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투자처, 환차익 목적으로 투자 확대...“경쟁 과열 경계해야” 목소리 높아
국내 증권사가 해외 부동산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사진=박은숙 기자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증권은 프랑스 파리에서 9100억 원대(6억 9100만 유로) 빌딩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현지 부동산 투자회사 ‘이카드’가 보유한 연면적 4만 4000㎡(약 1만3330평) 규모의 오피스 빌딩이다. 현재 글로벌 회계·컨설팅 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PwC) 프랑스 본사 등이 입주해 있다. 삼성증권이 3788억 원을 투자하고 나머지는 프랑스 대출기관과 운용사가 인수한다. 본계약은 다음달 체결할 예정이다.
국내 증권사의 프랑스 빌딩 투자는 올해만 6번째다. 삼성증권은 이번 투자 외에도 한화투자증권, 삼성SRA운용 등과 총 1조 5000억 원 규모의 프랑스 뤼미에르 빌딩 인수에 참여했다. 또한 미래에셋대우는 마중가타워(1조 830억 원)를, 하나금융투자는 크리스탈리아 빌딩(2200억 원)을 잇따라 인수했다.
이들을 포함한 국내 증권사들의 해외 빌딩 인수 금액을 모두 더하면 올해만 약 6조 원에 달한다. 대출을 포함한 총 인수 가격은 수 십 조원으로 뛴다. 내부 정보와 보안 등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거래를 포함하면 실제 금액은 더 클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그동안 해외 부동산 투자는 대부분 영국과 독일에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올해부터 유럽 전반으로 확대되는 속도가 가파르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체코나 폴란드, 오스트리아 등 여행지로만 여겨졌던 국가들의 부동산 시장에도 태극기가 꽂히고 있다.
이 국가들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가격과 높은 임대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최근 유럽 부동산에 투자한 대형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유럽 현지 투자자보다 환율 프리미엄이 있다”며 “지난해까지 투자금이 몰렸던 영국은 브렉시트 여파로 불확실성이 커졌고, 독일은 경쟁이 치열해져 부동산 매입 가격이 높아졌다. 그러나 프랑스와 다른 유럽 국가들은 아직 저평가 돼 있다. 투자 대상에 따라 직접 투자도 이뤄지고 있는데, 이 경우 매각에 따른 차익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분간 증권사들의 해외 투자 열기는 지속될 전망이다. 국내에서 적절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기관투자자들도 해외 부동산으로 눈을 돌리고 있어서다. 특히 주요 연기금들은 증권사에 주식·채권투자 대신 안정적이면서도 수익률 높은 대체자산 투자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과 사학연금 등 주요 연기금은 지난해 주식투자에서 약 10%대의 손실을 냈지만, 대체자산 투자에선 10%안팎의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이 같은 해외 부동산 투자 흐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국내 증권사들이 최근 인수한 해외 빌딩들의 가격 거품이 심각하다는 지적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국 증권사들이 경쟁적으로 해외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면서 스스로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최근 유럽의 대규모 빌딩 거래는 한국 투자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증권사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해외 부동산 중개 업체나 중개인들은 매물이 나오면 한국을 방문해 증권사 등 투자자들에게 가장 먼저 의향을 묻는다. 한국 투자자가 입찰에 참여하지 않으면 일정을 연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해외 부동산 중개업체나 브로커들은 매물이 나오면 복수의 한국 투자자들을 상대로 투자 경쟁을 붙여 가격을 올리고 있다”며 “최근 해외 부동산 임차인 업체로부터 ‘한국 증권사들이 예상했던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바람에 투자금을 금방 회수할 수 있게 됐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환율 프리미엄이 있는 만큼 가격을 높여도 큰 문제는 없다. 다만 경쟁적으로 투자가 이뤄지면서 겉으론 부동산 시장 ‘큰 손’ 대우를 받으면서도 사실은 글로벌 ‘호갱’ 취급을 당하는 모양새가 된 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비싼 값에 부동산을 사온만큼 리스크도 크다. 증권사들은 부동산 인수 계약 이후 펀드를 조성해 국내에서 기관투자가 또는 일반에 재판매(셀다운)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제대로 팔지 못하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들은 재판매 규모에 대해선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선 무리하게 사왔는데도 팔지 못한 매물이 약 4건, 금액으로는 약 1조 원 규모로 추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증권사에선 다시 신중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다른 대형 증권사 임원은 “과거 해외 부동산 투자는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방식으로 이뤄졌다면 최근엔 보다 공격적인 투자로 바뀌었다”며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선데, 그만큼 리스크가 커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금방 투자 열기가 식진 않겠지만 세계적으로 임대료 하락 추세로 접어들고 있고, 국내 기관이나 투자자들도 증권사들의 과열 경쟁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단기에 투자금을 회수하는 게 목적이라면 해외 부동산 투자가 적절한 선택일 수도 있지만, 통상 부동산은 장기 투자인 경우가 많은데다 금리나 환율 등 변수가 많은 만큼 신중하게 선택하려고 한다”라고 설명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