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작업 위한 현금 ‘빠듯’...주가 부양 작업에는 시장 반응 ‘시큰둥’
서울 중구 소공로 51에 위치한 우리은행 본사. 박정훈 기자.
지난 1월 4년 2개월 만에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우리금융지주가 최근 사업구조 및 체질 개선에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작업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말이다.
우리금융이 특히 공격적으로 추진 중인 작업은 비은행 M&A다. 은행에 지나치게 집중된 사업 구조를 증권, 보험 등 비은행 부문으로 넓혀서 사업을 확대하는 게 목표다. 지난해까지 은행 체제였던 우리금융의 전체 순이익 중 은행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90%로, 수익구조가 은행 ‘이자장사’에 편중돼 있어서다.
여기에 비은행 부문 확대는 최근 국내 종합금융그룹들의 새 ‘트렌드’로도 꼽힌다. 지난해 KB금융지주가 신한금융지주를 제치고 10여 년 만에 국내 최대 금융사(2017년 자산 및 순이익 기준) ‘왕좌’에 앉을 수 있었던 것도 비은행 부문 확대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평가된다. 은행에서 지주사로 재출범한 우리금융으로서는 비은행 부문 강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실제 우리금융은 일찌감치 M&A를 전담하는 TF팀을 꾸리고 지주 경영기획본부 아래서 매물 탐색을 해왔다. 첫 타깃은 자산운용사와 부동산신탁업이다. 우리금융은 지난 8일 중국 안방보험그룹과 계약을 맺고 동양자산운용 지분 73%와 ABL글로벌자산운용 지분 100%를 사들였다. 동양자산운용과 ABL글로벌자산운용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운용하고 있는 펀드 규모가 각각 업계 13위, 29위다. 두 회사를 사는 데 우리금융은 약 1700억 원 가량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일에는 부동산신탁사인 국제자산신탁과 경영권 지분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부동산신탁업은 최근 수 년 사이 연평균 두 자리 수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금융사들이 군침을 흘리고 있는 사업이다. 우리금융은 향후 추가 협상을 통해 구체적인 결과를 낼 방침이다. 인수 가격은 약 1700억여 원으로 추정된다.
이들 M&A 작업은 불과 지주사 전환 3개월 만에 성사시켰다. 업계에서 예상보다 속도가 빠르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앞으로는 속도를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동시에 나온다. 한 IB(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인수 작업을 한 회사들의 규모가 크지 않은데다, 자산운용과 부동산신탁 사업은 기존 은행 고객을 중심으로 영업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있는 만큼 첫 단추를 수월하게 끼운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두 번째, 세 번째 단추를 끼우는데는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금융권 관계자들이 꼽는 우리금융의 다음 행보는 저축은행과 캐피털 인수 작업이다. 업계에선 아주캐피탈과 아주저축은행이 우리금융 체제로 들어올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다. 우리금융은 아주캐피탈 지분 74%를 보유한 사모펀드의 지분 절반을 갖고 있다. 이 펀드는 만기가 오는 7월인데 우리금융은 이미 아주캐피탈 지분을 모두 살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한 상태다.
여기에 우리금융은 현재 손자회사로 두고 있는 우리종금과 우리카드를 올해 안에 자회사로 전환할 방침이다. 우리종금과 우리카드는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지주사 출범으로 인해 손자회사가 된 날부터 2년 내에 자회사로 편입돼야 한다. 우리종금의 경우 중장기적으로 우리증권사로 전환하는 것도 고민하고 있다.
문제는 이 작업에 필요한 ‘실탄’이다. 우리금융지주는 출범 첫 해인 올해 자기자본비율 산출방식에서 내부등급법보다 불리한 표준등급법을 적용한다. 내부등급법을 적용하면 약 2조 원 가량의 자금을 M&A와 자회사 편입 등에 쓸 수 있지만, 표준등급법을 적용하면 약 1조 원 가량의 자금만 쓸 수 있다.
업계에선 우리금융이 우리은행의 현금을 투입해 자회사로 전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종금은 우리은행이 보유한 종금 지분 59.8%를 현금으로 매입해 자회사로 편입시키고, 우리카드는 우리금융지주 지분 50%, 현금 50%로 전환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카드와 우리종금 지분 100% 가치는 1조 원 수준”이라며 “이미 사용했거나 향후 사용할 다른 M&A 가격까지 감안하면 우리금융이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은 빠듯한 편”이라고 분석했다.
주식교환을 통한 방식은 더 조심스럽다. 주가가 계속 떨어지고 있어서다. 우리금융 주가가 낮은 상황에서는 전환하는 대가로 훨씬 더 많은 주식을 내놔야 하고, 우리은행이 자회사 전환을 대가로 받은 지주 주식을 시장에 풀면 지주 주가는 더 떨어질 수 있다. 우리금융지주 주가는 9일 주당 1만 4400원에 마감했다. 지주사 출범 이후 2월 14일 1만 6000원으로 최고점을 찍은 후 하락세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금융이 당분간 기존 전략을 점검하는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손태승 회장과 우리금융 경영진이 재상장 첫날 자사주를 매입하면서 ‘주가 띄우기’에 나섰지만 약발이 잘 안 먹혔다”며 “지난해 최대 이익을 냈는데도 시장의 불만을 뚫고 저배당 기조를 유지하며 인수자금 확보에 나선 만큼 향후 인수전을 문제없이 이끌어 가야 할 부담도 있다. 이에 따라 아주캐피털과 저축은행 인수를 다소 미룰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미리 그려둔 밑그림이 전반적으로 지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우리금융의 한 관계자는 “우선순위를 두고 검토 중”이라며 “다른 M&A나 작업 등을 추진 중이지만 일단 캐피털과 저축은행 자회사 전환에 집중할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