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30년, 20세기형 마케팅에 머물러 있다”
2018년 7월 열린 K리그 발전위원회 3차 회의.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일요신문]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모여 프로축구 문제인식과 발전방안을 내기 위해 지난해 4월 발족한 ‘K리그 발전위원회’가 출범 2년차를 맞았다. 발전위원회는 한국프로축구연맹 자문기구로서 K리그 발전에 뜻을 모아 정책을 검토하고 연구해왔다. 실제 이들의 회의 결과를 연맹이 실행에 옮기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에 ‘일요신문’은 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정윤수 성공회대학원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학 교수이면서 스포츠칼럼리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는 정 교수는 어린 시절 대한민국의 많은 이들이 그랬든 공차기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그는 “축구에 대한 동경은 누구나 있지 않나. 어릴 때부터 동네 유리창 다 깨고 그랬었다”며 웃었다.
축구와 관련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게 된 계기는 2002년 월드컵이었다. 세계 최대 축구 이벤트를 앞두고 당시 국내에서는 ‘대표팀의 성적’에 많은 관심이 쏠렸지만 그는 월드컵을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세계로 뻗어나가자’, ‘16강 진출 달성하자’는 이야기가 난무했다”면서 “사실 해외에서는 월드컵을 바라보는 시각이 굉장히 다양하다. 한국의 프로축구 문화, 선수들이 성장하는 과정 등에 관심을 가졌다. 월드컵과 축구를 좀 더 문화사회학적으로 폭넓게 바라보려는 시도를 했고 그 결과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회의에 참석한 정윤수 교수.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이전에도 K리그와의 인연은 있었다. 과거 K리그 발전을 논하는 간담회 형식의 자리에 몇 차례 참석한 경험이 있다. 그는 “간담회에 한 두 차례 나섰던 적이 있다”면서 “이번 발전위원회는 성격이 좀 다르다. 차 한 잔 마시면서 두런두런 얘기하는 식이 아니란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과거 자리보다 더 책임성도 있고 내부 자료가 충분히 공유되기도 했다.
그는 지난 1년간의 활동을 떠올리며 “두 달 간격으로 회의가 진행됐고 매번 의제가 달랐다”면서 “밖에서 그저 논평자로 볼 때는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됐다. 연맹에 계시는 분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 자세한 정보들을 보니 K리그를 폭넓게 보고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1년간 몸담아 온 발전위원회의 아쉬운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꺼냈다. 정 교수는 “발전위원회가 상당한 책임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의견을 제시하는 정도다. 발전위원들이 좀 더 의무감을 갖고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개별 위원들이 테마를 갖고 심화 시켜서 회의에서 의견을 나눌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책임감을 언급한 정 교수에게 발전위원회에 일종의 집행 권한도 부여되면 어떨지 되물었다. 그는 이에 대해서는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그건 좀 다른 얘기다. 정부를 예로 들자면 발전위원회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서 의견을 내는 것이다. 정책의 집행은 각 부처와 공무원들이 아는 것”이라면서 “다만 그 집행을 잘 할 수 있도록 발전위원회가 장기적 과제를 좀 더 의무적으로 가지는 방향이 좋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용수 위원은 ‘대표팀 전력강화와 프로축구의 관계’, 이영표 위원은 ‘유소년 리그’, 저 같은 경우는 ‘각 지역 프랜차이즈 문화 구축을 위한 마케팅’을 맡는 식”이라고 덧붙였다.
연맹은 위원회 인원 구성과 관련해 ‘다양한 분야 전문가의 목소리로 새로운 접근방식을 얻고자 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일부에선 위원장을 맡은 허정무 연맹 부총재를 비롯해 이용수 교수(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나 국가대표 출신 이영표 등의 인물에 대해 ‘축구계 내부인사가 아니냐’는 지적이 따르기도 했다. 정 교수는 “올해부터는 연맹이 더욱 책임성 있는 그룹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멤버 강화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팬 친화적 마케팅으로 지난해 ‘팬 프렌들리 클럽(Fan-friendly Club)’에 선정된 울산 현대.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K리그는 20세기에 형성돼 30년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여전히 22개의 팀 중 절반 가량은 기업의 홍보 수단이다. 홍보 마케팅 차원에서 운영되고 있다. 21세기 들어 시·도민 구단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지자체장의 교체에 따라 구단 인사들도 교체된다는 것이다. 많은 구단들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독립된 프로 구단으로서 장기적 비전이 필요하다. 그 비전 아래서 선수들의 경기력 강화, 마케팅 발전 등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기업구단은 기업 마케팅 수단, 시·도민구단은 긴축운영만 잘 하면 그냥 ‘굴러가는’ 상황이다. 유럽까지 갈 것도 없고 가까운 일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5~10년 이상을 바라보고 현재는 C의 상태지만 3~4년 뒤에는 B, 5~6년 뒤에는 A의 상태로 나아가길 바란다. 여기서 A는 기업이나 지자체로부터 운영의 독립성을 가지고 수익을 창출하고 지역 프랜차이즈 문화로 자리 잡는 것이다”
자연스레 이야기는 각 구단의 지역밀착 이슈로 이어졌다. 이는 정 교수가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는 “지역 주민들의 관심이야말로 프로축구가 프로인 까닭이다”라며 “그 지역 역사와 정체성을 담고 특징에 맞게 운영을 이어나가야 한다. 구단이 주민과 함께 울고 웃는 상태가 최고의 수준이라고 본다. 관중 증대는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국내외 도시들의 사례를 들며 자신이 그리는 이상적인 그림을 설명했다. 국내 리그, 스포츠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힌트를 제시하며 리그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유럽 여행을 갈 때 리버풀, 맨체스터, 바르셀로나에 가면 그 지역 경기장에 한 번씩 들러보지 않나. 축구에 큰 관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남의 나라 팀인데도. 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강원도 강릉에 바다를 보러 가도 경기장에 가지는 않는다. 국내 다른 어느 도시를 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가능성은 있다. 강릉에는 농상전이라는 유명한 고교 축구 경기가 있는데 과거엔 지역 주민들이 ‘가게 문 닫고 보러 간다’고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이런 사례로 힌트를 얻을 필요가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