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말까지 지자체 총 45곳 새 금고지기 선정…시중은행 vs 농협, ‘지역은행’ 경쟁구도
최근 주요 지방자치단체 금고가 은행들의 격전지로 떠올랐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최근 은행권 관심이 쏠리는 입찰이 있다. 주요 지자체의 ‘돈 주머니’를 관리하는 금고은행 입찰이다. 여기에서 낙찰 받으면 4년 동안 지자체 예산과 기금 등을 관리하고 일부를 운용할 수 있게 된다. 지자체 규모에 따라 최소 수천억 원에서 최대 수십조 원이 늘 금고에 들어 있어, 은행 입장에선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원이 될 수 있다. 주거래은행이 되는 만큼 공무원이나 관련 기관 관계자들을 고객으로 확보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전국 지자체 금고(일반회계 기준)는 243개다. 이 가운데 농협은행이 150개(68%)를 차지하면서 독보적인 위치에 서있다. 신한‧KEB하나은행‧우리은행‧KB국민은행 등 시중은행은 68개(18%), 나머지는 지방은행이 관리하고 있다. 그동안 시중은행은 서울과 수도권 금고를, 농협은행과 지방은행은 방대한 지역거점을 기반으로 전국 지자체 금고를 선점해 왔다.
하지만 지난 2012년부터 판도가 달라질 조짐이 보였다. 정부가 금고 지정방식을 공개입찰로 변경하면서 입찰문턱이 낮아졌고, 이에 따라 전통적인 독식구도를 깰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다. 지난 2013년부터 한 두 곳의 금고지기가 교체됐지만, 본격적인 ‘쟁탈전’이 시작된 건 지난해부터다. 1915년부터 32조 원 규모의 서울시 금고를 맡아오던 우리은행이 신한은행에 자리를 내준 게 기점이 됐다. 지난해 말엔 광주 광산구가 30년 만에 금고지기를 농협은행에서 국민은행으로 교체했고, 광주 남구도 23년 만에 광주은행 대신 국민은행에 운영권을 넘겨줬다.
현재 지자체 금고지기 경쟁구도는 ‘시중은행 vs 농협은행‧지역 대표은행’으로 굳혀졌다는 게 은행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올해 연말까지 새롭게 금고지기를 선정하는 지자체는 총 45곳. 이 가운데 특히 대구와 경북, 부산시 등이 격전지다.
금고 쟁탈전에 뛰어드는 시중은행들의 무기는 막대한 자금과 금리 경쟁력이다. 사실상 ‘쩐의 전쟁’이 벌어지는 셈이다. 실제 앞서의 광주 광산구 금고 선정 당시 기존 금고지기였던 농협은행은 기부금 3억 원, 협력사업비 18억 원, 총 21억 원을 제시했는데, 국민은행은 지역사회기부금 35억 원, 협력사업비 29억 4000만 원 등 64억 4000만 원을 써내면서 농협은행을 압도했다. 금리 역시 국민은행은 예금 금리를 2.12%로 제시했지만 농협은 1.58%였다.
시중은행들이 자금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건 지자체 금고 지정 평가 기준에 ‘협력사업비’ 등 출연금이 포함돼서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은행들이 유리한 건 사실이다. 출연금 규모나 금리 설정 등은 은행들의 자율적인 경영판단이라 출혈경쟁이 벌어져도 금융당국에서 개입할 수 있는 명분도 없다”라며 “지자체 입장에서도 은행들이 제시한 금액이 전부 지자체 예산으로 편입되기 때문에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토로했다.
경쟁에서 밀리는 지역 대표은행 입장에선 불만이 크다. 지난해 금고지기가 바뀐 일부 지자체 금고와 관련해 계약체결 절차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는 등 소송을 제기하는가 하면, 정부에 시중은행의 ‘지자체 금고 싹쓸이’를 막아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최근 지방은행 노사는 ‘행정안전부 지자체 금고지정기준 개선에 대한 호소문’을 통해 “최근 일부 시중은행이 출연금을 무기로 지자체 금고 유치에 나서고 있는데 출연금의 많고 적음에 따라 결정되다시피 하는 현 자치단체 금고지정 기준은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정안전부가 이 의견을 받아들여 지난 3월 말 지자체 금고 지정 평가 기준안을 개선했지만 대형 시중은행의 경쟁력이 높은 건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지방은행들의 주장이다.
아직 일부 금고는 입찰 공고도 나오지 않은 만큼, 은행들은 공식적으로 말을 아끼고 있다. 일부 시중은행은 “지자체 금고는 은행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부담 없는 선에서 (입찰에) 참여할 계획”이라는 취지로 입장을 밝히긴 했지만, 속내는 다르다는 게 은행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이미 시중은행들이 경북, 경남 지자체 등을 상대로 ‘공격적인’ 영업을 시작했다. 조만간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