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선임 절차 새로 도입했지만 논란 가라앉지 않아
KT 광화문 사옥. 사진=박정훈 기자
그동안 KT의 회장 인선 작업은 가을에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다. 이르면 10월~11월 ‘CEO(최고경영자)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결정을 내리고, 다음해 3월 주주총회 승인으로 마무리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KT는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황창규 회장의 후계자를 뽑는 이번 절차를 2019년 주요 과제로 선언하고 지난 4월에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KT가 이 시기에 차기 회장 선출 계획을 공식화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무려 6개월을 앞당겨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KT는 지난해 정관변경을 통해 새로운 회장 선임 절차를 도입했다. 회사는 이 절차를 ‘차기 회장 선임 프로세스’라고 지칭하고 있다. 과거 CEO추천위원회와 이사회를 거쳐 주주총회에서 회장이 선임됐던 방식보다 세분화 됐다. 총 4단계로, 지배구조위원회→회장추천위원회(CEO추천위)→이사회→주총이다. 그동안 CEO추천위가 회장 선임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이번엔 절차를 단계화해 힘을 분산시키고 견제 기능을 강화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KT 지배구조위원회는 지난 6월부터 케이티와 그룹사의 부사장 이상이면서 2년 이상 재직한 임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와 프레젠테이션(PT)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후보군을 대상으로 사내교육도 진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KT는 대상자들에게 업무수행 성과와 향후 업무 계획 등을 보고받고 있고, 이후 사내 회장 후보군을 추릴 방침이다. 또 이르면 9월부터 사외 회장 후보자들도 함께 물색해 오는 12월~내년 1월 사이 회장 후보 심사 대상자를 회장후보심사위원회에 보고할 계획이다.
KT의 이번 회장 선임 과정은 예전보다 독립적이고 투명하게 바뀐 모양새지만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황창규 회장의 ‘그림자’가 바뀐 차기 회장 선임 프로세스에 더욱 짙게 드리워졌다는 지적이다. 의심의 눈초리를 품은 정치권에서 올해 초부터 포문을 열었고, 최근엔 전현직 KT 임원들로 구성된 비공식 모임으로 알려진 ‘K-비즈니스 연구포럼’이 재차 이 부분을 지적했다.
여당 측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시절부터 회장을 지내면서 국정농단 게이트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데다, 최근에도 각종 비위 의혹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황 회장이 차기 회장 선임으로 자기 사람을 심으려 한다는 게 KT를 둘러싼 잡음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K-비즈니스 연구포럼은 “바뀐 회장 선임 절차는 황 회장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라며 KT 회장 후보를 보다 투명하게 심사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절차와 달리 노조와 주주, 고객, 협력사 등으로 구성된 이해관계자들이 ‘인선자문단’을 구성해 사내외 후보를 공개 검증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보고서를 이사회에 전달했다.
황창규 회장. 사진=박은숙 기자
정치권과 업계 관계자들은 KT의 새 회장 선임 프로세스를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이러한 주장이 근거가 없진 않다고 입을 모은다. 후보군을 추리면서 회장 선임의 ‘첫 단추’를 꿰는 앞서의 지배구조위가 사실상 과거 CEO추천위원회 만큼의 막강한 힘을 가진 모양새가 돼서다. 지배구조위는 4명의 사외이사와 1명의 사내이사로 구성됐는데, 이후 최종 후보를 정하는 회장추천위원회에 이 지배구조 위원 전원이 포함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회장추천위원회는 KT사외이사 전원과 사내이사 1명으로 구성된다. 지배구조위원회 5명을 제외하면 회추위 구성원은 사외이사 4명뿐이다. 후보 선정 절차 전반을 이끌고, 수적으로도 우위에 있는 지배구조위의 힘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지배구조위 구성을 뜯어보면, 1명뿐인 사내이사의 영향력이 상당할 것으로 분석된다. KT가 이번 차기 회장을 내부 임원 가운데에서 선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서다. 그런데 지배구조위원회 유일한 사내이사는 업계에서 황 회장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김인회 경영기획부문장(사장)이다. 김 사장은 황 회장과 함께 삼성 출신으로, KT에서 황 회장 비서실장을 맡다가 지난해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가 현재 맡고 있는 경영기획부문은 대관 등을 전담하는 등 KT 내부에서도 입김이 상당한 곳으로 평가 받는다.
이번 회장 인선에 황 회장의 의지가 크게 담겼다는 점에도 의심의 시선이 모인다. KT는 17년 전 공기업에서 민영화가 됐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매번 친정부 인사가 회장에 오르면서 온갖 잡음과 입길에 시달려 왔다. 그동안 황 회장은 회사 안팎에서 후임 회장부터는 이 논란을 끊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혀왔다.
한 KT 전직 임원은 “황 회장이 밝힌 의지와 다르게 이번 회장 인선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쪽은 황 회장이 정치자금법 위반과 횡령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으며 퇴진 압박을 분산시키려 시기를 크게 앞당겨 차기 회장 선임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거나, 전 KT 회장들처럼 퇴임 후 온갖 외풍을 맞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기 사람을 심으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며 “이번 프로세스의 구조가 황 회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 있을 법한 모양새로 비춰지고 있는 점이 의심을 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문성과 리더십을 가진 인물을 회장으로 선임하면 해결될 일이지만, 최종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논란이 가라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KT 현직 임원은 “올해 초부터 꾸준히 회장 후보로 거론되는 김인회 사장은 스스로 후보자군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했고, 황창규 회장도 연임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과거와 비교하면 이번 선임 절차는 훨씬 객관적인 절차로 진행 중이고, 정권 교체에 따른 낙하산이나 외압 논란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후보 선발 과정도 미흡한 점이 있을 순 있지만 회사 정관에 따라 엄격하고 투명하게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