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 캐슬에는 누가 살까? 단적으로 말하면 이웃집 아이가 하버드대 가짜 대학생이었음이 밝혀지자 은근히 좋아하는 이웃들이 산다. 서울 의대를 보내기 위해 수십억의 코디를 쓰는 부모, 학력고사 성적이 전국 수석이었음을 평생의 훈장으로 달고 다니며 병원장을 해보겠다고 기를 쓰는 의사, 가난하고 무능했던 부모가 부끄러워 과거를 ‘세탁’하고는 그 세탁에 걸맞게 남편을 출세시키고 아이의 서울의대 입학 프로젝트를 짜는 대단한 주부, 방음장치가 된 스터디 룸을 설치해놓고 검사가 범인 취조하듯 공부! 공부! 하는, 검사 출신의 로스쿨 교수가 산다.
그들의 캐슬은 지옥인데 그들만 모른다. 아니 오히려 캐슬에 사는 것이 최고의 자부심이다. 입시 지옥에서 시작한 그 지옥은 아이들을 성적으로 줄을 세우고, 어른들은 돈과 학벌 그리고 지위로 줄을 세운다.
끔찍한 것은 그 드라마가 대치동의 현실을 그대로 베낀 거라는 것이 아닌가. 진짜 그럴까. 아니, 대치동만 그럴까. 규모는 좀 다르겠지만 대학, 대학, 하는 현실은 전국적이다. 그 드라마는 명문대학을 나와야 신분 유지 혹은 상승을 할 수 있다고 믿는 학력 콤플렉스 사회의 자화상인 거다.
대치동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친구는 드라마적 요소를 빼면 스카이 캐슬은 현실이야기라고 했다. 중학교 때부터 학원에서 해주는 코디를 따라 아이를 학원에 보내면 매달 수백만 원은 그냥 나간단다. 아파트는 낡고 공부에 지쳐 자기표정이 없어진 아이를 뒷바라지하는 삶은 고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치동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서 ‘캐슬’이라 한 것 같다고 했다.
중학생 시절, 고교 시절은 우리들의 사춘기다. 부모의 방식으로 살았어도 그때가 되면 ‘나’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시절이다. 그 시절에 자녀 교육에 열성적인 돈 많고 힘 있는 부모를 만나 학원가를 돌며 보낸 것이 과연 축복일까?
가짜 하버드생이었음이 밝혀지자 질책하는 아버지를 향해 세리가 던진 절규의 말이 오래 남는다. 아빠가 원하는 대로 살아주기 위해 얼마나 초라해졌는지 아느냐고, 그냥 ‘차세리’ 가지고는 아빠가 만족을 못하지 않았느냐고. 이제 아빠 플랜대로 살기 싫다고.
언제나 사랑이 문제다. 왜냐하면 그 열정에 취해 경계구분이 안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제대로 살게 하고 싶은 부모의 사랑이 날마다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면 그것은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문제다. 사랑과 집착을 구분하지 못하는.
건강한 아이는 부모의 플랜대로 살지 않는다. 부모의 기대를 끊어내지 못한 채 어른이 되면 내면아이가 마음속에 상처 입은 채로 웅크리고 있어 늘 화가 나있듯이 사랑과 집착을 구분하는 못하는 부모는 또 그것으로 대가를 치를 것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