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심 자산으로 정리한 방위산업이 걸림돌”
산업은행은 현대중공업과 조건부 인수계약을 발표한 지난 1월 31일, 삼성중공업에도 대우조선 인수 제안서를 발송했다. 인수전에 뛰어들 기회가 삼성중공업에도 주어졌고,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으로 기울어졌던 판세를 뒤집을 가능성이 아예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삼성중공업은 회신 기한인 28일을 한참 앞둔 지난 11일, 일찌감치 인수전 불참 의사를 산업은행에 통보했다.
산업은행은 12일 “삼성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제안 요청에 대해 11일자로 참여의사가 없음을 공식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사진=고성준 기자
하지만 그렇다고 현대중공업 쪽 사정이 여유로운 건 아니다. 현대중공업도 수년간 일손을 놓아야할 정도로 심각했던 ‘조선업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현대중공업지주가 지난해 매출 27조 2636억 원, 영업이익 8686억 원을 기록하면서 2017년보다 각각 90.7%, 3% 늘었지만 이는 계열사인 현대오일뱅크와 현대일렉트릭의 실적 개선 비중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매출액 13조 1198억 원으로 2017년보다 15.2% 줄었고 영업적자도 4736억 원을 기록했다.
현대중공업도 대우조선을 선뜻 품을만한 여력을 갖춘 건 아니라는 얘기다. 여기에 인수과정에서 직접적인 자금투입 규모만 약 6500억 원으로 추정되는 등, 향후 대규모 재무부담도 겹쳐 있어 업계 일각에선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를 두고 오히려 “현대가 총대를 맸다”는 시각도 나온다.
# 걸림돌은 ‘방위산업’
결국 대우조선의 새 주인을 가른 건 회사 덩치나 실적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는 셈인데, 대표적으로 꼽히는 게 대우조선의 ‘방위산업’이다. 대우조선해양은 대우조선은 해양 군수물자인 대형 함정, 잠수함 등을 생산하는 방위사업법상 주요 방산업체다. 지난 1987년 해군으로부터 최초로 잠수함을 수주한 이래로 최근까지 방산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대우조선 내부에서도 방산 부문은 꾸준히 연간 1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알짜 사업부로 꼽힌다.
대우조선해양의 알짜 사업으로 꼽히는 방산은 그동안 대우조선 매각의 걸림돌로 평가돼 왔다. 사진=박정훈 기자
여기서 가장 큰 걸림돌이 된 게 대우조선의 방산이었다. 일단 방산업체는 국내 방산 기술력 유출과 보안문제가 걸려있어 해외 매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2016년에도 외국기업이나 사모펀드 등에 대우조선 매각하는 방안은 비중 있게 다뤄지지 않았다.
대우조선이 규모가 큰 만큼 부문별로 쪼개 복수의 국내 회사에 매각하는 방안도 가능한 시나리오에 올랐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일반상선과 군함을 만드는 공정은 75~80%가 같다. 방산만 따로 떼려면 공장을 새로 지어야 하는데 추가 비용만 약 1000억 원 이상이 필요하고, 분리하는 기간도 2년이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방산은 대우조선의 캐시카우여서 이를 떼어내면 나머지 사업부문 부분을 팔기가 어려워진다. 남은 방안은 결국 통매각 뿐인 셈이다.
삼성중공업은 대우조선과 함께 거제에 위치해 있고, 하도급업체도 일부 겹치는 만큼 합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이 줄어든다. 하지만 현재 삼성중공업은 방위산업에서 손을 뗀 상태다. 삼성그룹은 2015년 ‘삼성-한화 빅딜’로 불리는 대규모 매각작업을 통해 방산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특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대신해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일선에 뛰어들면서 수년간 그룹 사업구조 개편을 단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방산을 비핵심 자산으로 분류해 정리한 만큼 이제 와서 이를 다시 매입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반면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과 같은 주요 방산업체다. 대형함정과 잠수함 등 사업부문도 겹친다. 한 대형방산업체 고위 관계자는 “방위산업은 특수성이 있다. 경쟁 체제보다는 한 업체가 한 분야에 특화된 전문성을 가지는 게 더 유리하다”며 “KAI도 과거 대우중공업, 삼성항공산업, 현대우주항공 등 3사 항공 관련 부문이 통합돼 설립됐다. 지금은 국내 항공산업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한국형전투기 사업도 수행 중이다. 방위산업 측면에서 보면 삼성중공업이 다시 방산을 시작해 현대중공업과 경쟁하는 것 보다 현대중공업-대우조선이 합쳐 ‘해양판 KAI’가 되는 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산업은행이 현대중공업과 인수 협의를 공식화하면서 ‘효율’을 강조했고, 대우조선을 이야기할 때 방산을 빼고 얘기할 수 없는 만큼 현대중공업이 새 주인으로 선택되는데 방산이 큰 비중을 차지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현대중공업은 울산에 위치해 있어 향후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대우조선 안팎에선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의 알짜 사업부만 따로 떼어 가져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후보자로 확정됨에 따라 예정된 본계약 체결을 위한 필요한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사진=이종현 기자
애초 인수 형태가 삼성중공업에 맞지 않았다는 시각도 있다. 엄밀히 따지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M&A는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을 인수하는 형태는 아니다. 현대중공업그룹이 산은과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을 수평적 형태로 지배하는 구조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은 ‘한 지붕 두 가족’이 되는 셈이다.
이 같은 방식은 사실상 처음부터 현대중공업을 인수 유력 후보로 염두에 두고 마련된 측면이 크다. 삼성중공업이 대우조선을 품으려면 중간 지주사를 만들어야하는데, 이 작업이 쉽지 않아서다. 특히 삼성그룹의 삼성중공업 지분이 22% 가량이라 주식 교환 방식을 취할 경우 대우조선의 지분 55%가량을 가진 산업은행이 1대 주주로 오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삼성그룹은 삼성중공업의 경영권을 내놔야하고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의 ‘새 주인 찾기’와 반대로 두 개의 조선업체를 떠안게 되는 모양새가 된다.
이번 인수 제안에 대해 삼성은 조선업 보다는 그룹 차원에서 검토했다. 실제 검토 작업을 주도한 건 지금은 사라진 삼성그룹의 미래전략실 격인 EPC(설계·조달·시공) TF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번 인수 제안은 삼성중공업이 아닌 삼성그룹의 고민이었다“며 “하지만 애초에 맞지 않는 제안을 받은 만큼 결정도 빨랐던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현대중공업과 인수 협의를 해왔다. 특히 주식 교환 형태로 거래하는데 외부에 정보가 새지 않은 건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협의가 긴밀했던 것이다. 삼성그룹이라도 산업은행이 다른 회사와 시간을 두고 긴밀하게 협의한 결과물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한 달 만에 그보다 좋은 조건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건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인수에 참여하는 것보다 지금 가지고 있는 강점을 살려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중공업이 인수전에 불참을 선언함에 따라 산업은행은 오는 3월 초 이사회에서 대우조선 매각 승인을 받는다. 이후 현대중공업과 본계약을 맺고 확인 실사 등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다. 이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을 계열사로 두는 ‘조선통합법인’에 대한 유상증자와 현물출자 등을 거쳐 계약을 마칠 예정이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