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시장 논리’ 구조조정 “박삼구 전 회장의 경영패착이 그룹 유동성 위기 부채질...책임도 그에게 있다는 입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사진= 고성준 기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월 23일 서울정부청사에서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산은 등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에 총 1조 6000억 원을 투입해 유동성 문제를 해소하겠다”라고 밝혔다. 곧바로 시장이 술렁였다. 당초 금호아시아나그룹 측의 요청액은 5000억 원, 시장 예상은 최대 1조 원이었기 때문이다.
예상치보다 크게 불어난 자금을 산은과 채권단이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그 배경과 의미에 대한 해석이 분분했다. 돈을 언제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결정된 ‘통 큰 지원’인 만큼 이유가 있을 것이란 시각이 적지 않아서다. 그동안 외부에 알려졌던 것과 달리 아시아나항공 매각 작업이 상당부분 진척 돼 있었다거나, 적어도 유력한 새 주인이 나타난 게 아니냐는 등의 관측도 나왔다. 일부 대기업들이 ‘인수 후보’라는 타이틀을 달고 거론되고, 산은이 아시아나 매각을 위해 스토킹 호스(Stalking Horse) 방식 도입을 검토 대상에 올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러한 관측에 더욱 힘이 실렸다.
하지만 최근 시장에선 정부와 산은이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대규모 선지원’을 통해 시장에 특별한 ‘메시지’를 던졌다는 해석이 보다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이 메시지는 기업의 대주주, 또는 오너들에게 향하고 있다”며 “아시아나항공 매각 결정부터 자금지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향후 추진 방안 등을 보면 그 시그널이 명확하게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실제 아시아나항공에 흘러들어가는 1조 6000억 원에 담긴 메시지는 철저히 시장을 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산업은행은 일단 아시아나항공에 신용한도로 8000억 원을 지원한다. 신용한도는 일종의 마이너스 통장이다. 아시아나항공이 필요할 때 빌릴 수 있는 돈의 최고 한도가 8000억 원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지급보증 여력을 확충하려는 목적으로 스탠바이LC 3000억 원도 지원한다. 이 같은 신용한도 방식들은 사실상 ‘예비용 자금’ 성격이 짙어 실제로 산은이 지출하는 규모는 크지 않다. 이에 대해 시장 관게자들은 “산은이 아시아나항공 정상화 과정에서 수시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는 의사를 ‘인수 후보’들에게 던지면서 진입 문턱을 낮추려는 의도”라고 입을 모은다.
반면 나머지 5000억 원은 성격이 사뭇 다르다. 특히 이 돈은 산은의 다목적 카드로서, 이번 자금 지원의 ‘핵심’으로도 통한다. 산은과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이 5000억 원 규모의 영구채를 발행하면 이를 사들이기로 했다. 영구채는 만기가 없는 채권이다. 이자만 내면 원금을 무기한으로 상환하지 않아도 된다. 이 경우 아시아나항공은 5000억 원을 회사 운영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다.
역시 이 영구채도 새 주인의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영구채는 부채가 아닌 자본금으로 분류돼, 부채비율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 산은은 1000%가 넘는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이 700%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한다. 그만큼 인수자의 부담은 줄어든다.
하지만 이보다 주목되는 부분은 산은이 영구채를 1년 뒤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조건을 내걸었다는 점이다. 만기가 거의 없는 영구채를 곧바로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설정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영구채를 보통주로 전환하면 이번 자금을 지원하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30% 가량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결국 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가 바뀐다는 뜻이다.
여기에 채권단은 금호그룹과 특별 약정도 맺었다. 약정에는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무산될 경우 지분을 채권단이 임의의 조건으로 팔 수 있다’는 조항이 담겼다. 매각이 지연되거나 돌발 상황이 발생해도 조건 등을 바꿔서 매각을 성사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는 시장에 신뢰를 주면서 원활한 매각 작업을 유도하는 조치이면서도 동시에 박삼구 전 회장 등 금호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복귀는 물론 매각 과정에서 개입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한 전직 산업은행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이번 아시아나항공 사태는 ‘감사보고서 한정 의견’에서 불거졌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과거 박삼구 전 회장의 대우건설-금호산업으로 이어진 무리한 기업 인수”라며 “정부와 산은은 박 전 회장의 경영패착이 그룹 유동성 위기를 부채질했던 만큼 그 책임도 그에게 있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거엔 대주주나 오너가 경영에 실패해도 금융권의 도움을 받아 경영권을 유지했고, 이 과정에서 산은은 ‘부실기업 돌려막기’나 ‘밑 빠진 독에 세금 붓기’라는 오명을 써왔다”며 “정부와 산업은행은 그동안 한국GM, 한진해운, 현대상선 등을 거쳐 오면서 대주주 또는 오너들에게 압박 수위를 점점 높여 왔다. 가장 강도가 높은 이번 아시아나항공 매각 작업을 통해 다른 부실기업들에게도 경영과 매각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수준의 책임을 지면 충분한 지원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철저한 시장논리로만 접근하겠다는 의도를 전달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