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빌려 사업한 A사 적자 누적 “생존할 수 없는 구조” 주장
한화그룹 계열사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임직원 2명과 협력업체 A 사 박 아무개 대표가 지난 2월 사기 혐의로 고소당했다. 이어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지난 3월 협력업체 A 사 박 대표를 사기죄로 고소했다. 한화와 협력업체, 또 다른 중소업체 간의 얽히고설킨 고소전의 내막을 들여다봤다.
한화호테앤드리조트가 사기 혐의로 피소당했다. 중소업체들에게 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도리어 기망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일요신문DB
사건의 발단은 한화호텔앤드리조트 협력업체 A 사의 부채가 늘어나며 시작됐다. A 사가 한화호텔앤드리조트에 내야 하는 외상대금은 지난해 10월 19억 원에서 12월에는 155억 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부채가 쌓이자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의 담당 팀장 B 씨는 A 사 박 아무개 대표와 해결책을 강구했다. 해결책 가운데 하나가 중소업체로부터 육류를 매입하는 것이었다.
박 대표에 따르면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연말 회계 결산을 해야 하기 때문에 육류를 구매해 일단 그걸로 부채를 없애는 식으로 장부를 마감하자고 제안했다. 박 대표는 한화호텔앤드리조트와의 거래관계가 오래됐기 때문에 당장 눈앞의 불만 끄면 조만간 이익을 내 부채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박 대표는 필사적으로 육류 구매에 나섰다. 업체들을 찾아다니며 “한화에서 고기를 사려고 하니 물건을 납품해달라”고 호소했다.
박 대표는 업체 대표들이 보는 앞에서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직원과 통화하는 것을 들려주며 신뢰를 얻었다. 피해업체에 따르면 박 대표는 한화 직원과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며 한화가 육류를 매입하려고 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업체가 한화에 먼저 물건을 납품한 뒤 대금을 지급받는 방식이라 신뢰가 있어야만 거래가 성사되는 상황이었다.
박 대표와 한화 직원 B 씨와의 카카오톡 대화내용을 살펴보면 대화 내용은 둘 간의 계속거래를 전제하고 있다. B 씨는 2019년 주력상품에 대해 박 씨에게 귀띔하기도 하고, 일감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B 씨는 박 대표에게 육류매입을 재촉하며, ‘매입할 리스트를 넘겨달라. 다음 달 바로 출금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와 같은 말도 했다. 업체들로부터 고기를 납품받으면 대금을 지급해야 하니 구매 리스트를 빨리 달라는 요청이었다. 업체가 고기를 납품하면 대금을 지급할 것이라는 정상거래를 암시한 셈이다.
박 대표는 설득 끝에 4개 업체로부터 111억 원어치 육류를 구했고, 1월 11일 물품이 일괄적으로 납품됐다. 하지만 사흘 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돌연 납품된 물품을 A 사의 채무를 회수하는 데 썼다고 박 대표에게 통지했다. 그리곤 A 사와의 거래관계를 끝냈다. 당장 물건을 팔고도 대금을 받지 못하게 된 중소업체의 반발이 심해지자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한참 뒤 1개 업체에만 대금을 지급했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측은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A 사가 한화호텔앤드리조트에 돈을 갚지 못하자, 중소업체와 한화 양쪽에 사기를 쳤다는 것. 또 이 사태의 전말을 회사는 전혀 몰랐으며 팀장급인 B 씨의 결정에 따라 모든 일이 벌어졌다고 해명했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측은 “우리 회사가 이번 사건의 최대 피해자다. A 사의 외상 대금 미변제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피해업체 대표는 “우리 물건으로 남의 빚을 갚겠다는 게 골자인데 누가 그런 거래에 응하겠느냐. 한화의 팀장급 직원과 박 대표가 통화하는 것을 보여주며 신뢰를 줘 믿었을 뿐”이라며 “대기업 한화라 하더라도 일개 팀장급 직원이 수십억, 수백억 원 거래를 결정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꼬리 자르기 말고 회사 차원에서 책임 있는 대응을 해줘야 한다”고 토로했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당초 피해업체들의 물품만 받고 대금을 지급할 의사가 없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처음부터 A 사와의 채권관계만 정리되면 거래를 끊을 심산으로 피해업체의 물품을 납품받았을 가능성까지 제기된 것. 사건이 터지고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담당 팀장만 징계처리했다. 이를 두고 함께 고소당한 직속 상사인 임원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고 팀장급 직원의 일탈로 꼬리를 자른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A 사 박 대표는 한화 팀장 B 씨는 물론 그의 상사인 상무와도 종종 만나고 별도의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1월 초에도 박 대표는 상무와 팀장과 사석에서 만났다. 박 대표는 “연초에 마지막으로 상무를 봤을 때 ‘B 팀장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잘될 거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주장했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 관계자는 “대규모 외상채권이 증가한 것은 1월 중순에 처음 인지했다. 박 대표에게 대금 변제를 요청했으나 변제불가를 선언해 A 사와 거래를 중단하게 됐다”며 “박 대표가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축산물을 매입하는 것도 전혀 몰랐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