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찌개 등 65도 미만으로 식혀 먹어야…‘만병의 근원’ 만성염증 예방엔 비타민D 효과적
이란에서 진행된 연구 결과 아주 뜨거운 차를 마시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식도암 위험이 8배까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뜻한 음식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뜨거운 음식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일본 국립암연구센터의 쓰가네 쇼이치로 사회·건강연구센터장은 이렇게 조언했다. 그동안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뜨거운 음식이 식도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도 최근 발암성 평가보고서에서 ‘뜨거운 음료’를 2A군으로 분류했다. 2A군은 ‘인간에게 발암물질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임을 뜻한다.
실제로 이란에서 진행된 연구에서도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결과가 도출됐다. 약 5만 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아주 뜨거운 차를 마시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식도암 위험이 8배까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우루과이나 브라질 남부의 식도암 발병률이 유독 높은 까닭이 뜨거운 마테차를 즐겨 마시는 습관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경우도 와카야마현에 식도암 환자가 많은 이유가 뜨거운 죽을 먹는 전통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어째서 식도암의 위험이 높아지는 걸까. 쓰가네 박사는 “뜨거운 음식을 섭취하면 입안과 목구멍 등에 미세한 화상을 입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뜨거운 열기가 식도 점막을 손상시키고, 이게 반복될 경우 상처가 회복되지 않아 암이 유발될 수 있다”는 얘기다. 화상은 염증과도 같다. 온도가 높고 섭취량이 많을수록, 덧붙여 섭취빈도가 잦을수록 식도에 만성적으로 염증이 생기며, 식도암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식도 건강을 생각한다면, 뜨거운 음식은 조금 식혀서 먹는 편이 좋다. 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하는 적정온도는 65도 미만이다. 보통 카페에서 나오는 아메리카노는 67도 이상, 음식점의 찌개 요리도 70도를 넘나든다. 뜨거운 걸 갑자기 들이킬 게 아니라, 호호 불어서 식혀 먹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 참고로 우유를 넣은 카페라떼는 60도 전후이므로 바로 마셔도 괜찮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뜨거운 음식을 먹을 경우 식도에 염증이 생기기 쉽다. 그런데 오사카대학의 미야사카 마사유키 특임교수는 “식도 외에도 ‘우리 몸에는 거의 항상 어느 정도의 염증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만성염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학계에서도 이 만성염증이 뜨거운 이슈란다.
염증이란 본래 고장 난 몸을 고치려는 ‘방어 반응’이다. 예를 들어 감기에 걸리면 열이 나고, 모기에 물리면 빨갛게 붓거나 하는 것도 체내로부터 세균이나 유해물질이 배출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러한 염증들은 ‘급성’으로 분류된다.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이며, 시간이 지나면 회복된다.
문제는 ‘만성’ 염증인 경우다. 미야사카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보통 염증은 체내에 유해물질이 들어왔을 때 발생하며,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그런데 유해물질이 지속적으로 침입한다든지 염증을 제어하는 신체 메커니즘이 고장 나면 염증이 반복해 발생한다. 이것이 바로 만성염증이다.”
최신 연구에 따르면 “암이나 치매, 당뇨병, 심근경색, 아토피성 피부염 같은 질병도 근본 원인은 만성염증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만성염증을 유발하는 요인은 뭘까. 이에 대해 미야사카 교수는 “뭐든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이다. 당분이나 포화지방, 콜레스테롤 등의 영양소를 과다 섭취하는 것도 혈관이나 장기 등 다양한 조직에 염증을 유발한다”고 전했다.
염증은 외부에서 침입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콜레스테롤, 요산 결정 등 체내에 쌓이는 물질에 의해서도 발생한다. 원인이 제거되지 않아 염증이 만성화되면 결국 각종 질병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생활습관병이다.
하루 20분만 햇빛을 받으면 만성염증을 예방할 수 있다. 일요신문DB
대표적인 질환으로 혈관이 좁아지고 딱딱하게 굳는 동맥경화를 꼽을 수 있다. 최근 의학계에서는 동맥경화를 ‘혈관 벽에 염증이 계속 존재하는 상태’라고 본다. 동맥경화가 더 진행되면 혈관이 막혀 심근경색 또는 뇌경색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밖에도 췌장에 만성염증이 생기면 인슐린의 기능이 점점 떨어져 당뇨병이, 피부의 염증이 가라앉지 않으면 아토피성 피부염이 된다. 특히 ‘만성염증은 암 발생에도 큰 영향’을 끼치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치주질환이 계속되면 구강암, 담낭 염증이 계속되면 담낭암, 염증성 장질환은 대장암으로 번지기도 한다.
‘모든 병의 근원’이 만성염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런데 무서운 건 자각증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생각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사이 우리 몸에서 서서히 질병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흔히 염증은 적색, 부종, 발열, 통증 같은 4가지 증상을 보이지만, 염증이 만성화되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상들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기타사토대학의 구마자와 요시오 교수는 만성염증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항염증 작용이 있는 비타민 D를 섭취해야 한다. 비타민 D는 연어나 꽁치 등에 많이 포함되어 있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햇빛이다. 하루 20분 정도만 햇빛에 노출해도 필요량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다.”
아울러 레드와인 등에 들어있는 플라보노이드, 양파 껍질에 함유된 퀘르세틴 성분도 항염증 작용을 한다. 건조시켜 분말로 만든 것도 판매되고 있으니 요리에 섞으면 효과적이다. 또 블루베리는 식이섬유 외에도 항산화물질인 안토시아닌이 풍부하다. 이 물질은 체내의 염증을 억제하고 암의 위험을 낮춰준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밖에도 블루베리에는 칼륨, 비타민 C, 비타민 K, 망간 등의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돼 있어 그대로 간식으로 먹거나 요구르트 등에 섞어 먹으면 좋다.
모든 병은 작은 염증으로부터 시작된다. 뜨거운 차나 국물을 자주, 급하게 마시는 걸 피하고, 흡연과 음주도 가급적 삼가자. 작은 생활습관의 개선이 암 발생률을 줄여주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매우 중요한 방법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