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시총 2위서 10위로...문은상 대표 “기술 수출로 펙사벡 가능성 확인할 것” 강조하지만 시장 반응 ‘냉담’
신라젠은 지난 8월 4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그동안 진행해 왔던 바이러스 기반 면역항암제 ‘펙사벡’의 임상 3상을 조기 종료한다고 밝혔다. 지난 2일 미국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DMC)의 임상시험 중단을 권고 받은 지 이틀만이다. 앞서 신라젠은 “DMC와 펙사벡 간암 대상 임상 3상 시험(PHOCUS)의 무용성 평가 관련 미팅을 진행했으며, 진행 결과 DMC는 당사에 임상시험 중단을 권고했다”고 공시했다. 신라젠은 이번 결과를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보고할 방침이다.
DMC는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독립 기구다. 신약의 임상 결과를 평가한다. 무용성 평가는 임상 과정에서 신약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거나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는지를 미리 검증하는 절차다. 불필요한 임상을 막기 위해서다. 익명을 원한 한 약학대학 교수는 “정확한 권고 사유를 확인해야겠지만, 통상 무용성 평가에서 임상중단 권고는 치료제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을 경우에 나온다. 앞으로의 임상 진행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DMC의 권고는 업계에서 최고 수준의 결정으로 통한다. 추가 진행은 어렵다”라고 말했다.
문은상 신라젠 대표. 사진=신라젠
펙사벡은 차세대 항암제로, 말기 암환자들에게 ‘희망’으로 통했다. 약을 투여하면 조작된 바이러스가 번식을 위해 암세포 안으로 들어가 빠르게 증식하면서 암세포를 터져 죽게 만드는 방식이다. 특히 기존 항암제는 암세포와 함께 일반 세포까지 공격하는 단점이 있었는데 신라젠은 조작된 바이러스는 암세포만 공격한다고 주장하면서 관심을 끌었다.
신라젠은 2015년 미국FDA로부터 임상 3상을 허가 받았고, 같은해 10월부터 전세계 600명 환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해왔다. 펙사벡 투여 후 기존 간암 치료제 ‘넥사바’를 병용 투여한 300명과 넥사바만을 단독 투여한 300명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임상을 진행했다. 펙사벡이 종양세포를 파괴하는 동시에 주변 면역세포 활성도를 높여 넥사바 치료 효과를 압도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무용성 평가에서 넥사바 단독 투여에 견줘 펙사벡을 신약으로 출시할 만한 실익이 없다는 판단이 나온 셈이다.
DMC권고와 신라젠의 임상 3상 시험 중단 선언의 후폭풍은 거세다. 펙사벡이 사실상 신라젠의 ‘유일한 무기’였기 때문이다. 신라젠은 2016년 적자 기업이었음에도 코스닥에 ‘기술 특례’로 상장했다. 1만 원 대로 시작한 주가는 2017년 11월엔 15만 2300원까지 치솟았다. 시가총액 10조 원(시총 순위 2위)을 돌파하면서 한국의 대표 바이오기업이자 코스닥 대장주에 이름을 올렸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신라젠은 상장 이후 매년 500억 원 안팎의 적자를 낸 반면 매출은 70조 원 수준이었다”며 “회사의 가치는 펙사벡 상용화 이후 엄청난 수익이 나올 것이란 기대감만으로 만들어졌다. 회사를 지탱하던 기대감이 무너지면서 수직 추락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라젠의 추락은 바이오업계 전체를 흔들고 있다. 임상 실패에 따른 우려와 의구심이 업계 전체로 번졌다는 게 증권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지난 5일 코스닥 제약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0.25% 하락했다. 시가총액 1조 원을 넘는 제약, 바이오업체 10곳의 시가총액은 이날 하루에만 2조 5000억 원이 증발했다. 시장을 지탱하던 제약, 바이오업체들이 무너진데다,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 경제갈등까지 겹치면서 8월 첫 번째 월요일인 지난 5일 코스닥은 ‘블랙 먼데이’를 경험했다. 전 거래일보다 7% 넘게 하락하면서 3년 1개월 만에 사이드카가 발동(프로그램매도호가의 효력 정지)됐다.
지난 5일 주식시장은 신라젠의 추락 여파와 미중 무역분쟁, 일본 경제갈등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블랙 먼데이’를 경험했다. 사진=일요신문 DB
신라젠 측은 임상 3상 시험 중단을 하는 대신, 기술수출로 사업 전략을 수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간암에 관련해서만 임상 중단을 결정했기 때문에, 현재 임상 초기 단계인 신장암, 대장암 등 다름 암종 치료에서 펙사벡의 효능을 입증해 기술을 수출하겠다는 얘기다. 국내에서는 바이오의약품을 빠르게 심사해 시장에 신속하게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법’을 통해 품목 허가를 최대한 빨리 받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전략에 대한 시선은 차갑다. 신라젠은 앞서의 기존 간암 치료제인 넥사바와 병용 임상을해서 중단 했는데, 현재 초기 단계인 신장암(임상 1상 진행 중)과 대장암(임상 2상 진행 중)도 기존 치료제와 병용 요법을 진행하고 있어서다. 각각 다른 암종이고, 이에 따라 펙사벡 임상 시험을 계속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성공에 대한 의구심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한 대학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펙사벡은 신라젠이 개발하기 전 해외에서 임상을 실패한 전력이 있다. 신라젠이 임상 디자인을 재설계해서 글로벌 임상을 진행해 왔다. 신라젠 연구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고, 잡음도 많았다. 앞으로도 기대가 크지 않은 건 사실”이라며 “다만 이는 세계적으로도 신약 개발 과정에서 흔히 있는 일이고 이번엔 예상보다 훨씬 더 안 좋은 결과가 나온 점도 감안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시장의 신뢰가 추락하면서 신라젠 임원들에 대한 의혹도 나온다. 원칙적으로 DMC의 권고 등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주식시장과 업계에서는 신라젠이 이 같은 결과, 또는 적어도 임상 3상에 문제가 있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번 공시가 나오기 전에 신라젠 임직원들이 스톡옵션(주식 매수 선택권) 등을 행사해 큰돈을 벌어서다.
신현필 신라젠 전무는 지난 7월 1일부터 8일까지 4회에 걸쳐 보통주 16만7777주를 장내 매도했다. 약 88억 원 규모다. ‘일요신문’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확인한 결과 지난해에는 다른 신라젠 임원과 사내외 이사들이 스톡옵션을 행사해 각각 20억여 원에서 50억여 원의 차익을 냈다. 스톡옵션을 행사한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회사를 떠났고, 신 전무는 권고사직 절차가 진행 중이다.
신라젠이 DMC권고 결과를 ‘실시간’으로 공개한 점도 도마에 올랐다.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회사의 핵심 신약의 경우 부정적 결과가 나오더라도 임상 재개 가능성을 열어두거나 보완책을 마련하지만, 신라젠은 빠르게 결과를 공개하면서 스스로 가능성을 차단한 모양새가 돼서다. 이에 대해 신라젠 측은 임직원의 스톡옵션 행사는 개인적 채무 변제를 위한 것이었고, 대표를 비롯한 회사 최대주주 3명은 아직도 세금과 부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밝혔다.
지난 7월 신라젠 임원이 보유주를 장내 매각하면서 임상에 문제가 있는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신라젠은 주가가 급락하고 의혹이 퍼지자 홈페이지에 입장문을 올렸다. 사진=신라젠
신라젠은 6일 오전 “문은상 대표가 신라젠 주식 12만 9000주 가량 장중 매수했다”고 밝혔다. 매수 금액은 약 20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 문 대표는 지난 4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돈을 더 마련해서라도 주주들의 요구대로 주식을 매입하겠다“고 강조했다.
펙사벡이 간암 임상 3상 시험 중단을 권고받은 이유에 대해서는 임상 참여자의 상당수가 펙사벡 외 다른 약물을 투여한 영향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펙사벡 외 다른 약물을 추가 투여한 결과가 임상시험 전체 데이터에 합산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권혁찬 신라젠 임상총괄 전무는 6일 “임상 3상에서 다른 약을 추가 투여한 구제요법이 시험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해 펙사벡의 약효 문제는 아닐 것으로 조심스레 예측한다”며 “양쪽 군이 비슷한 비율로 추가 약물을 투여받았다면 무용성평가 결과는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권 전무는 “DMC는 무용성, 안전성 결과만으로 임상시험 지속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환자의 구제요법 시행 여부 등 세세한 데이터는 보지 않는다. 이번 분석은 임상의 조기종료 이후 원인을 찾고자 회사가 데이터를 별도 분석한 것”이라며 “무용성 평가 분석은 DMC와는 별개다. 이 자료로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