고 볼 수 없고, 일상생활이나 다른 작품에서도 유사한 표현들이 자주 사용될 경우 저작성이 부인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천만 영화로 유명한 ‘왕의 남자’에서 명대사로 꼽힌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라는 대사는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 윤영선 교수가 쓴 희곡 ‘키스’의 대사를 표절했다는 논란이 불거졌으나 이런 이유로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판결을 받았다.
드라마나 영화의 대사는 아니지만 노래 가사를 이용한 광고물 제작이 저작권법 위반 소송에 오른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저작권법이 인정되지 않았다. 2012년 삼양식품의 ‘나가사키 짬뽕’ 광고의 경우다.
삼양식품은 당시 걸그룹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라는 노래를 이용해 ‘내가 제일 잘 나가사키 짬뽕’이라는 광고문구로 홍보를 진행했다. 이에 해당 곡을 만든 YG 프로듀서 테디가 삼양식품을 상대로 광고사용게재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기각됐다. 이 역시 “보호할 만한 독창적인 표현이 포함됐거나 독립된 사상 또는 감정을 창작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스카이캐슬’의 대사를 광고물에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저작성이 부인되므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남은 것은 캐릭터성과 관련된 문제다. 현행법에서는 실제 영화나 드라마 속 캐릭터의 생김새, 동작 등 시각적 표현에서 제작자의 창조적 개성이 드러나 있으면 원 저작물과는 별개로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저작물로 인정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로 이렇게 인정되는 경우가 매우 적다는 것이다. ‘스카이캐슬’ 김주영의 경우는 올백 머리, 올블랙 의상, 딱딱하고 건조한 말투가 ‘캐릭터성’으로 파악되지만, 이는 일본 드라마 ‘여왕의 교실’에서 배우 아마미 유키가 맡은 캐릭터의 모습과 흡사하다. 이런 이유로 김주영으로 분장하거나 캐리커처를 사용해 저작권법 위반으로 소송을 당하더라도 ‘창조적 개성’ 여부에서 법원의 판단이 갈릴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다만 이에 대해선 저작권 침해 외에 민법상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 소송은 제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앞선 장 변호사는 “업체가 방송사나 제작사 허락 없이 드라마나 영화의 캐릭터를 광고에 사용하는 것은 제품을 접하는 수요자들로 하여금 그 드라마를 직접적으로 연상하게 하고, 그 연상으로부터 생겨나는 수요자들의 제품 구매 욕구에 편승해 제품을 제조·판매했음이 명백하다”며 “이런 식으로 캐릭터를 모방해 제품에 이용한 업체들의 행위는 상도덕이나 공정한 경쟁질서에 반하는 부정한 경쟁행위로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고자라니” “4딸라” 명대사 제조기 ‘야인시대’ 패러디 사라진 속사정 2000년대 초반 전국민적 인기를 끌었던 SBS 드라마 ‘야인시대’의 패러디 영상이 지난해 12월 중순을 기점으로 하나씩 사라지고 있다. SBS I&M의 삭제 요청을 받은 유튜브가 영상 삭제와 송출 차단을 진행하고 있는 탓이다. 일부 제작자들의 항의로 극소수의 영상이 다시 재송출되고 있긴 하지만, 저작권을 가진 SBS I&M의 재차 삭제 요구로 결국 완전히 삭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 등장한 심영은 “고자라니”라는 대사로 인터넷에서 합성 패러디 영상 열풍을 일으켰다. 사진=SBS 제공 야인시대 패러디로 가장 인기를 끌었던 것은 심영이다. 극중에서는 “내가 고자라니”라는 대사로 짧게 지나갔을 뿐이지만, 편집을 통해 만들어진 패러디 영상은 그 특유의 중독성으로 온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방송 후 1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야인시대 세대’가 아닌 어린 아이들까지 ‘심영’과 그의 대사 “내가 고자라니”라는 말은 알 수 있을 정도의 파급력을 가졌다. 김두한의 명대사 “4 딸라” 역시 패러디로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대사는 김두한이 6·25 전쟁 당시 미군의 군수물자를 운반하던 노동자들의 임금을 1달러에서 4달러로 올려줄 것을 요구하는 장면에서 나왔다. “사 딸라”라는 특이한 발음과 억양, 김두한을 맡은 배우 김영철의 카리스마가 더해지면서 이 역시 ‘합필 요소’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이런 합성 패러디 영상이 인기를 끌면서 드라마 자체가 아닌 패러디 영상으로 팬들이 유입되는 현상을 낳기도 했다. 배우 김영철의 경우는 지난해 7월 KBS ‘김영철의 동네한바퀴’에서 중학생 무리를 만났다가 이들로부터 인사 대신 “4 딸라”라는 외침을 들었다. 2002년~2003년에 방영한 드라마인 만큼 어린 학생들이 그를 ‘4 딸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패러디 덕으로 보인다. 김영철은 이 인기를 바탕으로 버거킹 CF를 찍은 바 있다. SBS의 영상 삭제에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왔지만 반응은 미미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그러나 SBS I&M 측은 “갑자기 제재에 나선 것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SBS I&M은 “원칙적으로 SBS에서 제공하는 모든 사진이나 영상 등은 복제, 가공 등이 금지돼 있다. 이전에도 단순히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영상 캡처 등에 대해서도 저작권법 위반으로 삭제 요청을 한 바 있다”라며 “2차 창작 역시 이 범위에 속하며 이는 비영리목적으로 사용한 영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유튜브 뿐 아니라 블로그든 커뮤니티든 이러한 저작권법 위반에 대해선 철저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SBS 측의 단호한 대처에 따라 더 이상 인터넷에서 ‘야인시대’ 패러디물을 볼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패러디 영상을 사랑하는 일부 네티즌들이 SBS를 규탄하는 청와대 청원까지 올렸지만 3000명도 채우지 못하고 종료된 바 있다. 김태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