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측 ‘상속세 재원’ 및 ‘지분율 확대’에 자금 조달 방안 마련 시급...견제 강도 높아질 듯
한진칼의 2대주주인 행동주의펀드 KCGI는 최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등 한진가를 향해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 5월 29일 고(故) 조양호 회장의 퇴직금 지급 과정에서 주총과 이사회 결의를 적법하게 확인해야 한다며 검사인 선임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6월 12일엔 조현민 전무의 경영복귀에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일반적인 소수 주주권을 행사했을 뿐이지만,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은 크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진과 KCGI가 양 측의 자금줄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 한진 오너 일가의 약점 ‘상속세 재원 마련’
이번 KCGI 공세의 핵심은 상속세 재원 마련에 있다. 조양호 전 회장의 별세 이후 상속세는 한진 오너 일가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떠올라서다. 조 전 회장으로부터 상속받는 유산은 주식과 현금성자산, 부동산 등 총 5200억 원 대로 추정된다. 이를 기준으로 상속세를 산정하면 최소 2600억 원에 달한다.
한진 오너 일가는 오는 10월까지 상속세 납부 계획을 신고해야 한다. 상속세 규모가 크면 별도로 국세청에 신청해 전체 상속세의 6분의 1을 먼저 내고 나머지는 5년에 걸쳐 나눠 낼 수 있다. 한진 오너 일가가 이 방법을 선택하면 당장 오는 10월 최소 433억 원을 시작으로 매년 비슷한 금액을 5년 동안 내야 한다.
당초 조 전 회장의 부동산 재산이나 현금성 자산 등을 정리하면 어느정도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최근 조 전 회장의 부동산 재산은 약 200억 원 대로, 전체 상속세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자산이 있더라도 역시 부담을 덜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여기에 한진칼 등 계열사 주식을 매각하는 방식도 선택하기 어렵다. 한진 오너 일가 입장에선 경영권 방어를 위해 오히려 주식을 더 사들이거나 우호지분을 확보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규모가 큰데다 부담도 적지 않다. 결국 확실한 상속세 마련 대책이 거의 없는 셈이다.
남은 수단은 조 전 회장의 현금성 자산이다. 그리고 대표적인 현금성 자산은 바로 KCGI가 문제제기한 ‘퇴직금’이다. 대한항공은 최근 400억 원을 조 전 회장의 퇴직금으로 지급했고, 그가 등기임원으로 겸직했던 계열사들의 퇴직금은 약 1200억 원으로, 총 퇴직금은 1600억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퇴직금에 적용받는 세율은 50%로, 세금을 내면 한진 오너 일가는 800억 원을 받을 것으로 관측 된다.
최근 경영에 복귀한 조현민 전무. 사진=일요신문 DB
이에 대해 한진그룹은 조 전 회장의 퇴직금 지급과 조원태 회장의 선임은 모두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결정 됐고, 법적 절차에 따라 대응할 계획이라는 공식 입장을 냈다. KCGI의 공세에 비하면 원론적인 수준의 반박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미래에셋대우가 KCGI에 대한 대출 연장을 거부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 자금 조달 두고 갈 길 바쁜 KCGI
앞서 KCGI는 한진칼 주식을 담보로 총 200억 원을 대출 받았다. 지난 3월 14일 105만 6246주(1.79%)와 4월 22일 75만 1880주(1.27%)가 담보로 제공됐다. 주식담보대출은 증권사의 주요 수익원 가운데 하나인데다, 돈을 빌린 회사에 재무구조 등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만기 연장이 거절되는 일은 드물다.
업계에선 미래에셋의 갑작스러운 선택을 두고 증권사와 한진그룹과의 ‘관계’에 주목한다. 미래에셋은 한진그룹 오너 일가 상속과 관련해 컨설팅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또 한진칼은 대한한공·진에어·㈜한진 등 자회사 지분을 담보로 한 대출금 중 일부를 상환하기 위해 회사채 발행도 준비하고 있다. 2년 만기로 700억 원을 조달할 계획인데, 주관사 가운데 미래에셋대우가 포함돼 있다.
여기에 지난 5월 22일 한진칼 주식 39만 주를 담보로 KCGI에 100억 원의 대출을 내준 KB증권도 만기 연장 불가 입장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B증권 역시 그동안 한진그룹의 크고 작은 딜(Deal)에 참여해왔다. 한진그룹이 금융투자사를 통해 KCGI에 대해 우회적인 압박을 한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진그룹이 미래에셋대우나 KB증권에 KCGI 대출을 이유로 특별히 접촉한 사실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미래에셋대우 역시 “투자 계획에 따라 결정한 것일뿐”이라며 한진그룹과 KCGI의 갈등과는 전혀 관계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대해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주식 담보대출이 증권사의 주요 수익원 중 하나긴 하지만, 한진그룹은 대형 고객사다. 증권사들이 저울질을 통해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우회 압박, 한진그룹 백기사 등 불필요한 오해나 시선이 생길 수 있어 굳이 끼어들고 싶어 하지 않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KCGI 입장에선 자금 조달이 막힌 모양새가 됐지만, 위기 상황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출 상환은 이미 예상했고, 여유 자금으로 갚았다고 밝히면서 ‘여유’있는 모습도 보였다. 특히 이 과정에서 KCGI는 KTB투자증권, 더케이저축은행과 각각 200억 원과 100억 원 등 총 300억 원 규모의 새로운 주식담보대출 계약을 체결했다. KTB투자증권 대출 금리는 4.2% 수준인 것으로 전해진다. 미래에셋대우는 4.5%였다. 미래에셋의 대출 연장 거절 직후 발빠르게 더 좋은 조건으로 ‘갈아타기’에 성공하면서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투자자들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시장에 우회적으로 알린 셈이다.
KCGI는 앞으로도 투자금을 더 모아 지분을 더 늘릴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KCGI는 최근까지 한진칼의 지분 15.98%를 확보해 한진칼 2대 주주로 올랐다. 특수 관계자 등의 지분율(28.94%)에는 아직 못 미치지만 조양호 전 회장의 지분율 17.84%와 불과 2% 차이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KCGI는 이미 한진그룹 관련 투자수익률 41%, 약 1250억 원을 벌어들였다”며 “일반적인 투자사로서의 목적은 벌써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공세를 높이는 건 장기적으로 경영권을 확보 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KCGI의 자금 조달 부담은 점차 높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한진칼 조원태 회장의 임기는 오는 2020년 3월 23일까지다. 같은달 연임을 결정할 주주총회가 열린다. 앞서 요구했던 제안들이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올해 초 주주총회를 돌아보면 현재 KCGI가 가지고 있는 15.98% 지분으로도 원하는 결과를 얻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여기에 국민연금은 최근 한진칼 지분율을 4%대까지 낮춘 데다, 내년에는 KCGI와 비슷한 의견을 낼지도 불투명하다. 결국 KCGI 자체적으로 지분을 더 늘려둬야하는 셈이다.
이에 따라 KCGI는 한진그룹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증권사 외에 다른 자금 조달처를 전방위로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투자설명회도 계획하고 있다.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선 KCGI의 초기 투자자는 대부분 강성부 대표의 애널리스트 시절 쌓아둔 개인인맥 등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한진을 상대하는 모습에 KCGI를 호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늘어났다”면서도 “다만 장기전은 불가피하고, 이 과정에서 한진 측의 강도 높은 반격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한진칼 주가가 이미 고점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점도 KCGI에겐 부담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유치해야할 투자금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는 만큼 한계가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