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 피해금, 거주자 아닌 소유자에 지급한 부분 환수키로…시민단체 “바뀐 규정 소급적용” vs 시 “불가능한 요구”
법무법인 서울센트럴과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가 포항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환수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사진 =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 제공)
[일요신문] 포항시가 주택소유자를 대상으로 지급한 재난지원금에 대해 환수 조치를 예고하자 시민대책본부 등이 반발하고 나섰다. 법무법인 서울센트럴과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는 지난 12일 포항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포항시가 지진 당시 소파 판정을 받은 주택 소유자에게 100만 원을 지급해 놓고 이를 다시 환수해 가는 것은 부당하며 법률상 환수조치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포항시는 2017년 11월과 2018년 2월 지진으로 발생한 사유시설 피해 5만 6515건에 대해 재난지원금 643억 원을 지급했다. 재난 지원금은 지진으로 발생한 건물의 피해 정도에 따라 차등지급된다. 크게 3분류로 나눠 전부 파손(전파)와 절반 파손(반파) 그리고 소규모 파손(소파)로 나뉜다. 전파와 반파의 경우는 건물 소유자에게 지급하게 돼 있으며 소파의 경우엔 실제 거주자에게 지급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는 소파피해 1908건 총 18억 7500만 원을 실제 거주자가 아닌 건물소유자에게 지급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사실상 이러한 문제는 지난해 7월 정부 감사에 적발되면서 문제로 불러졌다. 정부는 잘못 지급된 재난지원금에 대한 환수 지시를 내렸다. 결국 시는 일부를 환수해서 실제 거주자에게 지급해야 될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런데 소파일 경우에도 실제 거주자가 아닌 소유자에게 지급하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지난해 7월 24일 개정된 자연재난조사및복구계획수립요령 별표에 따르면 복구비는 소유자에게 지급하도록 돼 있다. 피해 건물의 수리는 대부분 소유자가 한다. 실거주자가 하는 것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도 포항지진 당시 실거주자에게 지급하도록 한 부분이 현실에 맞지 않아 소유자로 개정한다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입법예고를 한 바 있다. 도의적으로도 소유자에게 지급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번 소송을 담당한 법무법인 서울센트럴 이경우 변호사는 “포항시가 지진 당시 소파판정을 받은 주택 소유자에게 100만 원을 지급해 놓고 이를 다시 환수해 가는 처분사전통지는 관련법령이나 신의성실의 원칙, 정의감에 반해 부당하다”고 했다.
포항시가 주택소유자에게 예고한 지진피해 재난지원금 환수처분 통지서(사진 =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 제공)
# 소송 결과 뒤로 연기해야 vs 무기한 연기 곤란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도 이에 동조하며 환수조치의 연기를 강조했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포항지진정밀조사단은 지열발전소에 대한 지진 유발 여부를 조사 중이다. 이러한 가운데 대책본부는 국가와 포항지열발전소를 상대로 시민참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결과가 나오기 전에 환수조치를 한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제66조 제6항에서 ‘재난의 원인제공자가 따로 있을 경우에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한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책본부는 이에 대한 결과가 나올 시 환수금액을 원인 제공자에게 청구해야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소송 결과가 나오는 시점까지 환수 조치를 연기한다는 것은 포항시로서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소송기간이 얼마나 길어질지는 사실상 판단하기 힘든 부분이라는 것이다.
# 신의성실 및 신뢰보호 원칙 어긋나
대법원 판례 가운데 ‘일반 행정법률관계에서 관청의 행위에 대해 신의성실의 원칙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합법성의 원칙을 희생해서라도 처분의 상대방의 신뢰를 보호함이 정의의 관념에 부합하는 것으로 인정될 때 적용된다’는 것이 있다.
개정된 자연재난조사및복구계획수립요령 별표에는 ‘재난 지원금이 주택 소유자에게 지급하는 것이 신뢰를 보호하고 정의에 부합되며, 입법예고 이유에서도 포항지진을 특정해 소유자로 개정한다’고 돼 있다.
한마디로 복구비를 지급해놓고 다시 환수해 간다는 행정청은 선행행위에 모순되며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 부당이득 관한 법리 의거, 환수조치 철회 가능한가?
포항시가 소파판정 소유자에게 복구비를 지급해 놓고 추후 환수금액을 청구하는 것은 공법상의 부당이득에 속한다. 부당이득에 관한 민법 제744조에 의하면 ‘채무없는 자가 착오로 변제한 경우에 그 변제가 도의관념에 적합한 때에는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개정된 ‘자연재난조사및복구계획수립요령 별표’(소유자에게 지급)를 소급 적용하지 않고 지진 당시의 법령의 별표(실거주자에게 지급)를 형식적으로 적용하다 보니 이러한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물론 행정법규는 소급적용을 하지 않음이 원칙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이익을 증진하는 경우나 불이익, 고통을 제거하는 등 특별사정이 있는 경우에 소급적용이 허용된다는 대법원판례과 포항지진을 특정해 입법예고한 법취지에 비춰볼 때 소급적용이 가능하다. 포항시가 개정된 별표를 포항지진 당시로 소급 적용한다면 환수조치를 철회할 수 있다는 것이 대책본부의 주장이다.
그러나 포항시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소급적용이 안되며 사실상 이는 불가능하다”라며, “소파 5만여 건을 지급했는데 그중 97%는 실거주자에게 줬으며 나머지 3%에게만 소유자에게 지급했다. 소급적용이 된다면 나머지 97%에 대해 다시 환수조치를 하고 재지급을 해야 되는 것이냐”고 말했다.
# 법무법인 서울센트럴, 환수통지 피해자 대상 무료 소송자문
법무법인 서울센트럴은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의 주도로 포항법원에 제기한 포항지진 시민참여소송 참여자 중 환수대상자에 대해 무료로 변호인의견서를 제출한다고 밝혔다. 포항지진 소송담당 3명의 부장판사출신 변호사가 법리검토를 하고 있다.
포항지진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에게도 무료로 소송자문을 할 예정이다. 변호인의견서는 환수처분의 즉각철회에 도움이 되고 소송진행할 경우 소송공조를 할 방침이다.
현재 포항시는 행안부와 이에대한 해결방안을 협의 중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최대한 시민들의 민원사안을 감안해서 적극적인 행정이 아닌 융통성 있는 행정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협의 및 조율을 거쳐 1~2달 내 정확한 조치가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
포항=임병섭·남경원 기자 ilyo0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