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종교 혐오 논란 불거진 김효은 신곡 두고 힙합씬에서도 “비난 받을 일 맞다”
래퍼 김효은과 브래디스트릿의 신곡 ‘머니 로드’가 여성혐오와 종교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김효은 인스타그램
지난 1일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종평위)는 김효은의 소속사인 앰비션뮤직 대표와 김효은을 상대로 항의 공문을 발송하고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종평위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종교단체로서 절대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며 “당사자인 김효은과 소속사가 해당 음원에 대해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종평위 측이 김효은과 앰비션뮤직에 요구하는 것은 ▲종교폄훼 가사에 대한 진상규명 ▲온라인 음원사이트를 포함한 모든 음원의 배포 중지 ▲재발방지 ▲공식적인 참회 등이다. 종교계, 그것도 불교계에서 대중 가수를 공식적이자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이번 사태가 처음이라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앰비션뮤직의 대표가 힙합계에서 알려진 불교신자인 Dok2(도끼)인 만큼, 그들의 향후 대처에도 관심이 모일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곡에는 이외에도 ‘메갈(페미니즘 커뮤니티 메갈리아 이용자를 뜻하는 말)년들 다 X간’ ‘니 여친집 내 안방’ 등 여성혐오 논란을 불러일으키게 한 가사가 포함됐다. 이 때문에 불교계에서 문제를 삼기 전에는 여성들 사이에서 먼저 여성혐오와 성폭력적인 가사라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더욱이 이 곡이 19세 미만 청취 금지 제한 없이 유통됐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소속사와 유통사에도 불똥이 튀었다. 3일 기준으로 각종 음원 유통사에는 곡이 내려갔지만 유튜브 등에는 여전히 원곡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다.
신곡 가사가 문제가 되자 김효은과 브래디스트릿 모두 SNS에 사과문을 올렸다. 사진=김효은 인스타그램
이처럼 사회적 여론이 악화되자 김효은과 브래디스트릿은 SNS를 통해 “제 가사의 어휘 선택이 지나치게 과격했던 점을 반성한다”며 “제 가사에 불쾌하셨던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하루 빨리 가사를 수정해 업데이트 하겠다”고 밝혔다. 문제가 된 가사 부분이 브래디스트릿의 피처링 부분이므로 이 부분만 수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 힙합 씬에서는 이전과 다른 모습이 보여 눈길을 끈다.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게 힙합 소울(soul)이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지 말라”며 한 목소리로 외쳐대던 리스너들이 “(김효은이) 욕 먹을 짓 했다” “시대가 변한 줄 모르고 마구잡이로 질러댄 것”이라며 먼저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일부 “불편한 사람들이 안 들으면 되는 게 아니냐” “노래 가사일 뿐 실제 범죄는 아니지 않냐”는 반박도 있지만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리스너들은 문제의 가사가 브래디스트릿의 피처링이라곤 하지만 김효은이 걸러내지 못한 것을 지적하기도 했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가사를 컨펌한 것이 김효은이므로 그 역시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노래를 확인하고도 문제의식 없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려 홍보한 앰비션뮤직의 공동대표 더콰이엇 등도 질타를 받아야 했다.
래퍼 블랙넛은 여성 래퍼 키디비에 대한 성희롱, 모욕적인 가사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사진=일요신문DB
그가 언급한 키디비-블랙넛 사건은 블랙넛이 여성 래퍼인 키디비로 성적인 가사를 작성해 공연하면서 모욕 등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블랙넛은 지난 1월 10일 1심에서 모욕죄가 인정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블랙넛은 미국의 유명 래퍼 에미넴을 언급하며 “예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 블랙넛이 SNS와 자신의 신곡 등을 통해 집요하게 키디비에 대한 모욕을 이어갔던 점이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힙합 씬에서는 암묵적으로 인정돼 왔던 ‘디스(Disrespect, 래퍼들이 서로를 비판할 목적으로 가사를 쓰는 행위)’ 문화가 법정에서는 전혀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앞선 래퍼는 이에 대해 “예전까지는 모욕적인 말을 가사에 넣고 항의를 받으면 ‘디스였다’거나 ‘힙합 정신’이라는 말로 빠져나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오히려 이런 가사가 발목을 잡는 일도 많다. 고 최진실 씨와 관련한 가사를 썼다가 족쇄가 된 스윙스의 경우가 그렇다”라며 “더욱이 여성 리스너들도 늘어나는 상황에서 성범죄나 여성 혐오가 연상되는 가사를 썼다간 그야말로 매장이다. 차라리 이번처럼 발 빠르게 사과한 게 최선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