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녹지병원, ‘외국인 전용’ 조건부 허가받았지만 개원 안해…비영리병원 전환 등 대안도 거부
제주 녹지국제병원 전경.
[일요신문] 국내 첫 외국계 영리병원(투자개방형 병원)으로 개원 허가를 받은 제주 녹지국제병원이 사실상 허가 취소 수순을 밟게 됐다.
조건부 개설 허가를 내준 지 3개월 만인 지난 4일 제주특별자치도가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개원 허가 취소 절차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녹지국제병원에 대해 외국인 전용 영리병원으로 조건부 개설 허가를 승인했지만 녹지국제병원 측은 법정시한 마감일인 이날까지 개원하지 않았다.
제주도는 녹지국제병원이 현행 의료법이 정한 개원 기한(3월 4일)을 지키지 않아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 취소 전 청문’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지난 4일 녹지국제병원 측에 통보했다.
현행 의료법 제64조에는 ‘개설 신고나 개설 허가를 한 날로부터 3개월(90일) 이내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를 시작하지 않으면 개설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녹지그룹 측이 청문절차에 나서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청문절차는 법에 따라 진행된다.
제주도는 대학교수나 변호사, 공인회계사, 전직 청문 담당 공무원 중 1명을 청문주재관으로 선정해 청문을 진행할 계획이다.
우선 녹지국제병원의 사업자인 녹지그룹 측의 입장을 듣고 결과가 나오면 최종적으로 허가 취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제주도는 5일부터 청문 주재자를 선정하고 처분사전통지서를 교부하는 등 청문 절차에 돌입한다. 청문이 시작되면 한 달 정도 뒤에 모든 과정이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녹지국제병원은 지난해 12월 5일 제주도로부터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내용의 조건부 개설 허가를 받은 후 의료법에 따라 허가 후 3개월의 개원 준비기간이 부여됐으나,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를 시작하지 않았다.
개원 허가기간을 지키지 않은 것은 물론 지난달 27일 제주도 보건위생과 관계공무원의 현장점검까지 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안동우 제주도 정무부지사는 “개설허가를 한 후 3개월간의 충분한 준비기간이 주어졌음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개원을 하지 않을 경우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현행 의료법 규정에 따라 취소 전 청문을 실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안 부지사는 이어 “녹지국제병원의 모기업인 녹지그룹은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인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와 헬스케어타운의 사업 파트너인 만큼 양자간에 헬스케어타운의 향후 사업 방안을 논의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지난 4일 지난해 12월 5일 녹지국제병원 측과의 면담 내용도 공개했다. 제주도는 그간 영리병원 문제를 풀기 위해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녹지국제병원 측이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면서 허가 취소 절차까지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제주도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원희룡 지사는 지난해 10월 8일 제주도청에서 구샤팡 녹지국제병원 대표이사와 면담을 갖고 “도는 공론조사위원회의 (불허) 권고를 존중해야 하는 입장이다. 비영리병원으로 전환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 달라”며 “우리도 정부, JDC 등과 해결법을 찾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구샤팡 대표이사는 “(영리) 병원 개원 준비에 따른 비용을 이미 부담했으며 비영리로는 투자 유치에 영향이 있다”고 거부하면서 “허가 여부를 조속하게 결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구샤팡 대표이사는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조건부 개설 허가 이후 지난 1월 안동우 정무부지사와의 면담에서 “녹지가 혼자서 이것(녹지국제병원)을 밀고 나가기에는 경험도 없고 운영할 수 있는 그것(능력)도 없다”며 “더 이상 제주도와 만날 필요도 없고 소송을 통해 해결하겠다”고 통보했다.
앞서 녹지국제병원 측은 지난달 14일 “내국인 진료를 제한하는 제주도의 조건부 개설 허가의 조건이 부당하다”며 제주도를 상대로 외국의료기관개설 허가조건 취소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국내 1호 영리병원 개설허가를 받은 제주 녹지국제병원의 운명은 법원에서 결정되게 됐다.
제주도가 진행하고 있는 청문절차를 통해 취소처분이 도출된다 해도 녹지 측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내국인 진료 제한’이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오면 원래대로 허가 결정이 유지될 수밖에 없다. 제주도는 녹지 측이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취소해달라고 제기한 행정소송에 대해 전담 법률팀을 꾸려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한편 녹지 측은 지난달 26일 제주도에 공문을 보내 “행정소송과 별개로 도의 개설허가를 존중하며 개원에 필요한 사항에 대한 준비계획을 다시 수립하고 있다”면서 개원 기한 연장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제주도는 “녹지병원 측은 개설 허가 전에는 제주도의 대안 마련 협의에 아무런 성의도 보이지 않은 채 조속한 결정만 요구했고, 조건부 개설 허가 처분 후에는 병원 개원을 위한 실질적 준비 행위를 하지 않고 제주도와의 모든 협의를 일절 거부했다”며 “개원 기한 만료가 임박해 연장해 달라고 요구한 것은 그간의 진행과정과 녹지병원의 자세를 볼 때 전혀 타당성이 없다”고 밝혔다.
박해송 기자 ilyo9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