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금호그룹 ‘10년 관계’ 청산 작업에 업계 이목 집중…매각 변수는 결국 ‘몸값’
KDB생명 매각에 나선 건 이번이 네 번째다. 지난 2014년 두 차례, 2016년 한 차례 등 세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최근 산업은행은 KDB생명 연내 매각과 기업공개(IPO) 준비 작업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매각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서다. IPO를 진행하면 대주주인 산은은 투자금을 최대한 회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KDB생명은 산업은행의 ‘아픈 손가락’ 또는 ‘애물단지’로 통한다. 실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동걸 회장은 KDB생명에 대해 “인수 직전 3년간 누적 적자가 7500억 원에 이르는데도 인수 이유도 모르고, 인수 과정이 불투명했다”며 “애초에 인수하지 말았어야 할 회사”라며 작심 발언을 했다. 이 회장은 이후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도 “산업은행이 손실을 보더라도 (KDB생명은)매각하는게 정답이다”이라고 말하는 등 하루라도 빨리 떼어 내려는 의지를 보여 왔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KDB생명 매각을 연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이종현 기자
# 산은의 ‘금호그룹 10년 관계’ 청산 작업
산은은 지난 2010년 금호그룹을 지원하기 위해 당시 금호생명이던 KDB생명을 6500억 원에 사들였다. KDB생명의 대주주는 칸서스자산운용이지만 사실상 주인은 산은이다. 산은은 KDB칸서스밸류유한회사(60.3%)와 KDB칸서스밸류사모투자전문회사(24.7%)를 통해 KDB생명 지분 85%를 보유하고 있다.
앞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8년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부터 금호생명 매각을 추진했지만 매각에 난항을 겪었다. 산은은 이때 등장했는데, 인수전부터 이후에도 무수한 뒷말을 낳았다. 당시 KDB생명(금호생명)은 산업은행에 인수되기 직전인 2008년 한 해 순손실 1954억 원, 영업손실 2593억 원을 기록했다. KDB생명 자체가 적자회사인데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생명보험 업계가 전반적으로 흔들린 상황이었다.
여기에 석연치 않은 거래 과정도 도마에 올랐다. 산업은행이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 구조조정 발표 30분 전 사모펀드를 통해 KDB생명을 인수하겠다는 문구를 넣었다는 의혹도 나왔다. 당초 작성된 구조조정안에는 없었던 문구가 추가됐다는 얘기다.
결국 산은은 지난 2011년 감사원으로부터 KDB생명 주식을 실제 가치보다 수천억 원 높은 가격에 사들였다는 지적을 받았다. 인수 전 검토 과정에서 이 회사의 주당 순자산가치가 -152원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았는데도 회계법인 등 재무실사를 거치지 않고 KDB생명을 주당 5000원에 인수했다는 내용이다.
이후에도 산은은 보험 경험이 없는 산은 임원들이 KDB생명의 사장과 부사장을 연달아(2010~2018년) 맡으면서 ‘낙하산 인사’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KDB생명의 당기순이익은 2014년 655억 원에서 2015년 274억 원으로 감소했고, 2016년과 2017년에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당시에도 산은은 ‘경영 정상화’ 명목으로 사실상 KDB생명을 떠안은 모양새가 됐다. 산은의 ‘금호아시아나 구하기’라는 비판이 잇따랐던 이유”라며 “최근 아시아나항공을 시작으로 KDB생명까지 새 주인을 찾아주면 그동안 각종 뒷말을 낳았던 산은-금호아시아나의 전반적인 관계가 10년 만에 정리 수순을 밟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KDB생명 본사. 사진=최준필 기자
산은의 KDB생명 매각 추진설은 매년 시장에서 거론되던 단골 이슈였다.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게 일부 투자은행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KDB생명의 회사 가치가 지난해부터 개선되고 있다는 이유다. KDB생명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63억 9699만 원으로, 2017년 767억 1275만 원 순손실에서 흑자로 전환했다. 2016년부터 직원 수와 임원진을 각각 26%, 55% 가량 감축하고, 영업소도 약 46% 축소해 사업비를 줄인 결과다.
지급여력(RBC)비율은 2017년 12월 말 108.5%에서 지난해 12월 말 215%로 106.5%포인트 상승했다. RBC비율은 보험사가 예상하지 못한 손실이 발생할 경우 보험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는 여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현행 보험업법 상 RBC비율은 최소 10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은 150%지만, 업계에선 RBC비율이 200%를 넘어야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KDB생명의 ‘몸값’이 시장 평가보다 높을 경우 매각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은행이 KDB생명에 투입한 금액은 지난 2010년 인수 자금 6500억 원, 인수 후 추가 대출 및 증자 6000억 원 등 총 1조 2500억 원으로 추정된다.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한 산은으로선 투자금과 비슷한 수준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장에서 평가하는 KDB생명의 가격은 이보다 낮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KDB생명의 자본총계는 9000억 원 수준이다. 여기에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에 따라 새 주인이 추가 증자를 해야할 가능성도 높아 매각 가격은 더 낮아질 수 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시장에서 거론되는 KDB생명 가격은 약 6000억 원 수준“이라며 ”그동안 인수 후보들이 산은의 투자금 규모보다 훨씬 낮은 금액을 써내면서 실패했다. 이번에 산은이 매각과 동시에 IPO 추진도 검토하는 건 결국 투자금 일부를 손해 보더라도 털어내겠다는 의지”라고 설명했다.
산업은행은 새 주인이 나타나면 언제든 매각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구체적인 윤곽은 오는 6월 KDB산업은행의 기업 구조조정을 전담할 자회사인 ‘KDB인베스트먼트’ 출범 이후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투자은행 업계 관계자들은 산은이 KDB인베스트먼트를 본격 가동하면서 KDB생명을 관리 대상 기업에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KDB생명과 비슷한 시기에 금호아시아나 그룹으로부터 사들인 대우건설도 여기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산은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KDB생명 매각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진행 중이거나 검토 중인 내용은 없다”고 설명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