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가수의 협박” vs “‘갑’ 소속사의 독단”
에피톤 프로젝트의 차세정(왼쪽)과 루시아(심규선). 사진=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심규선 공식 홈페이지
사건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스텔뮤직은 회사 경영이 어려워 자금 문제를 겪고 있었다. 해결방안을 고심하던 이응민 파스텔뮤직 대표는 그해 10월 NHN벅스에 온라인상의 마스터권리를 넘기는 계약을 추진했다. 마스터권은 음악 원본의 소유자로서 주장할 수 있는 방송 보상, 디지털음성송신 보상, 공연 보상, 저작인접권 등 일체의 권리를 말한다.
세부 조율 끝에 파스텔뮤직과 벅스는 11월 15일과 16일 각각 ‘마스터권 양수·양도 계약서’에 서명하고, 17일 대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매각대금은 32억 원(부가세 별도)으로 하되, 벅스는 선급금 잔액을 공제한 23억 6500만 원(부가세 별도)을 파스텔뮤직에 지급하기로 했다.
벅스와 계약 협의가 진행 중이던 10월 말 소속가수 에피톤 프로젝트의 차세정과 심규선이 이응민 대표를 찾았다. 이 대표에 따르면 이들은 “밖에서 들으니 회사가 어렵다고 들었다” “마스터권을 매각한다고 하던데” “전속계약을 해지해야겠다” “마스터권 양수·양도 계약 체결하면 많이 챙겨 달라”는 등의 말을 했다. 이들의 말을 간추리면, 전속계약을 해지하니 마스터권 계약금 중 소속가수가 전속계약 비율에 따라 받아갈 수 있는 정산금을 미리 일시불로 달라는 것이었다.
대금이 들어오기 직전인 11월 15일 차세정과 심규선은 다시 이 대표를 찾았다. 이번에는 변호사와 함께였다. 둘은 “우리가 제시하는 금액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오늘 저녁 가처분신청 등 법적 조치를 하겠다“며 ”아직 돈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내일 당장 벅스에 찾아가 모든 행동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계약이 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고 한다. 차세정과 루시아가 제시한 액수는 각각 7억 원과 4억 원. 그들이 전속계약 비율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정산금보다 2~3배 많은 금액이었다.
이 대표는 이들의 요구가 무리하다고 생각해 처음에는 거절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파스텔뮤직 이사 정 아무개 씨가 대리 진행한 협상 끝에 파스텔뮤직은 결국 차세정에게 6억여 원, 심규선에 4억여 원을 주고 전속계약을 해지했다. 이 대표는 당시 상황에 대해 “협박이라고 느낄 수 있는 분위기였다”고 회상했다.
파스텔뮤직은 마스터권을 벅스에 넘기고 돈을 받았지만 차세정과 심규선에게 거액을 준 탓에 재정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차세정과 심규선 외 다른 소속가수들과도 전속계약을 해지해줘야 했다. 파스텔뮤직은 현재 소속가수 한 명 없이 사실상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이응민 파스텔뮤직 대표. 사진=파스텔뮤직
차세정과 심규선에 이러한 기밀내용 등을 전달한 사람은 당시 파스텔뮤직 이사 정 아무개 씨와 또 다른 이사 고 아무개 씨, 직원 임 아무개 씨 등 파스텔뮤직의 임직원들이었다. 실제 심규선이 지인 A 씨와 통화에서 “(차)세정 오빠한테 마지막에 벅스 계약서도 보내줬다” “우리가 변호사 볼 때 그걸 마지막에 받았다. 누구한테 받았냐 하면 고 실장한테 받았다”고 말하는 녹취가 존재한다.
이 대표는 “당시 계약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명 안 됐기 때문에 차세정과 심규선이 어떻게 알고 있는지 의아했다. 당시 회사 내부 사정을 잘 아는 A 씨가 ‘정 씨, 고 씨 등이 차세정·심규선과 합의하고 정보를 건네고 작전까지 다 짰다’고 말해줬다”며 “하지만 그들을 늘 ‘내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처음에는 그들이 한편을 짜고 배신했다는 것을 믿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현재 차세정의 소속사는 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다. 차세정을 도왔던 정 씨, 고 씨 등도 현재 인터파크에서 일하고 있다.
이 대표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차세정과 심규선 측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두 사람의 법률대리인은 “오히려 이 대표가 마스터권을 소속가수들에 알리지 않고 몰래 팔려고 한 탓에 신뢰가 깨지고 계약을 해지한 것”이라며 “아이돌그룹과 달리 에피톤 프로젝트 같은 인디 가수들은 기획부터 세션 등을 모두 직접 준비하기 때문에 마스터권을 기획사가 모두 가지는 권리라고 볼 수 없다. 계약조건에도 마스터권에 대해 소속가수에 미리 고지하고 서면으로 동의를 얻도록 돼 있다”고 지적했다.
음악계 한 관계자는 “파스텔뮤직과 소속가수 사이의 정확한 계약관계는 알 수 없지만 통상 마스터권은 아티스트가 아니라 제작자에게 있다”며 “아티스트의 작사·작곡·편곡 등 권리는 저작권협회를 통해 받는데 가수들이 왜 마스터권 매각을 문제 삼았는지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귀띔했다. 실제 차세정 측이 주장하는 계약서상 소속사가 미리 고지하고 동의를 얻어야 하는 부분은 마스터권이 아닌 ‘매니지먼트 권한 및 고유’ 항목이다. 콘텐츠에 대해서는 갑에 귀속되는 것으로 적혀 있다.
내부 기밀자료로 협박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변호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파스텔뮤직과 벅스 사이의 계약서는 전혀 본 사실이 없으며 마스터권 양수양도 계약과 관련해서는 A 씨에게 건너들었다”고 설명했다.
심규선의 통화 녹취에 대해서는 “조작됐다”고 강조했다. 심규선 측 변호인은 “A 씨의 발언 중 추가로 단어를 집어넣는 등 녹취를 짜깁기한 흔적이 있으며 A 씨 역시 이를 인정했다”고 밝혔다. 다만 ‘고 실장이 차세정에 벅스 계약서 보내줬다’ ‘고 실장이 회사를 차릴 테니 옮기라고 했다. 차세정과 미리 만나 이야기가 됐다’는 등 발언의 목소리 주인공이 심규선인 것은 인정했다. 하지만 심규선은 “당시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며 “A 씨와는 선생-제자 사이로 옛날부터 친했다. 이런저런 말을 많이 했다. 주로 A 씨가 말하고 난 듣는 입장이었다. A 씨의 말에 항상 동의했고, 거스른 적 없다. 추측적인 부분도 이야기했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설을 말했는데 그 중 불리한 부분만 잘라서 공개한 것”이라고 말했다.
파스텔뮤직 공식 블로그. 지난해 1월 이후 활동이 없다.
현재 이 대표는 차세정과 심규선을 상대로 특수공갈로 인한 불법행위 및 불공정행위로 인한 부당이득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내부 기밀정보를 통해 이 대표의 어려운 상황을 파악하고 과도하게 돈을 받아낸 만큼 전체 금액을 다 돌려달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에피톤 프로젝트 차세정 등은 회사를 나가서도 여전히 ‘갑’ 소속사와 ‘을’ 가수의 관계로 피해를 봤다는 말을 하고 다닌다고 들었다”며 “하지만 이들은 나와 회사뿐 아니라 소속 동료 가수들에게도 피해를 입힌 것이다. 그래서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재판 과정에서 지난 3월 이 대표 측은 NHN벅스 측에 마스터권 양수도 계약금 32억 원 중 차세정과 심규선이 차지하는 금액 환산 사실조회를 신청했다. NHN벅스 측은 차세정은 6억 7000만 원, 심규선은 5억 8900만 원을 차지한다고 답했다. 이 금액을 파스텔뮤직과 계약서상 분배비율로 계산하면 차세정과 심규선이 받을 수 있는 금액은 각각 2억여 원과 1억 8000여만 원이다. 이들이 이 대표에 요구해 받아간 금액과 2억~3억 원 차이가 난다.
과도계상 논란에 대해 차세정과 심규선 측은 과하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 변호인은 “계약을 해지하면서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 앨범의 앞으로 정산받을 수 있는 권리를 포기했기 때문에 파스텔뮤직의 계약 위반에 대한 손해배상 위약금으로 받은 것”이라며 “계약해지 당시 충분히 협상을 통해 도달한 금액인데 왜 이제 와서 문제 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