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쪼여 치료 ‘광면역요법’ 임상 마무리 단계…자비 털어 연구한 고바야시 박사의 노력 결실
FNN 프라임 뉴스에 소개된 고바야시 박사.
암 치료법은 크게 수술, 항암제, 방사선치료 등 세 가지로 나뉜다. 하지만 ‘신체적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치료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의료 선진국에서는 새로운 암 치료법 연구가 한창이었고, 최근 그 연구개발 성과가 하나둘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이 빛과 면역 치료를 결합한 ‘광면역요법’이다. 쉽게 말해 “빛(근적외선)을 쬐어 암세포만을 정교하게 제거하는 치료법”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TV 리모컨 등의 무선조작에 쓰이는 근적외선은 인체에 무해할 뿐 아니라, 정상세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부작용이 나오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국립암연구센터 히가시병원의 도이 도시히코 부원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광면역요법은 빛으로 암세포를 파괴하는 새로운 치료법이다. 환자에게 특수약물을 주사한 후 근적외선을 쪼이면, 불과 몇 분 만에 암세포가 사멸한다. 부작용이 적고 면역세포를 활성화시키므로 암 재발 억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만약 실현된다면 사실상 암과의 전쟁을 끝맺게 된다.”
획기적인 이 치료법은 과연 어떻게 발견됐을까. 일본 주간지 ‘주간겐다이’는 광면역요법을 개발한, 미국 국립보건원(NIH) 고바야시 히사타카 주임연구원의 이야기를 다뤄 관심을 모았다. 매체에 따르면 “그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고 한다.
1961년 효고현에서 태어난 고바야시는 교토대학 의학부에 진학해 병리학을 전공했다. 병리학은 병의 원리를 밝히기 위해 세포 등의 변화를 관찰하는 학문. 그러나 암 연구에 매진하더라도 ‘한번은 임상 경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방사선과 의사로서 일하기 시작했고, 결국 11년간 현장에서 뛰게 된다.
다만 나날이 발전하는 ‘의과학의 세계’에서 10년이 넘는 공백은 매우 컸다. 발표한 논문 수가 적었던 탓에 연구자금을 끌어오기 어려웠고, 그는 꽤 오랫동안 자비를 털어가며 ‘극빈(極貧) 연구자’의 길을 걷는다. 이에 대해 고바야시는 “그럼에도 당시 임상의로서의 경험이 암 연구에 초석이 됐다”고 밝혔다.
고바야시는 “본래 인체에 해로운 방사선으로 암을 치료한다는 건 난폭한 방법”이라고 전했다. “암세포는 물론 정상세포까지 손상시켜 부작용이 상당하다”는 설명이다. 또 일본에서 암 치료는 먼저 외과수술을 시도하고, 어려울 경우 항암제 치료를, 그러고도 고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의 환자들이 방사선과로 온다. 그는 “나중엔 손을 쓸 수 없어 무력감에 시달리기도 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이처럼 수많은 말기 암환자를 마주하고, 한계에 부닥친 경험은 새로운 암 치료연구의 출발점이 되어줬다.
하지만 연구비의 벽은 높아도 너무 높았다. 마지막 가능성을 걸어보고자 2001년 미국으로 건너간 고바야시는 “마치 자국리그에서 출전하지 못한 선수가 메이저리그를 목표로 하는 것과 같았다”고 말했다. 그가 맡은 포지션은 시니어펠로우(Senior Fellow). ‘보스’의 연구를 도우면서 빈 시간에 자신의 연구를 진행시킨다는 조건이었다. 이후 고바야시는 착실히 성과를 인정받아 2004년, 43세의 나이에 마침내 자신의 연구를 단독 진행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2009년. 신기한 현상이 벌어진다. 실험에서 암세포를 비추기 위해 근적외선을 대자 암세포가 차례로 사멸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처음엔 어리둥절했으나 자세히 관찰하자 근적외선을 맞은 암세포가 풍선 터지듯 차례로 터지고 있었다. 즉시 ‘광면역요법’ 연구가 시작됐다.
작동 원리는 이렇다. 근적외선에 반응하는 화학물질과 특정 암세포에 달라붙는 항체를 결합한 약을 환자에게 주사한다. 그런 다음 근적외선을 쪼이면 항체가 암세포만을 공격하고 정상세포는 공격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면역세포를 활성화하여 암을 치료하는 것이다.
2012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암세포만을 공격하는 새로운 치료법이 머지않아 실현될 것 같다”며 고바야시 연구를 언급하기도 했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고 종래의 수술, 항암제, 방사선치료에 이은 ‘제4의 암 치료법’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모였다.
물론 장벽이 없던 건 아니었다. 관련 연구가 임상시험 단계를 거쳐 특허를 획득하기까지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물쭈물하다가는 자금력이 풍부한 연구실이나 제약회사가 먼저 시험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러던 2013년 4월 든든한 후원자가 나타났다. 다름 아니라, 일본 최대 전자상거래회사인 ‘라쿠텐’의 미키타니 히로시 회장이다.
당시 미키타니 회장은 아버지가 췌장암으로 투병 중이라 최첨단 암 치료법에 관심이 지대했다. 속전속결로 지원을 약속받았고, 이례적인 속도로 임상시험 절차를 밟았다. 이미 미국에서는 임상시험이 2단계까지 완료됐다. 정식으로 승인 받으려면 모두 세 단계를 거쳐 약효와 안전성을 검증해야 하는데, 최종 확인하기 위한 임상시험이 오는 3월부터 일본과 미국, 유럽 등지에서 실시될 계획이다. 만약 아무 문제없이 승인된다면 일반인들도 실제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주간겐다이’에 따르면 “현재 수술이나 항암제, 방사선 등 기존 치료법으로 효과가 없는 두경부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 고바야시 박사는 “다른 종류의 항체도 개발해 두경부암뿐 아니라 다른 암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종 목표는 생존율이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진 최악의 암, 췌장암이다.
다만 새로운 암 치료제는 고액이 든다는 문제점이 있다. 일례로 지난해 노벨생리학상을 공동 수상한 혼조 다스쿠 박사의 연구를 실용화한 암 치료제 ‘옵디보(opdivo)’가 떠오른다. 옵디보는 연간 치료에 1인당 3500만 엔(약 3억 500만 원)이 들 만큼 ‘비싼 약’으로 유명하다.
그렇다면 광면역요법은 어떨까. 고바야시 박사는 “빛에 반응하는 물질과 항체가 비싼 부분이지만, 사용하는 양이 그리 많지 않아 큰 비용은 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근적외선을 비추는 장치 역시 방사선치료 장치처럼 고가가 아니다. 게다가 치료를 위해 입원할 필요도 없다. 첫날 항체를 주사하고 다음날 근적외선을 쐬는 것만으로도 치료가 끝나기 때문이다.
아직 시험단계라 광면역요법의 상용화 시기는 명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암이 치명적인 병이 아니라, 작은 병원에서도 부담 없이 치료할 수 있는 시대가 성큼 다가온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