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갑룡 경찰청장 “명확히 식별 가능한 동영상 넘겨”…부실수사 비난 화살 경찰서 검찰로
민갑룡 경찰청장은 3월 14일 국회 행전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김학의 사건’에 대해 입을 열었다. 민 청장은 “최초 입수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맡긴 (별장 성접대) 영상은 흐릿했지만, 이후 5월에 입수한 영상은 육안으로 명확히 (김학의 전 차관임을) 식별 가능했다”고 밝혔다. 지난 4일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의 발표 내용으로 경찰을 향했던 비난 여론이 민 경찰청장의 발언을 통해 다시 검찰로 돌아섰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접대 의혹은 아직도 해결도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김학의 동영상’은 한 여성과 건설업자 간 고소전이 이뤄지던 가운데 터져 나왔다. 2013년 3월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내사에 들어갔고, 3일 만에 동영상을 입수했다. 이미 언론에서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성접대 동영상 등장인물로 보도하던 시점이었다. 경찰은 내사를 수사로 전환하고 동영상 속 별장의 구조를 탐문하는 등 수사를 벌였지만, 동영상 화질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김 전 차관을 동영상 속 인물로 지목하지는 않았다.
2분이 조금 넘는 해당 동영상은 건설업자 윤중천 씨의 강원도 원주 별장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상에는 남성과 여성이 등장하는데 속옷차림으로 노래를 부르던 중년 남성이 옆에서 흥을 맞추던 여성 뒤에서 돌연 성관계를 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며 끝이 난다.
김 전 차관의 성접대와 관련한 루머는 이미 2012년 말께부터 서초동과 법조계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김 전 차관 임명 직전인 2013년 초에는 지라시(사설 정보지)를 통해 ‘검찰을 비롯해 사정기관 관계자들의 부적절한 연루설’이 확산됐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공안통인 김 전 차관 인사를 강행했다. 그렇지만 취임 6일 만에 김 전 차관은 스스로 관직을 내려놨다.
법무부 차관이 별장에서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는 건설업자 윤 씨를 향했다. 통상 뇌물을 제공했을 경우 이를 제공한 것보다 뇌물을 수수한 것이 더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윤 씨가 무엇을 대가로 김 전 차관에게 별장 성접대를 제공했는지 그 대가성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건설업자 윤중천 씨와 관련해 제기된 범죄 의혹은 갈래가 다양하다. 강간 및 성폭행, 불법적 약물 투약, 불법 촬영 및 유포, 협박, 성상납, 향응제공 등이다. 윤 씨는 2012년 한 여성과의 성관계 동영상을 그 지인들에게 보여줘 명예를 훼손하고,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를 받았다. 또 2010년에는 대우건설이 시공하는 골프장 공사 수주를 위해 대우건설 전 사장에게 고가의 그림을 제공한 혐의도 받았다.
검찰은 2013년 11월 김 전 차관과 윤 씨의 성접대 혐의에 대해 동영상 속 피해자 신원을 파악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다만, 윤 씨에 대해서는 배임증재,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추가기소했다.
누가 봐도 식별이 가능한 영상에 대해 검찰은 ‘신원은 파악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려 부실수사라는 맹비난을 받았다. 이에 따라 성폭행과 불법적 성접대에 대해 관련자들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 수사 당시 해당 영상을 접한 검찰 관계자들 역시 ‘누군지 바로 알수 있는 깨끗한 화질이었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내용이 MBC ‘PD수첩’을 통해 방송되면서 여론은 빠르게 악화됐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민 경찰청장이 경찰이 명확히 식별 가능한 동영상을 검찰로 보냈다고 밝혀 논란에 방점을 찍었다.
그렇게 덮이는 듯했던 사건은 재수사 국면을 맞았다. 그동안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동영상 속 피해 여성 이 아무개 씨가 자신을 밝히며 김 전 차관과 윤 씨를 검찰에 고소하면서다. 이 씨는 김 전 차관과 윤 씨를 성폭력특례법 위반과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으로 2014년 7월 고소했다.
이 씨는 별장 성접대 사건 이후에도 김 전 차관 등으로부터 수차례 추가적인 성관계를 요구당했다는 내용을 추가로 고소했다. 하지만 2014년 12월 검찰은 동영상 속 여성과 이 씨가 동일 인물임을 입증할 자료가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사건은 지난 4일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이 수사기관의 부실수사 정황을 밝히며 다른 국면을 맞았다. 조사단은 경찰이 원주 별장 등지에서 압수한 사진파일 1만 6000여 개, 동영상파일 210개와 윤 씨 친척으로부터 압수한 사진파일 8600개, 동영상 349개를 검찰에 송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논란이 된 김 전 차관의 별장 성접대 영상 외에 수만 개의 파일이 존재했던 것. 수사에서 누락된 디지털 자료에는 그동안 성접대 의혹을 받은 사정기관 고위공직자, 병원장, 교수 등 인물들의 영상이 담겨있을 가능성도 있다. 이로 인해 방대한 자료를 검찰로 보내지 않은 경찰의 부적절한 행동을 두고 의혹이 증폭됐다. 그런데 민 경찰청장의 ‘명확히 식별 가능한 동영상’ 발언으로 비난의 방향이 다시 검찰을 향하게 된 것이다.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은 김학의 사건을 조사하고 있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인원이 소수인 데다 자기 조직을 대상으로 과오를 파헤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더군다나 사건 발생 후 시간이 많이 흘러 강간이나 성폭행을 입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검찰 관계자들은 성접대와 관련해 수면 아래서 아직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여성 피해자들이 더 많을 것으로 보고있다. 진상조사단은 피해 여성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윤 씨를 소개받았는지 그 공급책에 대해서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차관을 15일 진상조사단의 소환에 불응했다. 진상조사단은 수사에 대한 강제권이 없어 ‘김학의 사건’의 진상규명이 난항을 겪게 됐다. 조사단은 3월 말 활동종료를 앞두고 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