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승승장구 동안 아빠는 직업 잃고 술에 빠져 폭력…아내 이혼 준비 알고 자고 있는 처자식 ‘탕!’
조제프 바시와 마리아 비로바치는 모두 헝가리 출신이었으며, 1956년에 소련이 헝가리를 침공하자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였다. 그들은 캘리포니아의 어느 음식점에서 만났다. 배관공이었던 조제프와 웨이트리스였던 마리아. 그들은 결혼해서 LA로 갔고, 1978년에 딸 주디스를 낳았다. 당시 조제프는 45세였고 마리아는 38세였으니, 그들에게 주디스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딸이었다.
주디스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마리아는 딸을 데리고 스케이트를 타러 갔다가 어느 에이전트에게 픽업된다. 그때부터 마리아는 딸을 최고의 배우로 키우겠다는 꿈을 품었고, 열성적인 엄마 덕에 주디스는 70개가 넘는 광고에 출연하는 모델이 되었으며 1984년에 TV 미니시리즈에 단역을 맡으며 연기자로 데뷔한다. 이후 주디스는 1년에 10편 가까이 TV 드라마에 출연하며 아역 배우로 확고한 입지를 다졌고, 1987년엔 ‘죠스 4’로 영화에 진출한다. 이후 디즈니의 관심을 받아 ‘공룡 시대’(1988) ‘찰리의 천국 여행’(1989)에 목소리 연기자로 출연하기도 했다. 아홉 살 때 1년에 10만 달러를 벌 정도였으니, 당시 주디스 바시는 할리우드에서 나름 톱클래스에 드는 아역 배우였던 셈이다.
딸이 승승장구하는 동안 아버지 조제프는 추락했다. 배관공 일도 그만두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으며, 술에 취하면 분노를 제어하지 못한 채 친구들에게 험한 말을 했다.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죽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 딸 혼자 세상에 남게 된다고 하면 조제프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주디스도 죽일 거야.”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얘기를 딸과 아내 앞에서도 했다는 것이다. 결국 마리아는 1986년 12월에 가정 폭력으로 조제프를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그대로 돌아갔다. 마리아나 주디스에게서 맞은 자국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언어폭력은 처벌 대상이 되지 못했던 것. 이렇다 할 증거가 없기 때문이었다. 조제프의 폭언은 계속되었고, ‘죠스 4’ 촬영을 위해 모녀가 바하마로 가야 했을 땐 “만약 안 돌아오면 어디라도 찾아가 목을 따 버릴 것”이라는 극악한 말을 내뱉기도 했다. 조제프에겐 아내와 딸이 도망갈지도 모른다는 망상이 있었다. 게다가 물리적 폭력도 수반되어 화분이나 프라이팬을 딸에게 던져 코피를 쏟게 한 적도 있다.
이때부터였다. 주디스 바시에겐 이상한 증상이 나타났다. 자신의 속눈썹을 뽑기도 하고, 어떨 땐 기르던 고양이 수염을 뽑았다. ‘찰리의 천국 여행’ 오디션 때는 히스테리를 부리며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마리아는 딸을 아동 심리학자에게 데려갔고, 주디스의 상태를 본 의사는 아동학대방지센터에 연결해주었다. 그곳에선 마리아에게 경찰 수사를 권했지만, 마리아는 거절했다. 사실 당시 그녀는 조제프와 이혼할 생각이었고, 딸과 함께 따로 살 아파트도 봐 둔 상태였다. 그녀는 딸과 낮 시간은 그 아파트에서 보내고 밤엔 집으로 돌아왔다. 주변의 지인들은 완전히 별거할 것을 권했지만, 마리아는 망설였다. 괴물 같은 남편이었음에도 함께 가정을 이룬다는 것에 대한 일말의 미련이 있었던 것이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조제프는 아내가 딸을 데리고 결국은 자신을 완전히 떠날 것이라는 걸, 그리고 현재 이혼 수속을 준비 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1988년 7월 25일 밤, 술에 취한 조제프는 총으로 자고 있는 딸을 쏘았고 이어서 아내도 죽였다. 그리고선 이틀 동안, 아내와 딸이 죽어 있는 집 안을 서성이다가 3일째 되는 날 딸의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난 아내와 딸 곁을 영원히 떠나기로 결정했어요.” 전화를 끝낸 후 사체에 가솔린을 붓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차고로 가서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쏴 자살했다.
이 사건은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국가가 아동 학대와 가정 폭력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을 두고 사회 안전망에 큰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사건 두 달 전 마리아가 딸과 함께 아동학대방지센터를 찾았음에도 그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당국은 질타를 당했다. 과연 주디스 바시의 죽음은 막지 못할 사건이었을까? 안타까운 일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