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5년 일어난 잉글랜드 왕권 쟁탈전, ‘장미전쟁’ 빼닮은 라이벌전… 붉은장미와 흰장미의 대결
잉글랜드 프로축구에서 가장 치열한 라이벌전 중 하나로 꼽히는 ‘로즈 더비’. ‘로즈 더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즈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일컫는 별칭이다. 사진=연합뉴스
[일요신문] 1455년 잉글랜드에서 왕권을 둘러싼 내전이 벌어졌다. 이름하여 ‘장미전쟁’이다. 붉은장미 깃발을 앞세운 랭커스터 가문과 흰장미 깃발을 내세운 요크 가문은 잉글랜드 왕권을 두고 30년 동안 혈투를 벌였다.
전쟁 발발 후 30년이 지난 1485년. 랭커스터 가문 출신 왕 헨리 7세는 요크 가문의 엘리자베스를 왕비로 맞으며, 튜더 왕조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장미전쟁’은 막을 내렸다. 튜더 왕조는 붉은장미와 흰장미를 합친 새로운 문장을 만들었다. 이 문장은 바로 현재 영국 왕가를 상징하는 ‘튜더 로즈’다.
‘장미전쟁’은 두 가문 사이의 화해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로부터 500년이 지난 2019년 여전히 붉은장미와 흰장미의 혈투가 벌어지는 곳이 있다. 바로 축구장이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리즈 유나이티드(이하 리즈)의 라이벌전은 ‘로즈 더비’라 불린다. 두 팀의 경기는 전쟁을 방불케하는 치열한 승부의 장이다.
# 선수들의 혈투, 이를 넘어선 팬들의 유혈사태… ‘로즈더비’는 전쟁이다
마지막 로즈더비(2019년 4월 30일 기준)가 열렸던 2011년 9월 21일 당시 리즈의 홈구장 앨런드 로드 전경. 사진=연합뉴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잉글랜드 프로축구에서 ‘라이벌 허브’라 불려도 무방한 구단이다. 그만큼 라이벌 구단이 많은 맨유다. 맨유와 맨체스터 시티의 ‘맨체스터 더비’, 맨유와 리버풀의 ‘레즈 더비’ 등 라이벌전은 국내 축구팬들에게도 꽤나 친숙하다. 그에 비해 맨유와 리즈의 ‘로즈 더비’는 국내 축구팬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매치다.
하지만 잉글랜드 현지에선 맨유와 리즈의 ‘로즈 더비’가 축구계 가장 치열한 라이벌전으로 손꼽힌다. ‘장미전쟁’이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두 구단은 연고지역의 자존심을 건 혈투를 펼쳐왔다.
맨유의 연고지 맨체스터는 랭커셔 주에 위치해 있다. 리즈의 연고지는 요크셔 주다. ‘장미전쟁’의 주체가 된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이 떠오르는 지명이다. 두 팀 사이의 라이벌전 개념은 1970년대 본격적으로 정립됐다. 맨유와 리즈 모두 구단의 첫 번째 황금기를 누리고 있던 시기였다.
당시 맨유는 홈 유니폼 색을 랭커셔 가문의 붉은장미를 상징하는 빨간색으로 바꿨다. 같은 시기 리즈의 홈 유니폼은 흰색이었다. 이는 요크 가문의 흰장미를 모티브 삼은 것이었다. 잉글랜드 축구팬들은 맨유를 ‘Reds’, 리즈를 ‘Whites’란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두 팀의 경기는 수많은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때론 양 팀을 응원하는 열성팬들이 라이벌전의 주체가 되기도 했다. ‘로즈 더비’를 응원하는 양 팀의 팬들의 과격한 응원에 종종 ‘유혈사태’가 발생한 까닭이다. 오죽하면 “로즈 더비에선 훌리건들 사이의 과격한 갈등이 비화된 뒤 경찰이 출동하는 게 관례라고 느껴질 정도”란 이야기가 정설처럼 떠돌아 다닌다.
양 팀 팬들의 치열한 전투가 축구장 밖에서 벌어지는 경우도 빈번하다. 1975년 리즈 시내에서 맨유와 리즈 훌리건들이 벌인 ‘집단 전투(?)’가 대표적이다. 이 사건으로 맨유와 리즈를 응원하는 훌리건 60명이 법정에 서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 2010년대 ‘맨유 vs 리즈’ 전적 1승 1패, 몰락한 라이벌도 라이벌이다.
2010년 1월 3일 리즈는 29년 만에 붉은장미의 심장 올드트래포드에서 승리를 맛봤다. 이날 리즈는 저메인 백포드의 선제골에 힘입어 1대 0으로 맨유를 꺾었다. 3부리그 팀이던 리즈가 우승후보 맨유를 꺾은 건 대이변이었다. 사진은 2010년 로즈더비 당시 저메인 백포드의 골 세리머니 장면. 사진=연합뉴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즈 유나이티드의 ‘로즈 더비’ 통산 전적(맨유 기준)은 46승 35무 26패다. 1986년 알렉스 퍼거슨 감독 부임 이후 오랜 황금기를 보냈던 맨유가 ‘로즈 더비’에서 다소 우위를 점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로즈 더비’의 양상은 팽팽하다. 2010년대 맨유와 리즈는 두 차례 맞붙어 1승 1패로 맞섰다.
2010년대 양 팀의 첫 번째 대결은 2010년 1월 3일 맨유의 홈구장 올드트래포드에서 펼쳐졌다. FA컵 64강전이었다. 당시 리즈는 EFL 리그1(잉글랜드 3부리그) 소속으로 대회에 출전했다. 프리미어리그 최강팀을 상대하는 3부리그 팀 리즈의 승리를 예측한 이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하지만 리즈는 이변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리즈는 경기 초반부터 라이벌 맨유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그리고 전반 19분. 리즈 스트라이커 저메인 백포드가 맨유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드는 묵직한 슈팅 한 방을 꽂아 넣었다. 선제골이었다. 리즈는 백포드의 선제골을 경기 종료 때까지 지켜냈다. 리즈가 알렉스 퍼거슨 경이 이끄는 맨유를 침몰시키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이날 승리는 리즈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1981년 이후 29년 만에 붉은장미의 심장 올드트래포드에서 승리를 거둔 까닭이었다. 3부리그까지 추락했어도, 라이벌은 라이벌이었다. 리즈는 맨유에게 ‘언더독의 반란’이 무엇인지 제대로 각인시켰다.
그리고 1년 뒤 맨유에게 복수 기회가 찾아왔다. 1년 뒤인 2011년 맨유에게 복수의 기회가 찾아왔다. 2011년 9월 21일 리즈 홈 구장 앨런드로드에서 펼쳐진 칼링컵 32강전서 맨유와 리즈는 다시 맞붙었다. 맨유는 리즈를 상대로 2진급 선발 라인업을 내세우며, 3대 0 완승을 거뒀다. 맨유는 이날 승리로 직전 경기 패배를 화끈히 설욕함과 동시에 ‘강팀의 위엄’을 선보였다.
그 이후 두 팀의 맞대결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축구팬들 사이에선 “다시 ‘로즈 더비’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리즈가 EFL 챔피언쉽(잉글랜드 2부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승격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된 까닭이다.
올 시즌 리즈는 리그에서 1경기를 남겨뒀다. 리즈는 리그 3위로 2018-2019 EFL 챔피언쉽을 마무리할 가능성이 크다. 이제 리즈는 ‘승격 플레이오프’를 통해 프리미어리그 승격에 도전하게 된다. EFL 챔피언쉽 리그 3위부터 6위 팀은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프리미어리그 승격 막차 티켓을 놓고 치열한 승부를 벌인다.
만약 리즈가 승격 플레이오프를 해피엔딩으로 매조짓는다면, 다음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선 ‘로즈 더비’를 지켜볼 수 있을 전망이다. ‘로즈 더비’는 잉글랜드의 역사와 전통을 스며든 라이벌전이다. ‘과격함’ 분야에서도 ‘로즈 더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과연 ‘2019-2020 프리미어리그’에서 붉은장미군단과 백장미군단의 장미전쟁은 성사될까.
‘로즈 더비’의 성사 여부는 5월 펼쳐질 ‘EFL 챔피언쉽 승격 플레이오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